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거듭되는 정부의 헛발질 때문이다. 출발선은 해양경찰이 끊었다. 4월16일 아침 7시7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산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관할 해역으로 세월호가 들어왔다. 하지만 오전 9시7분까지 120분간 진도 VTS는 세월호와 단 한 차례도 교신하지 않았다. 선박이 진입 신고를 하지 않으면 최대 벌금 300만원을 내야 한다.
“빨리 GPS 경위를 대라”세월호의 이상 징후는 아침 8시48분에 이미 나타났다. 36초간 정전이 됐다가 8시52분까지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을 그리며 급회전했다. 진도 VTS의 레이더 화면에 그 궤적이 그대로 기록됐다. 화면만 제대로 살폈어도 구조 시간을 10분 이상 벌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해경은 첫 침몰 신고를 받고도 허둥댔다. 신고자는 단원고 학생 최덕하(17·사망)군이었다. 그는 아침 8시52분32초 전남소방본부(119)에 전화를 걸었고 2분 뒤 목포해경 상황실로 연결됐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학생에게 해경은 “경위”(위도와 경도)를 요구했다. 학생이 당황해하자 소방본부 직원이 “배에 탑승하신 분”이라고 설명했지만 해경은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렇게 8시56분57초까지 통화가 이어졌고 해경은 8시58분에야 신고를 정식 접수했다. 구조 시간 6분이 또 날아갔다.
탑승객의 첫 신고보다 3분 늦은 아침 8시55분, 세월호 1등 항해사 강원식(42)씨가 VTS에 긴급 무전을 쳤다. “지금 배가 넘어갑니다.” 하지만 신고처는 엉뚱하게도 관할이 아닌 제주 VTS였다. 사고 지점에서 무려 90km나 떨어져 있었다. 12분이 지난 9시7분 진도 VTS가 “지금 침몰 중입니까”라고 다시 확인해야 했다.
침몰 직전까지 진도 VTS는 세월호와 30분간 교신했다. 그러나 승객 탈출 결정은 끝까지 미뤘다. 세월호가 “본선이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9시24분)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저희가 그쪽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9시25분)라고 떠넘겼다. 그사이 구명조끼까지 갖춰입은 탑승객들은 “대기하라”는 말만 믿고 선실에서 기다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세월호는 오전 10시8분 침몰했는데 “뛰어내리라”는 대피 방송은 오전 10시15분에야 나왔다.
구조 작업에도 해경은 소극적이었다.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기울어가는 배에 300여 명이 갇혀 있는데도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만 헬기나 구명정으로 건져올렸다. 배 안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배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을 즈음(11시24분) 잠수요원을 최초로 투입했다. 그 인원도 16명에 그쳤고 강한 조류 탓에 16분 만에 중단됐다. 실종자 가족의 항의가 빗발치자 4월18일에야 잠수요원을 500여 명으로 늘렸다.
19일에야 집어등 바지선 동원더딘 구조와 말바꾸기, 불화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사고 첫날부터 실종자 가족은 “집어등과 바지선을 동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집어등’이 있는 오징어잡이배·고등어잡이배가 있으면 밤에도 구조할 수 있고, 바지선이 있으면 잠수대원들이 쉬다가 재잠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경은 즉각 반응하지 않다가 사고 나흘째인 4월19일에야 도입했다. 생존자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배 안에 공기를 넣는 시간을 놓고도 계속 말을 바꾸었다. 해경은 4월17일 오전 “공기 주입을 위해 사고 해역 주변에 잠수부 등이 아침 8시30분부터 대기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때는 장비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공기 주입 개시 시간을 4월17일 낮 12시30분, 밤 10시, 4월18일 오전으로 미뤘다. 결국 4월19일 오전 11시19분 공기 주입이 시작됐다. 구조 희망을 품었던 실종자 가족은 분노했다.
민간 잠수요원들이 해경과 갈등을 빚다가 4월22일 철수하기도 했다. 해군특수전전단(UDT) 동지회의 김명기(36)씨는 와의 통화에서 “해경이 막아 아예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천안함 사고 때와 달리 지금은 민간 업체가 끼어 우리는 구조 작업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라고 말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4월23일 “자원봉사를 위해 찾아온 민간 잠수요원들이 34개 단체에 343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16명이 실제로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절박한 작업 현실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참사 초기부터 줄곧 구조 작업을 주도한 민간 잠수요원은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언딘마린인더스트리’(이하 언딘)뿐이었다. 이들이 첫 선내 진입 성공(4월18일), 첫 선내 주검 수습(4월19일)을 이끌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의 고명석 대변인은 “정부가 수색을 총괄하지만 구체적인 계약은 선사(청해진해운)와 맺는다. 피해를 보상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선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딘·해경이 주도하는 구조 활동은 혼선의 연속이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4월21일 사재를 들여 수중장비 ‘다이빙벨’을 가져왔지만 해경이 돌려보냈다. “바지선 닻들이 서로 꼬일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틀 뒤인 4월23일 언딘이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에서 다이빙벨을 급히 빌려와 25일부터 사용했다. UDT 동지회가 가져온 머구리배도 그랬다. 김명기씨는 “17일 잠수 시간을 늘려주는 잠수장비 머구리배 4척을 사고 현장에 가져왔지만 해경이 막아 사용하지 못했다. 대책본부는 나흘이 지난 21일 머구리배를 급히 다시 투입했다”고 말했다.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데 든 돈 6천만원사고 대책의 지휘·명령 체계도 엉망진창이었다.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해경, 교육부 등이 사고대책본부를 별도로 꾸려 전국에 대책본부만 10여 개가 난립했다. 사고 둘쨋날인 4월17일 오전 9시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으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구성됐지만, 다음날(4월18일) 저녁 8시 본부장을 이주영 해수부 장관으로 교체했다. 사고 발생 이후 59시간 만에 사고대책본부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앞서 사고 첫날 오전 9시45분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해야 할 ‘컨트롤타워’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하 중대본)가 가동됐다. 하지만 구조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판만 받았다. 구조 인원은 368명→164명→179명→175명으로, 승선자는 477명→459명→462명→475명→476명으로 계속 고쳐졌다. 그 와중에 실종자를 구조자로 잘못 분류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2월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현판과 로고를 바꾸는 데만 6천만원이 들었다. 안전 강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전문성이 부족한 탓이다. 안행부에서 안전 관리를 맡은 국장(3명), 과장(11명) 대부분이 행정고시 출신 일반 공무원이다. 안전을 총괄하는 이경옥 2차관은 안전 관련 업무 경력이 전무하다. 중대본 총괄 조정을 맡은 이재율 안전관리본부장도 경기도 부지사를 지낸 행정 전문가다. 게다가 재난 분야 전문가가 모여 있는 소방방재청을 제외했다. 사회 재난은 안행부 2차관이, 자연 재난은 소방방재청장이 중대본 차장을 맡도록 재난안전관리법을 지난 2월 개정해서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토목환경공학)는 “행정가는 있지만 위기관리 전문가가 없다. 실제로 현장을 아는 사람이 지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표지이야기] 폐허에 성난 눈만이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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