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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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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만원짜리 샤워용 휠체어는 어디로 갔을까

도비로 구입한 장비·물품 4만8974점은 공짜로 나눠줘,
국비 구입 장비들은 건물 안에 남아 있어
등록 2014-03-08 14:19 수정 2020-05-03 04:27

진주의료원 환자들이 사용하던 106만원짜리 샤워용 휠체어는 현재 누가 쓰고 있을까. 의료원 장례식장이 관리하던 2011년 사망진단서 서류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진주의료원에선 환자만 증발한 것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공공의료원을 구성하는 뿌리와 줄기와 열매와 이파리가 하나하나 해체됐다.

의료원 폐업은 도내 의료기관들엔 ‘횡재’

2013년 9월 12억7500만원짜리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가 경남 진주에서 마산으로 실려갔다. 9억3100만원짜리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의 목적지도 같았다. 4억8400만원짜리 유방 촬영용 장비와 1억5200만원짜리 초음파진단기 등 고가의 의료장비들도 시 경계를 넘었다. 1천원짜리 가위와 14만원짜리 핀셋부터 크고 작은 장비와 진료 재료 수만 점이 딸려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 의료 장비와 진료 재료 4만8974점(도비 구입 품목)을 도내 의료기관에 공짜로 나눠줬다(왼쪽). 사설 청소업체가 쓰레기차에 싣던 환자 개인정보 서류들이 땅바닥에 쏟아져 뒹굴고 있다. 노조는 보존 기한이 지나지 않은 자료들까지 경남도가 무단 폐기하고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오른쪽).보건의료노조 제공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 의료 장비와 진료 재료 4만8974점(도비 구입 품목)을 도내 의료기관에 공짜로 나눠줬다(왼쪽). 사설 청소업체가 쓰레기차에 싣던 환자 개인정보 서류들이 땅바닥에 쏟아져 뒹굴고 있다. 노조는 보존 기한이 지나지 않은 자료들까지 경남도가 무단 폐기하고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오른쪽).보건의료노조 제공

2013년 5월29일 폐업을 공식 신고한 진주의료원은 청산 종결 등기(9월25일) 직전인 9월17일 경상남도 산하 의료기관 앞으로 일제히 공문을 발송했다. 박권범 ‘대표 청산인’의 직인이 찍혔다. 수신자는 1개 의료원과 6개 보건소, 3개 노인병원과 2개 협회였다. 공문은 ‘진주의료원 불용품(의료장비 및 비품 등) 무상양여 결정통보’란 제목을 달았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도내 의료기관들엔 ‘횡재’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4만8974점의 의료원 장비와 물품을 공짜로 나눠줬다. 의료원 폐원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환자들을 검진하고 진료해온 장비들도 이산가족이 됐다. 마산의료원이 가장 짭짤했고, 양산노인전문병원이 두 번째로 많은 장비를 챙겼다.

진주의료원을 빠져나간 의료장비는 도비 구입 품목으로 제한됐다. 국비로 산 장비와 물품들(555품목 2164점)은 폐원을 반대한 보건복지부의 제동으로 의료원 건물 안에 남아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지난해 10월30일 경상남도 국정감사 때 반출된 국비 투입 장비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의료원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장비를 관리하는 데만 적잖은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의료원을 폐업하는 바람에, 혈세를 투입해 산 의료장비들을 놀리느라 또 혈세가 들어가는 형국”이라고 했다. 한번 나눠준 장비들은 의료원이 재개원하더라도 되돌아올 가능성이 낮다.

집게차가 버린 서류들

의료원의 역사는 환자의 역사다. 환자의 기록이 쌓이면서 의료원도 역사를 쌓는다. 의료원의 역사가 중단되면서 환자들의 역사까지 폐기 처분하려 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지난 1월23일 오후 진주의료원 한켠에서 환자들의 개인정보 서류들이 널브러졌다. 진주시 사설 청소업체의 집게차가 서류 박스들을 집어 쓰레기차에 실었다. 의무기록지,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수급자 명세서, 장례식장 거래명세서 등이 버려지고 있었다. 노조는 보존 기한이 지나지 않은 서류들까지 폐기되고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진료에 관한 기록의 보존 기간 위반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로 나라가 들썩이던 때였다.


“의료원을 폐업하는 바람에, 혈세를 투입해 산 의료장비들을 놀리느라 또 혈세가 들어가는 형국이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


경남도는 “분류 작업을 거쳐 보존 연한이 다 된 자료만 폐기했으며 기한이 차지 않은 서류들은 계속 보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장을 목격한 박윤석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지역본부 조직부장은 “집게차가 박스째로 쓰레기차에 버리던 서류들이 분류 작업을 거친 것이란 설명을 누가 믿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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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과 직원들은 환자와 함께 병원을 구성하는 근본이다.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그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조합원 50여 명만이 노조를 중심으로 재개원 싸움을 벌이며 버티고 있다.

진주의료원 구성원 232명 중 경남도가 집계한 재취업 인원은 110명이다. 의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13명 중 1명을 제외하고 새 일터를 찾았다. 의료원 출신 한 의사는 “급성기 병원은 주로 1~2월에 계약한다. 마지막까지 의료원에 남아 있던 의사들은 대부분 시기를 놓쳐 요양병원에 취직했다”고 전했다. 의사·약사를 제외한 217명(간호사·사무직·보건직·전산직·기능직) 중에선 96명만이 일자리를 얻었다. 의료기관에 재취업한 경우도 보건소나 작은 병원의 계약직이 다수다. 한 간호사는 “그나마도 진주 시내에선 취업이 힘들다”고 했다.

최근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끝나면서 미취업자들의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폐원을 반대하다 해고된 뒤 재개원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고 있다. 한 해고자는 “의료원이 없어진 뒤로는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개설까지 거부당했다. 담보대출도 힘들어 보험약관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 지사 ‘서민 무상의료’ 내걸었다 파기

진주의료원 경력이 ‘주홍글씨’로 작용한다는 말도 있다. 새 일자리를 찾은 한 간호사는 “누군가 나를 추천했는데 경영진에서 진주의료원 출신이어서 안 된다며 탈락시킨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진주의료원 노조를 싫어하는 교수 때문에 대학원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 해고 간호사는 “우리가 의료원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는데 이력서에 의료원 경력을 쓰지 않으면 경력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폐원 반대 싸움 과정에서 마음도 많이 다쳤다. 한 간호사의 담담한 말투엔 고통이 여전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 매일 산을 뛰어다녔다. 홍준표 지사 앞에서 죽으면 재개원을 시켜줄까 싶어 밤마다 죽을 생각을 했다.”

진주의료원 폐원과 동시에 사라져버린 공공의료사업은 가장 큰 손실이다. 홍 지사의 정치 전략이 공적 의료 시스템의 기초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폐원 직전 해인 2012년 진주의료원의 공공의료사업 추진 실적은 833억원 규모였다. 이 중 212억원은 도비 지원사업이나 수탁사업이 아닌 의료원 자체 예산으로 추진됐다. 보호자 없는 병실, 장애인 전문 치과, 독거노인 무료 방문 진료, 행려환자 의료 지원 등 11개 사업에서 1만4997명이 혜택을 입었다.

홍 지사는 지난해 4월 폐업을 강행하며 공공의료 붕괴 우려를 의식해 ‘서민 무상의료’를 내걸었다. 의료원이 폐원되자 발표 7개월 만에 약속을 파기했다.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본인부담금 전액을 도 예산으로 지원하겠다던 방침을 ‘건강검진비 지원 확대’로 말을 바꾸었다.

서부경남을 떠받치던 공공의료의 센터는 1년 만에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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