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4 지방선거는 무당파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여권 지지층 일부가 이탈했고 기존 야당이 이들을 떠안지 못하면서 무당파층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30~40%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무당파는 ‘행동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치에 실망하고 사회에 관심이 멀어진 무당파들은 최소한의 정치 행위인 투표마저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앵그리맘’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의 5월12~13일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투표 의향이 높아졌다는 의견은 특히 20~40대에서 평균 43.5%로 높게 나왔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가까운 시기에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세계관도 체크해볼 기회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실종된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어느 당을 지지할지를 놓고 방황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양당 체제 아래서 그 둘 모두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같은 군소 진보정당들은 그 자체로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헷갈려 한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동안 시민들 속으로 충분히 다가서지 못한 정당에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는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은 정치발전소의 도움을 받아 ‘나의 정당 찾기’ 기획을 준비했다. 정당 찾기 설명서를 읽은 뒤 자신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정당을 골라보자. 완벽한 대안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 없던 자신의 세계관을 체크해볼 수 있는 기회는 될 것이다.
정당의 가장 오래된 정의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민집단’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당 찾기 30개의 문항은 각 정당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강령 및 정강정책을 중심으로 내용을 추려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보수정당으로 불리는 새누리당과 중도·진보를 표방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차이점을 정강정책 문구를 통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두 정당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정강정책에 뚜렷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큰 정당이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강조할수록 포괄하는 시민들이 적어지기 때문에 (많은 시민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강정책의 내용과 실제 정당이 추진하는 정책 사이의 괴리가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개방적 통상 국가를 지향한다”고 돼 있지만 FTA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여전히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4개의 진보정당 비슷비슷하지만같은 정당에서 분리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의 정강정책도 서로 비슷해 차이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나마 녹색당과 노동당이 자신들의 색채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이들 4개의 진보정당은 성장지상주의적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핵발전소 폐지에 찬성하는 등 큰 틀에서는 비교적 동일한 ‘진보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당 간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었으며, 이러한 점을 30개 문항에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다보면 각 정당이 표방하는 ‘세계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왜 꼭 정당이어야 하는가’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당은 왜 필요하고 왜 나는 하나의 정당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 협동조합, 인터넷 카페 등에 가입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만으로는 엄연한 한계를 지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입법 기능이 이들에게는 없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은 “한 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99%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대변할 정치결사체가 없으면 그냥 길거리에서 싸우다 말게 된다. 원전을 반대하더라도 ‘원전반대 엄마들의 모임’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원내 진입한 정당이 원전을 폐기하겠다고 결정하면 실제 폐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정당을 빼놓고는 민주주의라고 일컫는 하나의 가치를 논하기란 쉽지 않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공동 저서 에서 “정당 없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평등한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효과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보다도 정당이다. 정당을 매개로 할 때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특정 사회집단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런 참여는 곧 정책 산출에서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쓰고 버려지는 정당 지지자들특히 돈과 권력이 없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정당의 존재 이유는 더욱 뚜렷해진다. 김경미 팀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에는 조직이 필요 없다. 이미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무언가를 조직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조직이 필요하다. 그들은 조직하지 않으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조직과 정당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의 ‘내 정당 찾기’ 기획처럼 시민들이 제 발로 자신에게 맞는 정당을 찾아나서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사회라면, 각 정당이 저마다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렸어야 하고, 시민들은 이미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선거 때마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시민운동인 매니페스토가 벌어지는 것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박상훈 대표는 “민주주의는 매니페스토를 통해 정책을 검증하고 시민들은 그걸 보고 ‘쿨하게’ 정당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미국인들은 ‘난 데모크라시다, 그린이다’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게 자연스러운 민주주의다. 정당을 앞에 놓고 그중에 뭘 고른다는 행위 자체가 정당과 시민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 이는 민주주의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1차적 책임은 정당이 져야 한다. 특히 야당은 자신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와 비판적 시민들의 열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김경미 팀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계속해서 당을 바꾸는 동안 지지자들은 필요할 때만 갖다쓰고 늘 버려지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군소정당의 경우에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기보다 야권 연대라는 ‘미봉책’으로 원내 진입을 시도했고, 원내로 진입한 뒤 ‘운동’에서 ‘정치’로 넘어가는 단계를 제대로 밟아나가지 못했다. 2012년에는 비례대표 부정선거를 통해 계파 간 자리 다툼이라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며 결국 분당의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다.
두 번째 원인은 정당 다원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나라 정치제도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현재의 제도로는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쉽지 않고, 신생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거대 정당의 독과점을 없애야 한다. 기존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3의 정당을 선택하고 이 정당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군소정당들은 대부분 대선 결선투표제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결선투표제를 실시할 경우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거대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투표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경우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군소정당의 득표율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선거 때 군소 정당 후보가 뒷번호를 배정받는 정당별 기호순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혐오증’을 이용해온 정권아직 정당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정치혐오증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독재체제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도 정치혐오증을 잘 이용해온 측면이 강하다. 성한용 선임기자는 칼럼을 통해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혐오증’이라는 장치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싸움이나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 말이다. 그런데 그 프레임이 지금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난 정치에 관심 없어”라는 말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정치혐오증을 벗어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뭘까. 아무리 찾아봐도 현재로서는 나와 세계관이 일치하는 정당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박상훈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의 정당정치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미래의 정당을 꿈꾸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조직에 참여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권력 견제를 지속하면서도 대안 정당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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