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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꼭 잡은 그 두 손

세월호 참사 등 계기로 터져나오는 양당 정치의 폐해, 갈등 뿌리는 ‘소선거구제’… 합의제 민주주의로 정치 실종 시대 벗어나야
등록 2014-09-26 15:06 수정 2020-05-03 04:27
추석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노란리본을 메단 세월호 띄우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추석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노란리본을 메단 세월호 띄우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재·보궐 선거가 열린 지난 7월30일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김종철 노동당 후보(맨 왼쪽)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후보는 이 선거에서 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재·보궐 선거가 열린 지난 7월30일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김종철 노동당 후보(맨 왼쪽)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후보는 이 선거에서 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14년 대한민국에서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갈라지고 찢겨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 실종으로 거리에 내몰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순수하지 않다’며 야멸차게 내쳤고,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입법권 침해에 제대로 된 대응 한번 못하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끼리 사분오열해 국민을 더욱 절망에 빠지게 했다.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며 도입한 국회선진화법마저 ‘이제 더 이상 타협은 없다’는 여당에 의해 송두리째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협의의 정치는 어디로 갔을까. 기득권을 거머쥔 거대한 두 개의 당이 서로에 대한 ‘증오’를 숙주 삼아 대립의 정치를 벌이는 대한민국에서 협의의 정치가 뿌리내리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동안 정치 실종에 대한 수많은 원인이 논의됐다. 소통 부재, 계파 싸움, 이념 노선 투쟁, 지도부 실책…. 이런 분석들도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아래에는 분쟁적이고 대립적인 양당 정치를 강제하는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단순 다수대표제’가 있다. 에서는 이제 우리나라가 양당제를 야기하는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다양한 정당 간의 협의가 기본이 되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옮겨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바탕으로 기획 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1부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합의제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를 다룬다. 2부에서는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이 어떤 방식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으며 어떻게 이를 쟁취해갔는지 알아보고, 3부에서는 한국식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제도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 짚어본다. _편집자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의 폭주가 계속되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무너지고 있는 사태는 국민에게 정치 혐오를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신을 대표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한 국민은 거리로 나서보지만 국회를 떠난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일련의 ‘정치 실종’ 사태를 역순으로 살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작심하듯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은 세월호 사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답답해하는 대통령과 그의 지지층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야권 지지층에게도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겼다. 여당 안에서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 사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물론 박 대통령 개인의 성향에 1차적 원인이 있다. 박 대통령 특유의 ‘불통 행보’는 취임 이후 여당에서조차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저토록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포괄의 정치 아닌 배제의 정치

정부·여당은 영남이라는 지역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30~40%의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지지층이 분열되거나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도 우파에서부터 극우파 세력까지 모두 새누리당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 체제 아래에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득표율만 유지한다면 새누리당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과반수의 거대 여당 구성과 재집권이 가능하다. 이들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마음 놓고 배제할 수 있는 이유다.


“승자독식 모델인 다수제 민주주의(양당 체제)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차지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패자나 저항 혹은 거부 세력에 대한 배려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복지국가 건설과 포괄정치의 작동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글에서 “승자독식 모델인 다수제 민주주의(양당 체제)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차지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패자나 저항 혹은 거부 세력에 대한 배려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 과정에서의 배제 세력은 양산되고, 따라서 이들과 정부 간 그리고 입장이 다른 이익집단들 간의 적대적 대립과 갈등은 상시적인 문제로 존재한다. 포괄의 정치가 아닌 배제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새정치연합의 상황을 보자. 지난 9월17일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 사태를 마무리짓고, 다음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출되면서 극심한 분열 사태가 어느 정도 봉합되긴 했지만 내홍은 여전하다.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박 원내대표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물론 박 원내대표의 실책이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새정치연합이 그동안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내재해온 ‘무능력’도 중요한 원인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0년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패했다. 선거에서 질 때마다 수많은 패배의 원인이 쏟아졌다. 계파 갈등이나 공천 파행, 지도부의 실책 등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려는 자기희생적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말뿐인 ‘환골탈태’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2등의 기득권’이 늘 보장된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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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태 전남대 교수는 “양당 구도에서는 한쪽이 아무리 잘못해도 상대방이 더 큰 자살골을 넣으면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집권도 가능하고 다수당도 가능하기 때문에 정당이 정말로 혁신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새정치연합은 가만히 있어도 호남에서 당선되고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저쪽(새누리당) 아니면 내가 당선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권 교체보다는 ‘다음에 내가 살아야겠다’는 데 관심을 두다보니 (공천권이 달린) 당권을 잡기 위한 계파 경쟁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도 결국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한 제1야당의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등판, 양당제 강화로 귀결

다음은 처절하게 실패한 ‘안철수의 새정치’로 가보자.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뒤 제3당을 만들기 위한 정치세력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 출마자가 없다는 현실적 한계에 부닥쳤고, 올해 초에는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민주당과의 통합을 발표하면서 제3세력화를 공식 폐기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본인의 대권 욕심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새로운 세력이 양당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적나라한 사례로 꼽힐 만하다. 안 의원의 수석보좌관을 지내면서 새정추 구성에 깊게 관여한 이수봉 전 새정치연합 직능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창당 세력을 강하게 밀고 나갈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주체가 조직되기 어려운 문제가 가장 컸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당 체제가 선거제도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다. 아무리 제3당을 만들고 싶어도 제도가 뒷받침돼 있지 않으니 새로운 사람이 진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새정추와 민주당의 통합 소식이 알려질 당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현 경기도지사)도 “승자독식의 양당제 구조를 변화시킬 에너지로 봤는데 결국 그 에너지가 양당제 구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그냥 돌아가버렸다. 그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이후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 안에서 정치개혁에 실패한 뒤 7·30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안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새정치연합의 정체성 문제는 그간 당내에서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서민에서 중산층까지 한국의 99%를 대변한다고 말해온 새정치연합의 외침은 결국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련의 ‘정치 실종’ 사태에서 각각의 표면적 원인을 제외하고 보면 하나의 근본적 원인이 드러난다. 바로 고착화된 양당 체제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거대 양당 외에도 의석을 가진 제3당이 꾸준히 유지돼왔다.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이 있었고 현재도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군소 진보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의석수는 적고 발언권도 부족해 한국의 정치 과정에서 큰 변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두 개의 정당이 사실상 정치를 지배하면서 지역주의라든지 남북 관련 이데올로기 외에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두 거대 정당의 힘겨루기로 타협이나 합의 등 중간 조정을 통한 정치적 해결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거대 양당 체제의 또 다른 폐해 가운데 하나는 당의 정체성 문제다.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양당이 전부 거대한 우산 정당이다. 가난한 사람부터 부자까지 국민 모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들이다. 그러면서 정책정당을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새정치연합의 정체성 문제는 그간 당내에서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서민에서 중산층까지 한국의 99%를 대변한다고 말해온 새정치연합의 외침은 결국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목수’ 아닌 ‘연장’ 교체해야 [%%IMAGE4%%]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새누리당이나 진보정당은 상대적으로 당의 정체성이 선명한 편인데 새정치연합은 정체성과 정책 노선이 선명하지 못한 것이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태욱 교수도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이념 혹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노동자든 중소 상공인이든 실업자든 자신들이 대표하려는 사회집단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그렇지 않다. 진보적인 사람이 지도부가 되면 좌클릭했다가 다시 또 반대가 되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선거 전문 정당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이익을 표출할 채널이 없어지는 계층은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고 정치 불신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뚜렷하지 않은 당의 정체성은 당이 정책이나 노선보다는 인물 중심의 정치를 하도록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천정배 전 장관은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으니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정책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모으게 된다. 양대 정치세력은 결국 과반수 득표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물 하나를 놓고 양당에서 경쟁적으로 끌어당기는 일도 많았다. 16대 총선에서 원희룡·오세훈 후보가 당시 새천년민주당으로 오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선학태 교수는 “한국의 국회의원 인물 교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물갈이’가 돼왔다. 그러나 아무리 현미경 공천 검증 시스템을 통해 의원을 ‘천하의 인걸’들로 바꿔봐야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 일반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치를 재건축하는 데는 ‘목수’가 아닌 ‘연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양당 체제를 강제하는 선거제도인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대표제’를 개혁하는 것이 ‘정치 실종’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뿐 아니라 이 제도 때문에 정당 지지율에 훨씬 못 미치는 의석수를 갖고 있거나 의석수가 아예 없는 군소 진보정당들도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 개혁의 큰 과제로 여기고 있다.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7월17일 개헌절 경축사에서 “현행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의 대전환과 미래를 주도할 수 없다. 이제는 정치의 틀을 근원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틀은 지역주의와 진영 논리를 벗어던지고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다수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대표제(양당제)를 ‘합의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비례대표제 혹은 중대선거구제(다당제)로 바꾸는 것이다.

삶의 문제 반영 못하는 선거제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대표제라는 선거제도가 양당 체제를 강제하는 이유는 승자독식 구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는 사람 1명만 국회의원이 되는 방식인데 이렇게 되면 2등이 얻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결국 지역구에서 1등을 가장 많이 배출할 수 있는 2개의 거대 정당이 진보-보수의 대표로 살아남는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정당은 자연히 원내에 진입하기 어려워진다.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양당 후보가 아니라 환경이나 생태 문제에 관심 있는 녹색당 후보라고 한다면 (1등만 당선되는 제도에서는) 어차피 가봐야 안 된다고 생각하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실제 거대 양당에 의해 전개되는 정치 과정 자체가 많은 유권자들의 관심과 삶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선거구제의 또 다른 문제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에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부분적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수가 54석에 불과해 비례성을 거의 담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표의 비례성이 제대로 반영됐다면 지난 19대 총선에서 10.3%의 당 득표율을 받은 당시 통합진보당은 300석 가운데 10%인 30석의 의석을 확보했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얻은 의석수는 13석에 불과했다. 지난 총선에서 42.8%의 정당 득표율을 얻은 새누리당의 경우 표의 비례성만으로 따지자면 의석수는 127명이 되어야 하지만 새누리당은 절반이 넘는 152석을 얻을 수 있었다. 지역구에서 1등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는 특히 지역주의 극복을 가로막는다. 예를 들어 지난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부산에서 각각 31.8%와 8.4%의 정당 득표율을 보였다. 둘의 득표율을 합치면 40%다. 그렇다면 모두 18석인 부산 지역 의석수 가운데 두 당이 합쳐 적어도 6~7석을 차지했어야 하지만 결과는 민주통합당이 겨우 2석을 확보한 데 그쳤다.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40% 국민의 표가 사라진 셈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현재의 선거제도가 우리나라의 지역 패권주의와 결합하면서 지역주의를 온존시키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느 당이 유리한가를 떠나 다원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10%의 국민이라면 10%의 발언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당의 개혁 의지 적은 게 가장 큰 문제

현재의 양당 체제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다당제 구조로 가면 어떤 변화가 이뤄질까. 다당제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진보-중도-보수 세력이 각각 비슷한 비율의 의석을 차지해 누구도 혼자서는 집권할 수 없도록 균형을 이루는 형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이념 성향이 진보 30%, 보수 30~40%, 중도 30~40%라고 알려져 있다. 다당제를 이루기에 좋은 구조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은 누구도 기득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협의가 이뤄지게 되고 정권은 중도 세력이 진보 또는 보수 세력과 연대해 연합정부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합의제 민주주의’다. 물론 우리나라가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정치 갈등이 한번에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진보-중도-보수당이 균형을 이룬다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두 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거제도를 개혁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정치 실종’의 상황이다. 이제는 정치 개혁을 실현하는 가장 기초적인 틀을 마련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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