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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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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들이 걸어야 할 진정한 참회의 길

현재 이익을 위해 미래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위기관리 외치며 기업 규제 완화하자는 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
등록 2014-05-02 09:32 수정 2020-05-03 04:27
1999년 6월30일 발생한 씨랜드 참사에서 19명의 유치원생 등 23명이 목숨을 잃었다.한겨레

1999년 6월30일 발생한 씨랜드 참사에서 19명의 유치원생 등 23명이 목숨을 잃었다.한겨레

15년 전 유치원생 20여 명이 캠핑장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씨랜드 참사에서 유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한 적이 있다. 피해자 진술, 부검 참여 등 수사와 배상 절차 처리까지 법률 업무가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일을 맡는 내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야 했다. 부모들의 슬픔과 분노도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었지만, 사건이 벌어진 과정과 이른바 수습 과정에서 본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작은 사고가 주는 큰 경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놀라고 당황하지만, 그 뒤 찬찬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사건의 원인에 부패, 무능력, 의무 위반 등이 은폐된 채 존재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씨랜드 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기 배선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컨테이너로 만든 가설물을 숙박시설로 둔갑시킨 업자, 이를 허가해준 공무원(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당초 허가를 반대했던 담당 공무원이 온갖 압력에 의해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됐고, 그 후임자가 바로 허가를 내준 거였다), ‘어린이캠프’라는 명목으로 기준 미달의 시설에 대여섯 살 되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밤이 되자 문을 잠근 방 안에 아이들만 남겨두고 다른 방에서 파티를 한 유치원 원장과 인솔 교사들이 있었다. 달리 피할 방법이 없었던 아이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화마에 희생되는 그 순간, 유치원 원장과 교사들은 건물로부터 달아나기에 바빴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너무나 같지 않은가?

씨랜드 참사 이전에 이미 우리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1993년),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 사고를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관련자들이 책임을 추궁당해 처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형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1999년 씨랜드 참사가 일어나고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인천 용현동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고등학생 5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부상자들이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2003년)이 이어졌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 사고(2007년), 경북 구미 불산 누출 사고(2012년) 등 많은 사람들이 사고 발생 즉시 생명을 잃지는 않았지만 큰 피해와 고통을 받은 대형 사고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벅차다. 그리고 지금 세월호 침몰로 인해 제대로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고등학생을 포함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 상태에 있다.

왜인가? 어떻게 이토록 무책임·비도덕·무능으로 점철된, 불가항력이 아닌 인재로 인한 대규모 참사가 반복되는가?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연구에서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통계를 분석해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작은 사고들이 빈발한다는 것으로,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큰 사고에는 그 이전에 반드시 징후와 경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사소한 사고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반드시 큰 사고가 발생하며, 거꾸로 작은 사고들을 그냥 흘리지 않고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예방 조치를 취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위기관리는 사전 차단부터

작은 사고나 문제제기를 통해 경고가 울리면 제도와 관행, 인적 영역 등 모든 부분에 대한 점검을 통해 큰 사고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작다면 작은 사고들로부터 장래의 대규모 사고로 이어질 징후를 살피고 예방 조치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애써 외면해왔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구조적인 것에서 찾기보다는 개별적인 이유만을 살펴 직접적으로 드러난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사고 처리를 종결해왔다.


결국 사소한 사고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반드시 큰 사고가 발생하며, 거꾸로 작은 사고들을 그냥 흘리지 않고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예방 조치를 취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기업을 비롯한 가해자는 사건을 개별화해 최소한의 비용으로만 처리하려 했고, 정부는 향후 유사 사고나 안전 문제 발생 방지를 위한 사후적 투자를 소홀히 했으며, 사법부 역시 피해자들의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손해만을 지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줬을 뿐이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싸게싸게’ 처리해온 결과가 대형 참사로 반복돼 나타나는 것이다.

예방비용보다 사고 발생 뒤 처리비용을 적게 지출하는 것에 사회 전체가 관용적인데,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나 기업이 과연 예방 조치에 신경 쓰려고 하겠는가? 참사의 당사자가 된 가해자는 그저 운이 없을 뿐이라고 치부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치권은 징벌적 배상제도 등 책임을 엄하게 묻는 제도적 장치 도입을 기업 경쟁력 약화 등의 이유로 거부해왔고, 규제 완화 등을 이유로 그나마 있던 필수적 지출마저 계속 축소해왔다.

‘위기관리’란 말이 유행이다. 진정한 위기관리란 사건 발생 이후의 수습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방 조치 없는 위기관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진지한 성찰 없이 한편에서는 작은 정부와 기업 규제 완화를 외치고, 다른 편에서는 위기관리를 추구한다고 한다. 일구이언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지난해 초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내놓고 가을에는 대형재난 재발방지 대책을 점검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진정성과 효과를 믿기 힘들었던 이유가 있다. 실제 말과는 달리 소방방재청 예산을 전년보다 삭감했고, 노후 선박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산도 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봄이 지나가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6963.html

우리는 대형 사고를 겪을 때마다 이번이 부디 마지막 참사이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기원과 기대만으로는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현재의 부분적이고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의 생명과 근본 가치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데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건이 벌어진 뒤 대강 수습하면 되고, 그 시점만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이한 사고를 떨쳐야 한다.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사고 예방과 피해 확대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과 사회적 지출을 국가와 기업에 요구해야 한다. 작은 사고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진정한 공동체와 국가는 무엇보다 구성원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건 구성원 모두의 책무이다.

다시 돌아가는 고리 원전 1호기

이 순간에도 세월호의 희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이 희생자들의 부모와 가족의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고,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의 관행을 뒤집는 것, 이것이야말로 ‘남은 자’들의 진정한 참회일 터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 세월호의 상황을 집중 보도하고 있는 동안, 신문의 한켠에는 가동수명을 한참 넘기고, 여러 차례 고장과 사고를 일으켜온 고리 원전 1호기를, 전력 공급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다시 정비하고 재가동해 적어도 2016년까지 계속 전력을 생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우리는 진정 경고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참회하고 있는가?

아직도 나는 비극의 중간에 있는 자가 겪는 괴로움의 바다를 다 건너지 못했다.

백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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