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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은 대안이 없다

SNS 수준으로 떨어진 언론, SNS로 유포되는 유언비어…
정부는 유언비어 단속 나서면서 통치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
등록 2014-04-30 14:17 수정 2020-05-03 04:27

과거의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때가 위기라고 안토니오 그람시는 분석했다.
정부와 언론, 기성의 것에 대한 불신은 절정에 달했다. 지난 4월24일, 비통한 마음으로 기다려온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주검 수습 작업조차 제대로 되지 않자 전남 진도군청에 있는 대책본부를 찾아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에워싸고 연좌농성을 벌였다. 단 하나의 요구는 ‘총력 수색’이었다. 언론은 도처에서 불신당했다. 진도에서 기자들은 유족에게 접근조차 거부당했고, 전국에서 시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정보 과잉이 소통의 장애

경찰청 등은 유언비어를 주의하라고 하지만,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유언비어를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떠도는 말들도 허위로 밝혀지면서 허탈감은 더해진다. 경찰청 화면 갈무리

경찰청 등은 유언비어를 주의하라고 하지만,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유언비어를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떠도는 말들도 허위로 밝혀지면서 허탈감은 더해진다. 경찰청 화면 갈무리

“언론의 신뢰가 딱 SNS 수준까지 떨어져버리니 역으로 SNS가 언론만큼의 신뢰를 획득해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됨.”(@WayneWide2) 이렇게 트위터에 올라온 글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언론의 대안이 되었다. 시민들은 ‘오보를 내고 통제를 당하는’ 언론을 대신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소통장으로 여겨지는 SNS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풍문의 매체로 밝혀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NS를 통해 유포된 말들이 거짓으로 판명된 경우가 잇따라 나왔다. 세월호에 갇힌 단원고 학생을 가장해 구조 요청 메시지를 꾸며내 유포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페이스북 ‘좋아요’ 개수를 늘리기 위해 이같은 일을 벌였다고 한다. 그렇게 SNS는 실종자 가족과 시민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이니 앞서 인용한 트위터는 이렇게 끝난다. “덕분에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버리고.”

그래서 불신의 대안이 불신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되는 역설”을 지적했다. 그는 SNS에 대해 “정보의 속도는 높였지만, 정보의 신뢰는 높이지 못했다”며 “신뢰와 믿음을 구축하는 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소통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조에 무능한 정부는 혼란을 이용하는 데는 유능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세월호 사건 자체를 통제하고 수습하진 못하면서 사건에서 나오는 정보나 담론은 통제했다”며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자 처벌 운운하며 통치성을 강화하는 야심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위험에 대한 효율적 예방과 사고의 효과적 수습에는 무능하면서 참사를 통치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단 것이다. 여기에 선장에게 분노의 표적을 돌리고, 유병언(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책임의 초점을 맞추는 언론이 보조를 맞췄다. 그렇게 정부의 책임은 대중의 시야에서 가려졌다.

생존과 상상력, 두 개의 화살

세월호 이후의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더 격렬해질 것인가.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고 믿을 만한 대표자를 찾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인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두 개의 화살을 모두 잡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 차원에서는 생존 투쟁이 격렬해지지만, 공동체 차원에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재난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주목했다. “옴진리교 지하철 가스테러, 동일본 대지진은 통제 불가능한 재해에 가까워 분노의 표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에선 불가능성이 전일화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한국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그래서 분노의 표적은 생기는데 자꾸 미끄러지는 측면이 있다.” 세월호 선장에게서 미끄러진 분노는 유병언을 향하고 있다. 지금, 불신은 대안이 없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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