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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국정원은 간첩을 만들었다

‘약한 고리’를 이용한 국정원의 안보 장사 유우성 사건 “아편을 많이 했다”

“(10년 터울로) 북에서 봤다” 함량 미달 증언들, 국정원 ‘형님’ “북한 사람 소개해달라” 제안도
등록 2014-03-20 14:27 수정 2020-05-03 04:27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국가정보원이 ‘철밥통을 사수’하느라 무리하게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국가정보원이 ‘철밥통을 사수’하느라 무리하게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성현의 지혜가 아니면 간첩을 운용할 수 없고, 어짊과 의로움이 없다면 간첩을 부릴 수 없다. 미묘하고 교묘하지 않으면 간첩의 실질적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손자는 그 병법의 대미를 ‘용간’(用間)의 조언으로 매듭지었다. 간첩을 활용하고 적의 정세를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날마다 이 나라의 신문 1면을 채우는 국가정보원의 ‘간첩사건 조작 의혹’을 지켜보았더라면 손자는 뭐라고 말했을까. ‘의롭지 못함의 극치’이며 ‘군주의 보좌가 아니’라고 혀를 차지 않았을까.
스스로의 ‘의롭지 못함’을 가린 채 ‘군주의 보좌’ 역을 항구히 지키기 위해 정보기관들이 제물을 필요로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기의 ‘어마무시한’ 간첩들이 30~40년이 지난 지금에야 줄줄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 한쪽에서 40년 전의 간첩이 무고한 시민으로 누명을 벗는 사이, 한쪽에선 설익은 간첩사건들이 터져나오니 ‘평행우주’라고 할 만하다.
은 얼어붙은 남북관계 위에서 공안기관이 어떻게 ‘약한 고리’를 이용해 안보 장사를 이어가는지 이 평행우주의 궤도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수사기관의 증거조작 의혹으로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2013년)을 중심으로, 보수 정부 시기에 발생한 몇 개의 ‘석연찮은’ 간첩사건들을 돌아보았다. 시대는 변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정보기관의 구태는 변한 것이 없었다. _편집자

“역사는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주변부를 누르는 악몽이 국가라고 가르쳐준다. 국가이념은 국가가 만인을 평등하게 보호하는 장치라고 미화하지만 현실은 국가가 사람을 잡아먹는 장치라고 폭로한다.” -이재승,

“대한민국이 깜짝 놀랄 만큼 (내가) 아편을 많이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1심 공판이 진행되던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이 한 차례 술렁였다.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탈북자 ㄱ씨가 스스로 아편중독자임을 고백했다. 2011~2012년 세 차례에 걸쳐 유우성(34)씨를 북에서 봤다고 증언한 이였다. 북에서 한 지방에 살지도 않았고, 유씨는 그를 생전 처음 보는 처지였다. 탈북 화교 출신인 유씨는 서울시에서 일하며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 등으로 2013년 2월 구속 기소된 뒤 같은 해 8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탈북자를 활용한 탈북자 간첩 잡기

“말하는 모습 자체가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아서 변호사님이 ‘혹시 아편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어요. 북에서 사회보장 지원을 받았고 일정한 직업이 없던 사람이기도 했고요.” 유씨는 돌이켰다. 변호인의 질문에 ㄱ씨는 당당히 “아편을 했다”고 답했다. 나중에 유씨는 해당 기간에 가족과 중국에서 설 명절을 보내며 찍은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검찰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ㄱ씨가 ‘정상’으로 나온 병원 정신감정 결과를 2심 법원에 제출했다. 판사 앞에서 약물중독을 털어놓은 증인의 증거능력을 인정해달라고 한 것이다. 변호인 쪽은 “ㄱ씨가 정신병자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거짓말했다고 했을 뿐이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1심 당시 “북에서 유우성을 봤다”고 주장한 또 다른 탈북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증인 ㄴ씨는 유씨를 1997년과 2007년, 10년 터울로 거리에서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징역살이를 했던 자신의 남편이 징역을 받은 시기는 기억 못해도, 유씨에 대해서만은 당시 그가 입고 있던 옷의 차림새까지 생생히 기억한다고 진술해 재판부를 놀라게 했다. 만난 적 없는 사이지만, 어렵게 탈북한 경험을 공유하는 탈북 주민이 자신을 모략하는 것에 유씨는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탈북자들의 가짜 증언을 앞세워 탈북자를 간첩으로 모는 정보기관들이 괘씸했다.

유씨도, 그들도 모두 한반도의 주변부였다. 국가정보원이 감독을 맡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주연 유우성씨는 탈북 화교라는 이중의 소수자였다. 국정원의 협력자로 활동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김아무개(61)씨는 탈북 브로커 활동을 하던 중국동포였다. 유씨의 진술을 배척하기 위해 검찰 쪽 증인으로 줄줄이 나온 단역급 출연자들 역시 대부분 탈북 주민이었다. 남한의 관객들이 열광할 때 탈북 주민들은 불똥이 튀지 않도록 숨죽인 채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탈북자를 활용한 탈북자 간첩 잡기’는 분단국가 한국의 정보기관에 가장 손쉬운 ‘간첩 제조’ 방식이다. 주변부는 쉽게 ‘중앙의’ 필요에 따라 동원된다. 한국에 입국하면서부터 탈북자들은 국정원과 보안경찰의 상시적인 관리체계에 놓인다. 정보기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사건을 비롯해 여러 탈북간첩 사건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내세우는 증인의 다수는 또 다른 탈북자들이다. 북에서 지긋지긋한 ‘생활총화’에 시달렸던 이들이 남에서 같은 탈북자를 비판하기 위해 다시 단상에 서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아’ 하면 ‘아’ 하고 ‘어’ 하면 ‘어’

2008년 ‘위장탈북 부녀간첩 사건’에서도 탈북자가 주요 증인 중 한 명으로 법정에 섰다. 탈북 주민 출신으로 중국을 오가던 사업가 김동순(69)씨는 그보다 앞서 ‘북한 국가보위부 공작원’으로 구속된 의붓딸 원정화(40)씨에게 10억원가량의 돈을 줘 편의를 제공하거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소재를 알아내려 하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원정화 간첩사건’)됐다. 이후 원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지난해 출소했다. 아버지 김동순씨는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정권이 대대적인 간첩사건을 터뜨려 공안 정국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여 감히 이길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1심 변호인 박광직 변호사의 회고다.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지난해 5월 재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탄원서를 적고 있다(왼쪽). 증거조작 의혹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한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씨를 지난 3월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의료진이 옮기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류우종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지난해 5월 재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탄원서를 적고 있다(왼쪽). 증거조작 의혹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한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씨를 지난 3월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의료진이 옮기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류우종


부녀간첩의 주요 증인인 김동순씨의 주요 혐의 중 하나는 황장엽씨의 거소를 탐지하려고 한 사실이었다. 당시 김씨가 북한민주화위원회의 서울 종로 사무실을 찾아와 “황장엽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 황장엽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는 탈북자 이아무개씨의 진술이 국정원 쪽 증언으로 제시됐다.


당시 김동순씨의 주요 혐의 중 하나는 북한 노동당 비서 출신인 황장엽씨의 거소를 탐지하려고 한 사실이었다. 이를 국정원에 증언한 탈북자 이아무개씨는 당시 김씨가 북한민주화위원회의 서울 종로 사무실을 찾아와 “황장엽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 황장엽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씨의 증언 내용은 다분히 개인적인 짐작에 가깝다. “탈북자라면 김정일이나 북한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 사람들이 대충 호응을 하는데 김동순은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는 수준이다. 당시 검·경·군·국정원이 꾸린 합동수사본부는 김씨가 소지하고 있던 ‘단파라디오’와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간첩 혐의의 증거로 내세우면서도 이씨의 진술에 기댔다. “탈북 자체가 김정일부터 시작해서 모두 다 싫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당원증에 애정이 있다는 것은 김정일 자체를 인정하는 건지.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함량 미달의 증인이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검거된 간첩들이 수집했다는 정보의 수준은 얄팍하다. 지난해 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유우성씨가 “탈북자 1만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실제 검찰 기소 당시에는 그나마 200명으로 축소됐다. 원정화 사건에선 하나원 동기 정보, 군 장교들 명함 100여 장이 포함됐다. 원씨가 연인 관계였던 황아무개 중위로부터 ‘부대 위치 및 소속, 담당 업무를 탐지 및 수집하였다’는 맥락을 들여다보면, 소속부대가 “하조대 근처”라고 황 중위가 답하거나 “보고 싶어. 아니, 그놈의 부대는 왜 그렇게 근무를 해”라고 원씨가 연인 사이의 흔한 걱정을 담아 말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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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통해 사건을 지켜봤다는 한 탈북 주민은 한국 수사기관의 행태에 분노했다. “탈북자들은 검찰이나 국정원이 ‘아’ 하면 ‘아’ 하고 ‘어’ 하면 ‘어’ 하는 식이에요. 칼자루 쥔 사람과 칼날을 쥔 사람의 관계잖아요. 그래놓곤 같은 탈북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당신이 부인할 수 있느냐’고 하겠지요.”

탈북자들이 정보기관의 ‘손쉬운’ 조력자가 되는 이유는 있다. 탈북자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탈북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안기관을 상대로 해서 그들이 조작을 하든 사실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아무 수단도 갖지 못한 무방비한 상태의 최약소 계층입니다. 북한의 독재체제에서 권력의 막강한 힘에 핍박받은 사람들이어서 정부의 막강한 기관이 회유하면 말려들 여지도 충분하지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절반이 넘는 탈북자들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취업한 탈북자 중 30% 이상은 일용직이다. “회유나 협박보다도, 살아남는 문제예요. 알아서 기어줘야 일자리가 생깁니다. (국정원에서) 안보 강연도 요청하고 프로젝트도 주니까요. 찍히면 지원이나 강연에서 배제돼요.”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군 관련 자료를 가져오면 100만원 받는다”

탈북 주민들이 늘 정보기관의 ‘먹이’인 것은 아니다. 때로 정보기관은 친근한 협력자의 얼굴로 다가온다. 탈북한 지 10년이 넘은 ㅇ씨는 얼마 전 국정원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친가가 이북의 고위층인 터라 아직 그쪽하고 연결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일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ㅇ씨는 “탈북자 지인이 이미 국정원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정보의 효용성에 따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일단 정보를 확인한 뒤 후불제로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또 다른 탈북 주민 ㅈ씨는 “군 관련 자료를 가져오면 10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생계가 곤란하거나 고정적인 일이 없는 이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단 그런 일을 시작하면 거기에 익숙해져서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아주 안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탈북자들의 궁핍 속으로 정보기관은 손을 뻗었다.

김동순·원정화씨도 간첩사건이 터지기 전 몇 차례 군 정보사·국정원 등 정보기관과 도움을 주고받은 흔적이 눈에 띈다. 이 사건의 1심 변론을 맡은 박광직 변호사로부터 건네받은 사건 기록을 종합하면, 당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군 정보사 소속 이아무개씨는 “원정화를 북한 정보 수집 관련 협조자로 활용하고, 원정화를 통해 피고인(김동순)으로부터 북한 정보를 취득할 생각에 원정화가 중국에 출입이 가능하도록 여권을 발급해줬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딸인 원씨를 위해 자신이 북에서 11년간 근무한 군수공장의 설계도와 기초 자료, 한 탈북학자로부터 입수한 핵시설 자료 견본, 북한 군부대 주둔지, 지휘체계, 주요 간부 인적사항 등을 군 정보사의 이아무개씨에게 건네는 등 “능력껏 도와주었다”고 재판 당시 진술한 바 있다. 2002년 말에는 원씨가 “국정원에서 임무를 받고 왔다. 북한에서 중요 정보를 가지고 20대 남자 3명이 탈북해 오는데 그들을 만나 정보를 받아야 한다”며 김씨를 찾아온 대목도 있다. 탈북한 구아무개씨는 실제로 강연 자료 1권을 가지고 이들을 만났다.

유우성씨도 간첩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국정원 직원과 ‘형님’으로 부를 정도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국정원이 ‘탈북 화교’라는 그의 배경에 관심을 보인 때도 있었다. 1심 결심공판 당시 유씨는 국정원 대북파트 담당자로부터 ‘정보원에게 다리를 놔달라’는 취지의 제안을 받은 사실을 진술했다. 2011년 말~2012년 초순, 그가 서울시청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국정원 직원은 “그냥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유씨는 “국정원 직원을 ‘선생님’ 또는 ‘형님’이라고 부르며 몇 차례 만났고 내가 화교인 것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몇 차례의 만남 뒤 ‘형님’은 유씨에게 “북한에서 사진 자료나 특정적인 자료를 빼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소개해줄 수 없냐. 중국말도 잘하니 주변에 그런 사람을 탐색해 소개해주거나 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유씨는 제안을 거절했다. 몇 차례 강력하게 거절하고 나자 ‘형님’은 “여러 가지 단체활동도 하고 거기에서 회장도 하고 있으니까 혹시 주변에 이상한 탈북자나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제보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에서는 북한에서 파일이나 사진 자료 같은 것을 빼내온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혜택을 줘서 가족 등이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다 보장해준다”고 덧붙였다.

‘망원’으로 이용되다가 ‘먹잇감’으로

그렇게 정보기관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원) 어장에 뛰어드는 이들 중엔 탈북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경지대를 부지런히 오가는 중국동포들도 표적이다.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 2개월 봉급 300×2=600만원, 가짜 서류 제작비 1천만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국정원의 협력자로 드러나자 자살을 기도한 중국동포 김아무개씨가 아들에게 남긴 유서 내용은 그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낸다. 중국동포 김씨는 8년 전쯤부터 탈북자 관련 단체와 접촉하며 중국 공안부에 붙잡힌 탈북자를 빼내주는 탈북 브로커 일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중국 동포사회에서 공문서 대행이 흔하게 이뤄지고 있고,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문서 대행이나 관련 활동을 해주는 중국동포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일단 삶이 빠듯하기 때문에 돈이 되는 일을 마다할 수 없는 것 같다.”(김용필 대표)

결국 대북 소식통이 끊긴 정보기관이 일반 탈북자나 중국동포들을 ‘망원’으로 이용하다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리고, 국경지대에서의 위법행위 등 약점이 잡히면 이를 빌미로 공안사건의 ‘먹잇감’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탈북한 사람들이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기도 쉽고 전화도 많이 하는 게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탈북자의 30% 정도는 북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있어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이후엔 다들 전전긍긍합니다. 혹시 돈을 보내거나 북의 가족과 연락했다가 간첩으로 몰리지나 않을까 하는 거죠.”


절반이 넘는 탈북자들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다. 취업한 탈북자 중 30% 이상은 일용직이다. “회유나 협박보다도, 살아남는 문제예요. 알아서 기어줘야 일자리가 생깁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말했다.


한 탈북 주민 지원단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탈북자들은 사실 몇만 명씩 들어오니까 정보 가치는 떨어지죠. 대신 북쪽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오가는 ‘정보원’으로 쓰고 이중간첩이네 하면서 걸죠. 세상은 변했는데 법은 옛 법 그대로니까 걸기가 좋은 거죠. 북쪽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신원불상이라도 반국가단체 간부들과 접촉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밀폐된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는 탈북자들을 회유하기 알맞은 공간이다. 방문을 밖에서 잠그게 돼 있어 사실상 ‘수인’에 가깝다. 게다가 ‘180일 이내’ 범위에서 정보기관 입맛대로 탈북자들을 잠정 간첩으로 간주하고 신문할 수 있다. 별다른 신체적 고문이 없더라도 심리적 압박이 가능한 기간이다.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는 신문 기간에 “‘질긴 ×’ 같은 욕설을 수없이 듣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현재 여동생 유씨는 중국에 있지만 아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유우성씨는 전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남한에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이 합동신문을 담당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탈북자 관리를 국정원에 맡겨둔 국가 체계가 문제예요. 국정원은 뒤에서 정보를 캐내야 하는 조직이지, 탈북자를 신문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빈약한 법적 근거에 의해 국정원이 어렵게 북에서 탈출한 취약계층을 거의 시간 제한 없이 가둬둘 수 있는 합동신문 체계를 재고해야 합니다.”

김형덕 한반도 평화번영연구소장은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죠. 가능하면 차이가 많아도 합리적으로 관계를 풀어야 해요. 북과 관계 개선을 안 해도 좋은데 최소한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대통령이 탁월한 정치적 결단을 하지 않는 한 관계 변화는 어렵다고 봐요.”

유우성씨는 지난해 1심 최후변론에서 재판부에 호소했다. “저는 저 스스로 자신을 원망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을, 화교인 것을.” 분명 삶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돌이켰을 것이다. 그는 남한에서 그 고초를 겪고도 “다시 태어난다면 남한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 모든 일이 스스로 탈북자이고 화교가 아니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라면, 분단의 틈바구니에서 짓밟힌 사람들이 모두 제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유씨가 더는 화교도, 탈북자도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설 수 있을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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