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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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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업체에서만 터지는 러시안룰렛

지하철 추돌 사고 직접 사고 책임은 외주업체라고 둘러댄 서울메트로,
냉동창고 사고 4명 숨진 이마트는 벌금 100만원… 안전의 민영화, 위험의 외주화
등록 2014-05-15 14:07 수정 2020-05-03 04:27

‘비용 절감에 눈먼 역행이 이번 대형 사고를 부른 원인’.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5월2일 상왕십리역에서 일어난 서울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 사고에 대해 서울지하철노조가 5월7일 발표한 성명서 내용의 일부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안전 ‘위험 신호’가 터져나온다. 5월8일 하루 동안에도 승객 7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의 엔진이 고장나고,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이 신호기 고장으로 100m 후진하는 아찔한 사고가 잇따랐다.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불러온 예고된 재난이었다. 서울지하철 사고의 경우를 보자.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사고 발생 직후 자체 조사를 통해 ‘신호 오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울메트로는 열차 추돌이 우려되면 뒷열차가 자동 정지되는 장치(열차자동정지장치·ATS)와 열차자동운전장치(ATO)를 병행 사용 중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ATS 신호에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신호 시스템 운영은 민간 외주(용역)업체 ㅇ사가 맡고 있고, 지난 4월29일 새벽에 ㅇ사가 신호연동장치 데이터 변경 작업을 한 뒤 신호 오류가 발생했다는 게 서울메트로 쪽의 설명이다. 직접적인 사고 책임은 외주업체에 있는 것처럼 비쳤다.

업무 위탁하면서 정규직 1천 명 줄어

외주화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손쉬운 선택이었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외부 민간업체에 전동차 경정비, 스크린도어 운영 등의 업무를 위탁하기 시작했다. 2007년 1만118명에 이르던 서울메트로 정규직은 그새 1천여 명 줄었다. 특히 전동차 정비 인원은 2008~2009년에만 200명 넘게 감축됐다. 정비 인력이 줄면서 점검 주기도 2달→3달, 2년→3년으로 완화됐다. 서울메트로 경정비 업무를 맡고 있는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ㄱ씨는 “사장을 비롯해 직원 140여 명의 절반가량은 서울메트로에서 옮겨온 사람들이다. 최근엔 전동차 정비면허 등 자격증이 없는 경영진의 지인들도 입사했다. 이번 추돌 사고의 원인을 떠넘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외주업체는 전문성보다는 서울메트로가 책임을 회피할 좋은 구실을 마련한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도 차량 정비 인력이 2005년부터 8년 새 2천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서울메트로는 용답역 등 8개 역사 운영도 외주업체에 맡겼다.
외주화로 인해, 안전과 사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첨단 시스템 도입을 이유로 노동자가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노동조합은 이번 서울지하철 사고에서 신호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로 ATO를 지목한다. ATO는 기관사 한 사람이 운전하는 ‘1인 승무’를 위해 도입된 장치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는 벌써 1인 승무 체제를 도입한 데 이어 무인 운전까지 준비 중이다.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인원 감축으로 위기 대처가 늦었다. 총정원은 1510명인데 현재 인원은 1301명이고 1인 승무제를 채택하고 있다”(‘2·18 대구지하철 화재 연구 조사 보고서’, 경북대학교)는 분석은 이미 잊혀졌다. 승객 수백 명이 탑승한 열차에 대한 상황 판단을 기관사 한 사람이 책임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10년 전의 교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업의 이윤을 내세우는 논리가 안전보다 먼저였다.

하도급 주는 이유 “유해위험 작업”

“공기업의 영업 수익이나 가치가 올라갈수록 시민은 사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 1인 승무 등 만약 전동차에서 사고가 난다면 시민들이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참혹한 서바이벌 게임만 남는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객원연구위원(철도 기관사)이 에 쓴 ‘예고편’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이번 상왕십리역 사고 때 승객들은 안내방송을 기다릴 새도 없이 손으로 전동차 문을 열고 터널을 빠져나와 탈출했다. 박 연구위원은 “지금의 외주화 시스템은 지하철이나 철도 선로 보수 공사를 하다가 외주업체 노동자가 죽어도 원청의 책임은 없는 구조다. 외주화와 비정규직 확대는 사람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죽이는 흉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금의 외주화 시스템은 지하철이나 철도 선로 보수 공사를 하다가 외주업체 노동자가 죽어도 원청의 책임은 없는 구조다. 외주화와 비정규직 확대는 사람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죽이는 흉기나 다름없다.” -박흥수 철도 기관사


‘위험의 외주화(아웃소싱)’는 노동계가 그동안 계속 지적해온 문제다. 건설, 조선, 건물관리, 위생업 등에서 하청노동자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안전보건공단이 51개 사업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원청 업체들이 하도급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40.8%)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유해 작업만 분리해 도급을 주는 것은 금지(제28조)돼 있지만, 수은과 도금 등을 제외하고는 고용노동부 인가만 받으면 된다. 원청 입장에선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이다. 산업재해가 일어나더라도 산안법상의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위험 업무를 외주화함으로써 재해율을 낮춰 산재보험료도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 일산 탄현점 냉동창고 사고로 하청노동자 4명이 숨진 이마트법인은 산안법 위반으로 겨우 벌금 100만원을 부과받았을 뿐이다.
대기업들이 밀어낸 위험은 사회 밑바닥으로 전이된다. 하청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원청노동자의 2.5배에 이른다. 하청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 탓에 정규직보다 위험한 업무를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 줄이기에만 급급한 하청업체가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길러낼 리도 없다. 하청노동자들이 위험한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난 3~4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8명이 사고로 숨진 현대중공업의 하창민 사내하청지회장은 “원청 안전관리자가 있지만 생산 일정을 앞세워 무리한 공정을 묵인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고는 예견된 인재다”라고 말했다. 세계 일류기업이라는 삼성그룹이라고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는 지난해 1월 불산 누출 사고로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유독성 화학물질 관리를 단계적으로 회사가 직접 책임지는 체제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맡는 하청노동자 500여 명에게 유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도록 해왔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사업장 안전사고와 판박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대기업들이 설비는 갖고 있으면서 설비 유지·보수 관리 업무를 외주화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또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하거나 안전교육을 시키는 업무 자체도 대부분 외주업체나 대행기관에 넘겨진 상황이다. 안전관리자와 설비 유지·보수 관리자를 원청이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화학물질 등 위험물질은 아예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소장은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안전사고 상황과 판박이다. 세월호 선원들이 귀찮다고 (국제 공용 주파수인) 16번 채널을 사용하지 않은 건 사업주들이 산재를 은폐하는 모습과, 엉망으로 구조 작업을 한 해경은 공장 안에 어떤 위험물질이 있는지도 모르는 관계 당국과 똑같다”고 꼬집었다.
“부패한 정부는 우리가 호흡하는 모든 걸 민영화하길 원한다.”(노엄 촘스키) 박근혜 정부는 KTX 수서발 자회사 설립으로 철도 민영화의 길을 텄다. 그리고 부패한 기업은 모든 안전과 위험을 외주화하기 원한다. 민영화와 외주화의 토양 위에서 재난은 언젠가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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