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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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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대한민국’ 폭발하다

너무나 심각한 비정상적 상태의 산물
규제의 합리적 강화로 비리를 척결해야, 그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등록 2014-05-02 00:38 수정 2020-05-02 19:27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이라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부실 설계, 부실 공사, 부실 관리가 낳은 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이었다.한겨레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이라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부실 설계, 부실 공사, 부실 관리가 낳은 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이었다.한겨레

세월호 대참사에 대해 생각하면 어느 지점에서 생각이 멈추고 눈물이 흐른다.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죽음의 공포를 맞게 되고 극단의 공포 속에서 죽어갔을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이 나라는 심각한 문제적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이 위급한 상황을 한시바삐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정말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겠는가?

불가피했던 사고였는가?

잘 알다시피 이 나라에서는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올해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21주기고, 성수대교 붕괴 20주기며, 삼풍백화점 붕괴 19주기다. 이런 사고는 최근에도 계속 일어났다. 2013년 7월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장에서 훈련장 쪽이 안전을 무시하고 고등학생들을 바다로 밀어넣어서 5명의 고등학생이 익사했다. 지난 2월에는 경북 경주의 코오롱 마우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해서 10명이 죽었다.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도 무뎌진 것 같다. 그런데 세월호 대참사는 새삼 많은 국민의 분노와 우려를 크게 일으키고 있다.

사실 세월호 대참사는 두 가지 점에서 이전의 사고들과 크게 다르다. 첫째,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을 잔뜩 태운 배가 갑자기 침몰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구조했다는 방송 보도가 있었으나 이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둘째, 그야말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조 작업이 며칠에 걸쳐 진행됐으나 결국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으니 참담한 사고가 며칠에 걸쳐 계속 진행됐던 것이다. 이런 사고는 세계 사고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것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비극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며칠에 걸쳐 계속 진행됐으니 온 나라가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처음에 그 참혹한 결과에 비통해하고, 이어서 그 불가피성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호 대참사는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백 명이 죽는 대참사가 됐다. 그것도 대부분은 사회가 지켜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세월호 대참사는 그 불가피성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사고다. 선장을 믿었기에, 어른들을 믿었기에, 아이들은 처참히 죽게 됐다. 이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세월호 대참사에서 사람들이 그 불가피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참혹한 구조의 실패 때문이다. 초기에 모두 구조했다는 엄청난 오보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구조가 잘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구조 작업에 대한 의혹은 계속 커졌으며, 결국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 나라의 해경과 해군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과연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지금 이 나라는 너무나 심각한 비정상 상태에 있지 않는가?

침몰은 선장이, 참사는 정부가

세월호 대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선장의 잘못이다. 선장은 배의 운항을 잘못해서 배를 침몰하게 만들었다.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승객에게 선실에 그대로 있으라고 방송하고 자기는 구조선을 타고 도망친 것이다. 이 점에서 선박 선원들도 선장과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 15명의 선박직 선원들은 승객의 구조에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으나 선장과 함께 모두 도망쳤다. 더욱이 그들은 해경의 구조선에 올라 도망치면서 해경에게 배 안의 상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이 저지른 법적·윤리적 잘못은 사실상 대량 학살을 저지른 것과 비슷하다.


세월호 대참사는 그 불가피성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사고다. 선장을 믿었기에, 어른들을 믿었기에, 아이들은 처참히 죽게 됐다. 이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해경과 해군의 구조가 잘 이루어졌다면 선장의 잘못은 침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해경과 해군의 구조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계속 커졌다. 첫날에 많은 병력이 투입된 것으로 보도됐지만 에 따르면 고작 16명이 투입됐을 뿐이다. 갑판에 나온 사람들을 구조할 때 선실에 있는 학생들이 선창에 얼굴을 붙이고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구조에 참여했던 한 선장은 선실에 있는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해경과 해군은 선실로 들어가서 학생들을 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해경과 해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의 헬리콥터들도 배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민간 잠수사의 활동 제약, 의문의 ‘구조회사’ 언딘마린인더스트리, ‘다이빙벨’의 사용 등을 둘러싸고 계속 큰 논란과 의혹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경과 해군의 행태를 보면 과연 구조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가 아니라 구조하는 척하기에 최선을 다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그 참담한 현장에서 의료물품을 치우고 컵라면을 먹었고,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피해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튀김닭을 시켜서 먹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적 참사에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손님들을 맞았다. 이런 문제적 행태가 잇따르자 침몰은 선장이 일으켰지만 참사는 정부가 일으켰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비리 작동의 사회

선장과 정부의 잘못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사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를 한다면서 선박 연령의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무려 10년이나 연장했다. 그 결과 전두환과 유착해서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고 학살 범죄를 저지른 의혹마저 안고 있는 유병언의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폐기 직전의 배를 구입하고 불법 증설하고 불법 과적해서 세월호 대참사의 길을 열었다. 2010년 국토해양부는 ‘대형 해양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체계 운영개선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모든 문제를 잘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전혀 실행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의 범죄는 대단히 크지만 이명박 정부의 잘못도 그에 못지않다.

세월호 대참사의 비극은 재연되지 않을 것인가? 문제에 올바로 대처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 개조 차원의 새로운 재난체계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새로운 재난체계 마련과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현실은 재난체계의 혼란과 국민불행시대가 되고 말았다.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대형 재난사고 대처의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라는 최소한의 도의조차 실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박근혜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사고들은 비리의 만연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를 한다면서 이 문제를 크게 악화시켰고,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를 더욱더 강행하려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리로 제도가 작동하지 않아서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가 아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독일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이 독일과 같은 사회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두 나라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회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인자인 비리의 정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비리가 만연한 사회이고, 한국의 사고는 대체로 비리형 사고다. 재난체계의 정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비리 대책의 정비다. 비리를 척결하지 않으면 재난도 재난 대책도 그저 비리의 먹이가 될 뿐이다. 세월호 대참사도 이런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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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분야에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찰스 페로의 정상적 위험론에 의거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가 정상적 상태에 있어도 기술의 복잡성 때문에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사고들은 비리의 만연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를 한다면서 이 문제를 크게 악화시켰고,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를 더욱더 강행하려 한다. 세월호 대참사는 비리사회 한국의 문제가 폭발하는 시작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규제의 합리적 강화이고, 그 핵심적 목표는 바로 비리의 척결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과정의 투명화와 비리의 엄벌화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책의 기획·결정·추진이 모두 인터넷으로 공개되어야 하며, 비리에 대해서 살인죄와 징벌적 손해배상죄를 적용해야 한다.

비리에 살인죄 적용을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언론 개혁과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초기에 YTN은 승객을 모두 구조했다는 엄청난 오보를 방송했다. YTN은 어떻게 해서 이런 엄청난 오보를 방송한 것인가? 잘못된 언론은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망칠 수 있다. 불량 언론은 초강력 흉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개혁이다. 비리 세력이 권력을 전횡하는 곳에서 비리의 척결은 불가능할 뿐이다. 비리는 사회를 내부에서 갉아먹고 무너뜨린다. 비리가 만연한 곳에서는 누구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 세월호 대참사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분명히 배워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비리 때문에 천진한 어린 영혼들이 끔찍한 공포 속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이 영혼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겠지만 단지 눈물만 흘려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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