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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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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이 낳은 ‘비극의 노동’

‘핵발전소 하청노동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일본 니이쯔마와 한국 임재경씨,
그들이 보고 겪은 불안과 공포
등록 2014-10-03 12:36 수정 2020-05-03 04:27
일본 후쿠시마 제1발전소 하청업체 H사 출신인 니이쯔마 히데아키(왼쪽), 경북 울진 제2발전소 하청업체 N사에서 일하는 임재경씨.

일본 후쿠시마 제1발전소 하청업체 H사 출신인 니이쯔마 히데아키(왼쪽), 경북 울진 제2발전소 하청업체 N사에서 일하는 임재경씨.

한국과 일본은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핵발전 밀집 국가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국회 제출 자료를 보면, 1km²당 밀집도 기준으로 한국(0.20기)이 1위, 일본(0.11기)이 4위를 차지할 정도다. 3년 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었음에도 한국에서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이, 일본에서는 핵발전소 재가동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란에는 재앙적 사고의 위험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고용 차별과 피폭 등의 문제도 숨어 있다. 200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짜인 핵발전소 안에서 노동문제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핵 안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부족했던 핵발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공공운수노조·연맹 환경에너지안전협의회 등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한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 포스트 후쿠시마, 한-일 핵발전 노동자의 삶’이 지난 9월22일 서울에서 열렸다. 은 이날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출신인 니이쯔마 히데아키와 함께 경북 울진 핵발전소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임재경씨를 만났다. 고향도 언어도 다르지만, 핵발전소라는 비슷한 경험을 나눈 이들은 ‘불안’과 ‘공포’라는 화두를 공유했다. _편집자


굵은 빗줄기가 그칠 줄 몰랐다. 비에 젖은 풍경은 고향의 예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9월24일, 일본에서 온 니이쯔마 히데아키(32)는 ‘특별한 외출 중’이었다. 그가 찾아온 경북 울진은 생애 첫 해외 방문지이기도 하다. 울진은 그가 태어난 고향인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나라하마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태평양으로 흐르는 바다와 맞닿은 마을, 그리고 비슷한 위도에 수도에서 차량으로 서너 시간 걸리는 인구 과소 지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분모는 비에 젖은 핵발전소의 콘크리트 원자로 돔을 볼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갈아입는 데만 5분 걸리는 두꺼운 방재복
한울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이 24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홍보관 시뮬레이터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울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울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이 24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홍보관 시뮬레이터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울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일 핵발전 노동자들이 24일 오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지역자활센터 회의실에서 '포스트 후쿠시마, 핵발전 노동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하고 있다. 울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일 핵발전 노동자들이 24일 오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지역자활센터 회의실에서 '포스트 후쿠시마, 핵발전 노동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하고 있다. 울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니이쯔마는 원래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 요즘에도 시간이 나면 취미 삼아 목공일을 한다. 고향에서 인터넷 케이블 부품을 검사하는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그는, 2008년 친구의 소개로 마을 북쪽에 있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직장을 옮겼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기 전까지 일했던 곳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아가던 핵발전소는 나라하마치에서는 나름 괜찮은 직장이었다.

그가 들어간 H사는 직원 10명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안에서 기계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였다. 발전소 깊숙이 들어가 냉각재순환 펌프를 분해해 점검하고, 사용후핵연료 저장고에서 핵연료를 폐기할 때 사용하는 절단 장치를 분해·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방사선량이 상당히 높은 곳이었다. 옷을 갈아입는 데 5분이 걸릴 정도로 두꺼운 방재복을 입고 작업을 했다.” 일하기 위해 그라인더 연마, 분진 다루기, 저산소 지역 근무와 관련한 자격증도 땄다. “처음에는 이 일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핵발전소는 이미 일상이었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친구도 꽤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일은 힘들진 않았다. 점검 기간이 아니면 보름 가까이 여유로울 때도 있었지만, 점검이 시작되면 하루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년마다 업체가 바뀌곤 하는데 지역에서 일하는 새 사장이 부인이나 친·인척을 끼워넣으면서 기존 사람이 잘리게 된다. 게다가 한전KPS 직원과 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 수준의 월급을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고통스럽다.” -임재경씨


니이쯔마가 울진에서 만난 임재경(45)씨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울진 제2발전소에서 일하는 그의 삶도 니이쯔마와 닮은 점이 많다. 그가 스무 살 적 동네 바닷가에 처음 들어선 울진 핵발전소는 현재 원자로를 10기까지 늘리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핵발전소 일을 시작한 건, 7년 전쯤이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일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발전소 밖에 있을 때는 크게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할 곳이 없으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거치면서 오래전에 벌였던 사업에 실패했다. 개인 운전사 등 다른 일을 하던 그는 하청업체 일자리 공고를 보고 핵발전소에 들어오게 됐다.

임씨가 일하는 17명 규모의 N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정비 하청 업무를 맡고 있는 한전KPS로부터 일감을 받아 일하는 업체다. 니이쯔마처럼 핵발전소 깊숙이 들어가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울진 3·4호기가 있는 제2발전소의 주요 시설 안을 지나는 배관 등에 절연장비를 씌우거나, 냉각수가 흐르는 배관에 물이 맺히지 않도록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작업 중 화상이나 방사능에 노출된 물에 오염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해진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한전KPS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잔업도 그의 몫이다. “우리 직원들은 대부분 울진·삼척 주민이다. 그래도 월성·고리 핵발전소의 하청업체보다 임금과 처우가 나은 편이다.”

“우리 회사는 3차·4차 하청의 중간쯤”

이날 오후 니이쯔마는 임씨와 울진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보건물리원 등의 노동자들을 울진지역자활센터 회의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의 일정 가운데 하나로 두 나라의 핵발전 노동자들이 노동 상황을 좀더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자리였다. 이날 마주 앉은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하청 구조나 업무 형태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국내 핵발전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보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일본 핵발전소의 하청 구조에 주목했다. 실제로 니이쯔마는 자신이 근무한 H사의 하청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원청회사인 히타치에서 시작해 몇 개 업체를 지나 우리 회사가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3차·4차 하청의 중간쯤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일할 때는 (하청 구조를 제대로) 몰랐다. 지금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직장보험도 가입해줘서 하청 구조가 문제라는 점을 못 느꼈다.”

일본보다 하청 구조가 단순한 국내 핵발전소 하청업체에는 해고 불안이 존재했다. 임씨는 “1년마다 업체가 바뀌곤 하는데 지역에서 일하는 새 사장이 부인이나 친·인척을 끼워넣으면서 기존 사람이 잘리게 된다. 한전KPS 직원과 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 수준의 월급을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고통스럽다.” 게다가 하청업체에서 한전KPS의 정규직이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점은 고용 불안을 부채질한다. 현재 그는 지난해 울진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정비·청소·특수경비직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아 세운 공공비정규직노조 울진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니이쯔마는 후쿠시마현에 있는 ‘오텐토 썬 기업조합’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방사능 위험 경계지역을 포함한 고향 근처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투어를 이끌고 설명을 하는 일이다. 그가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를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지진이 날 때 핵발전소 안에서 정기 검사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대피한 뒤 사무실에서 모여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방송으로 원자로의 폭발 소식을 접했다. 꿈인가 현실인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 뒤로 이재민이 된 그의 가족은 이와키시의 가설주택과 아파트에 흩어져 살고 있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포기했다. “제염도 의미가 없는데 정부는 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핵발전소와 함께 사는 이들이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만약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핵발전소에서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선택지가 핵발전소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후쿠시마가 아닌 니가타 핵발전소라도 가서 일하고 싶다. 수당도 좋고, 익숙한 일이다. 피폭 위험이 있지만 교육만 제대로 받고 일하면 과잉 피폭은 안 당한다.” 핵발전소 일을 그만둔 뒤 니이쯔마는 100mSv(밀리시버트·피폭 단위) 이상 피폭됐다는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다. 피폭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임씨도 마찬가지다. “하청업체가 방사능 관리를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직접 하기 때문에 훨씬 잘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일은 대부분 비슷하고 피폭선량을 넘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 괜찮다.” 임씨도 피폭검사 결과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일한다.

핵발전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니이쯔마와 임씨의 과거·현재는 핵발전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이들의 민낯이기도 하다. 도심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인구 과소 지역에 자리잡은 핵발전소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다. 임씨는 “니이쯔마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우리도 사람이라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 것 같다. 적은 월급을 받는 우리 같은 비정규직이 발전소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핵발전소에서 일하지만 울진에 핵발전소가 새로 생기는 것은 반대한다. 핵발전소가 더 생겨봤자 지역 사람들을 정규직도 아닌 하청업체 직원으로 만드니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아니냐.”

핵발전소를 떠난 니이쯔마도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할 뿐이다. “늘 마음이 붕 떠 있고 가라앉질 않는다. 일본 정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 하고,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그 틈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울진=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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