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수정인가, 검정인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내린 수정 명령에 대한 두 번의 판결은 정면으로 엇갈렸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이것은 수정이 아니라 검정에 해당해, 수정 명령에 절차상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 서울고등법원은 수정 명령 권한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있어 명령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삼세판, 대법원은 1심의 판결에 가까운 해석을 하며 교과서 수정 명령이 정당했다는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역전에 역전, 법원은 최종적으로 원고인 교과서 저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자들의 반대에도 수정 강행사실 이것은 교과서를 둘러싼 대리전에 가까웠다. 문제제기부터 그랬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을 거쳐 2003년 3월 초판이 발행됐고 몇 차례 수정을 하며 2007년 3월 제5판이 발행됐다. 멀쩡하게 쓰이던 교과서는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좌파적 편향이 심하다”는 공격을 받았다. 일부 국회의원이 앞장섰고, 우파 학자로 구성된 ‘교과서포럼’은 물론 심지어 대한상공회의소도 수정을 요구했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8월 ‘한국사 교과서 심의협의회’를 구성해 55개 항목에 대한 수정을 금성교과서에 권고했다. 금성교과서는 저자들의 반대에도 수정을 강행했다.
대한민국 정통성, 우파들이 ‘애정하는’ 단어가 논란의 시발이 되었다.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그들의 ‘역사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의견이 반영돼, 29개 항목에서 저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구가 삭제되거나 수정됐다. 3명의 저자는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상대로 수정 명령 취소 처분 소송을 냈다. 1심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한다는 사유가 “피고의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더구나 수정의 범위가 “피고 자신이 2002년도에 한 검정 처분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검정에 있어서 검정권자의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는 점” 등을 들어 수정 명령 권한을 인정했다. 두 번의 판결은 심지어 수정 명령이 대통령령에 따라 행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도 정반대였다.
2013년 2월, 대법원의 판결은 파기환송이었다. 수정 명령이 “헌법에 근거를 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교과서 사용 도서에 관한 검정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정 절차에 해당하는 ‘교과용 도서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이를 거치지 않은 수정 명령은 부당하다는 결론이다.
“검정 거친 내용 실질적 변경” 파기환송그러나 법 따로, 현실 따로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최종심의 판결이 나왔지만, 교육부는 2013년 또다시 고교 한국사 교과서 6종에 대해 수정 명령을 내렸다. 교학사를 제외한 5종 교과서 집필진은 이를 거부하며 명령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금성교과서 소송이 재연될 상황인 것이다. 우파가 논란을 만든 2004년부터 역사 교과서 논란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었다.
심사위원 20자평▶김보라미 자라나는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들은 정권 입맛대로 왜곡하지 맙시다.
김성진 교과서 저자는 역사학자지 교육부 관료가 아니란 것.
최재홍 역사마저 정권에 이용하려는 그들에게 국민이 고한다. 수정하라 너희들을!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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