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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이 계산서만 왔다갔다

3선 의원 정장선 후보 출마시킨 새정치민주연합, ‘장기적 투자 공천’ 비전 안 보여
등록 2014-07-19 16:1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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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들은 7·30 재·보궐 선거 지역구인 경기 평택을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득중 후보를 지지·지원하기 위해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장선 후보를 내보냈다. 진보 진영에선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당이 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다짐이 사실이라면, 해고자를 죽음으로 내몬 쌍용차 사태 해결 의지가 정말로 있다면, 새정치민주연합도 김득중 후보에게 통 크게 양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대표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말한 바 있고, 안철수 대표는 2012년 10월 쌍용차 해고자 단식농성장을 찾아 방명록에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남아 있는 분들께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혹시라도 김득중 후보를 지지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재건이 필요하다며 당이 출마 권유”

새정치민주연합이 평택을에서 3선 의원을 지낸 정장선 후보를 출마시킨 것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정 후보는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19대 총선에 불출마했다가, 이번에 출마를 권하는 당의 요청을 수락했다. 지난 7월9일 평택의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정 후보는 “이 지역에서 우리 당의 상황이 나빠져 재건이 필요하다며 당이 출마를 권유했다. 또 지면 10년 안에 이 지역을 되찾아오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4 지방선거에서 평택의 정당득표율(광역의원 비례대표)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37.9%)이 새누리당(54.1%)에 크게 밀렸다. 정 후보 캠프의 한 인사는 “여긴 새누리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40%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전날 아산만 방조제 기공식에 참석했는데, 그 방조제가 평택 인근에 있다. 아직도 박정희 향수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런 여건에서도 정 후보가 인물 경쟁력으로 돌파해 3선을 지냈고, 다시 당이 그 힘을 믿고 등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 후보는 김득중 후보를 지지하는 단일화를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정 후보는 “김 후보를 만나볼 생각이다. 단일화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쌍용차 사태 등과 관련해) 김 후보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무엇이 해결되길 원하는지 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김득중 후보가 출마한 절박함을 알고 있지만, 김 후보를 위해 단일화를 해줘도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란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이번 선거 공천에 깊이 관여한 지도부의 한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한 곳이라도 더 승리해야 하는 상황을 이유로 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의 국회 과반의석이 무너지고, 야권이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다. 김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한두 석을 더 이겨 여당의 과반의석을 저지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도 정밀하게 봐야 한다.”

“김 후보 지지 vs 여당 과반의석 저지”

재보선 승리라는 단기적 승부에 집중한 듯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과정에서 사실 김득중 후보 지지 같은 고민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쌍용차 해고자 후보를 지지하는 상징적 결단을 통해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이른바 ‘장기적 투자 공천’이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없었다. 당내 진보·개혁 성향 모임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의 말이 그래서 솔직하게 들린다.

“이번 선거 공천은 당내 민주주의가 전혀 작동이 안 됐다. 그런 상황에서 김득중 후보 지지 같은 얘기를 할 동력도 없었다. 노동자 후보와 단일화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 당을 계속 이 꼴로 가게 만드느냐는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처지란 얘기다.”

평택=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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