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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는 영원하다

결국 이기는 놈은 이기고 지는 놈은 지는 월드컵의 세계, 정치의 세계
등록 2014-06-24 15:27 수정 2020-05-03 04:27
2012.12.18
기자 : 사진공동취재단
저작권사 : 사진공동취재단
국가 : 한국
장소 : 부산 부산역 문재인 부산역 유세

2012.12.18 기자 : 사진공동취재단 저작권사 : 사진공동취재단 국가 : 한국 장소 : 부산 부산역 문재인 부산역 유세

2012년 12월 대선, 부산역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유세에 참가한 시민들.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무너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기 같다(위쪽). 공은 둥글어 기대를 낳는다. 승부는 예측 불허 같지만, 짐작과 다른 결과는 섣불리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의 이변을 위해 숱한 반복을 견뎌야 한다. 지난 6월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보던 관중이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2년 12월 대선, 부산역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유세에 참가한 시민들.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무너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기 같다(위쪽). 공은 둥글어 기대를 낳는다. 승부는 예측 불허 같지만, 짐작과 다른 결과는 섣불리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의 이변을 위해 숱한 반복을 견뎌야 한다. 지난 6월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보던 관중이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축구공은 둥글다.

‘아, 정말로 둥글다!’ 기대가 터지는 순간이 있다. 6월18일 새벽, 오스트레일리아가 마침내 역전골을 넣었을 때도 그랬다. 아리언 로번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오스트레일리아가 두 골을 연달아 터뜨려 1 대 2 역전! 스페인도 이긴 네덜란드를 오스트레일리아가 이긴다면, 이건 사건이다. 후반 9분, 지구 반대편에서 먼 북소리처럼 울린 서형욱 MBC 해설위원의 한마디, “축구 모르는 거예요!” 그러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둥근’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4분 뒤, 네덜란드는 동점골을 넣었고, 다시 10분 뒤 역전골이 터졌다. 3 대 2 펠레 스코어는 네덜란드의 것, 골방의 축구팬은 세상이 그렇지 뭐, 차갑게 식은 치킨을 뜯는다. 아무리 세월호 참사, 인사 참사를 겪어도 새누리는 쉽게 지지 않는다. 2014년 지방선거 결과가 증명한다. 불행히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컨디션은 일시적이고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생략법이 가미된 이 문장은 참 잔인하다. 다르게 말하면, 결국 이기는 놈은 이기고 지는 놈은 진다는 것이다.

정말로 축구공은 둥글다. 그래서 우리는 속는다.

6월18일 그 새벽에 이어진 경기는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오래된 말을 증명했다. 2008년 유럽 챔피언, 2010년 월드컵 우승국, 2012년 유럽 챔피언 스페인은 그렇게 무너졌다. 2 대 0. 칠레의 승리가 임박한 가운데 아나운서는 말했다. “축구는, 특히 축구공은 누구에게나 둥글다.” 둥글게 둥글게 지구는 둥그니까 공은 굴러서 카시야스를 지나쳐 골문을 넘었다. 붉은 옷의 칠레 관중이 환호성을 질렀고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이 배출됐을 때,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 앞에 모인 이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의원 1명이 10명이 되고, 10명이 100명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이변의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한 명의 기초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제로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세상에는 칠레의 승리같이 마약 같은 이변이 가끔씩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속는다. 희망의 증거,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란 꿈이다.

그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한다.

저변이 다르다. 유럽의 동네마다 축구클럽이 있고, 남미의 마을마다 골대가 있다. 저변이 다르니 노하우가 다르고 수준이 달라진다. 지구촌 축구의 최상위 계층은 유럽, 다음은 남미, 아래는 아프리카·아시아…. 축구 피라미드는 세기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세네갈 돌풍과 나이지리아 축구가 지구촌을 강타했던 20세기 후반 지구촌 축구지도가 흔들리나 싶었다. 그러나 10~20년이 흐른 지금, 아프리카 선수들은 월드컵 그라운드에서 서로 욕하고 밀치고 싸우지 않으면 다행인 지경이 되었다. 한번 형성된 계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월드컵엔 32개국이 출전하지만 대략 유럽 4~5개국, 중남미 2~3개국 정도가 8강에 오르고 결국엔 유럽과 유럽 혹은 유럽과 남미 아니면 남미와 남미가 결승전을 치르게 되리란 지긋지긋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유럽의 무너지지 않는 저변처럼, 한국의 새누리당에는 드넓은 영남의 표밭과 견고한 중·장년 보수층이 있다. 우(右) 영남에서 좌(左) 호남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동고서저의 한반도에서 보수가 헛발질을 일삼아도 공은 데굴데굴 진보의 골문으로 굴러간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중력을 뒤집는 것은 기적이다.

그래서 영원한 양강이다. 유럽 아니면 남미.

한때 아프리카는 유럽과 남미의 고착된 양강체제를 흔들 제3세력으로 불렸다. 2004년 총선의 센세이셔널에 이어 여론조사에서 15%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던 민주노동당도 그랬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진보세력의 대표로 보수세력과 맞짱을 뜰 기대주. 그러나 21세기의 시간은 잔인했다. 제3세력 아프리카가 유럽과 남미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난 두세 번의 월드컵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진보정당은 현실을 바꾸는 중력을 뒤집는 도전에 실패했다. 거대한 경쟁자 앞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카메룬 선수들처럼 서로 싸우기나 하는 것들로 낙인찍혔다. 참여예산제의 고향 포르투알레그리, 생태주의 대안도시 쿠리치바에서 꿈의 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 진보정당의 현실은 그렇다.

한국에도 외계인이 있다. 메시처럼.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아름다운 축구를 해서 외계인이라 불렸던 호나우디뉴의 고향은 포르투알레그리다. 인간계의 선수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기술을 가볍게 하는 구사하는 외계인의 계보를 메시와 호날두가 잇는다. 한국 정치에 이들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스페셜 원’이 있다면 그는 단연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다. 2014년 그는 참패로 가던 선거를 눈물 한 방울로 뒤집는 신공을 선보였다. 정치 입문 20년, 그녀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다시, 공은 둥글다.

둥근 것은 공의 형식이다. 둥근 형식은 공평함에 대한 환상을 부른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1인1표다. 공평해 보이는 형식은 과연 공평한 결과를 낳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제로 그라운드에서 우리는 묻는다. 도대체 변화는 가능한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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