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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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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자 3명, 담배회사 ‘컨설턴트’로 활동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 단독 입수
노정구 전 한국화학연구소 박사, 김윤신 한양대 교수, 백성옥 영남대 교수 등 컨설턴트비·격려금·연구비 수령해
등록 2013-12-11 14:57 수정 2020-05-03 04:27
흡연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과학적 진실은 오랫동안 왜곡·은폐됐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다국적 담배회사는 과학자들과 비밀리에 계약을 맺었고, 과학자들은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숨겼다. 폐암과 니코틴 중독성이 그랬다. 1963년 흡연이 암을 유발하고 니코틴이 중독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담배회사는 1990년대까지도 이를 부인했다.
간접흡연의 위험성도 담배회사가 한발 앞서 알아차렸다. 여론조사기관 ‘로퍼’가 1978년 5월 담배연구소에 제출한 비밀보고서(‘흡연과 담배산업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읽어보자. “간접흡연은 흡연자가 건강에 해를 끼치는 문제와 전혀 다르다. 간접흡연을 문제 삼는 여론이 형성되면 담배업계는 생존의 위협에 처할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81년 일본 국립암연구소의 히라야마 다케시 박사가 첫 역학연구를 발표했다. 흡연자 남편을 둔 여성이 비흡연자 남편을 둔 여성보다 폐암 사망률이 더 높았다. 남편이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아내의 폐암 사망률이 높아졌다. 29개 지역의 비흡연자 아내 540명을 대상으로 14년간(1966~79) 추적한 연구였다.
간접흡연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개인의 선택’이라는 방어막에 숨을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1986년 미국 정부는 간접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1988년 영국 정부도 간접흡연은 비흡연자의 폐암을 10~30%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위기에 빠진 담배회사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과학에 과학으로 맞서는 방법이다. ‘실내공기연구소’(CIAR)를 만들고 간접흡연(ETS·환경적 담배 연기) 프로젝트 컨설턴트를 모집했다(일명 ‘화이트코트’·깨끗한 과학자). 과학자들을 활용해 간접흡연의 유해성 연구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다. 담배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미국 워싱턴DC의 법률회사 ‘코빙턴앤드벌링’(C&B)을 앞세웠다. ETS 프로젝트는 1987년 미국에서 시작해 1988년 유럽, 1989년 아시아, 1991년 라틴아메리카로 확대됐다.
‘담배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과학자들’의 실체는 1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다. 1988년 미국 법원이 담배소송에 연루된 담배회사의 내부 비밀문건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부도덕성과 정보 은폐가 밝혀졌고, 담배회사는 천문학적 규모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떠안는다. 2002년에는 일본 과학계가 들썩였다. 담배문건을 분석해 담배회사와 20만달러짜리 비밀계약(1991년)을 맺은 일본 과학자 2명이 밝혀졌다. 일본 데이쿄대학의 야노 에이지 교수와 도쿄여자의과대학의 가가와 준 교수였다. 일본 담배소송에서 간접흡연의 위해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이들의 연구 결과가 사용됐다.
한국 과학자들은 어땠을까? 12월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2013년 가을 학술대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선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박상표·최규진·조홍준)이란 제목의 발표문이 공개된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9월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레거시 담배문건 도서관에서 ‘ETS(간접흡연), Korea(한국), Consultant(컨설턴트)’를 검색해 수집한 담배문건 2042건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은 발표문을 단독 입수했다. 발표문이 담배회사 컨설턴트로 지목한 한국 연구자 3명은 환경·보건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었다. _편집자

1989년 2월 미국 실내공기연구소(CIAR)의 조지 레슬리 연구원과 워싱턴DC의 법률회사 ‘코빙턴앤드벌링’(C&B)의 데이비드 빌링스 변호사가 타이, 필리핀, 한국, 홍콩으로 날아왔다. ‘간접흡연(ETS·환경적 담배 연기) 프로젝트’의 아시아 지역 컨설턴트를 모집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는 미국 담배 수출량의 70%, 이윤의 97%를 차지하는 곳이다. 각 정부가 흡연을 규제하기 전에 담배회사가 선제공격에 나섰다.

담배회사의 컨설턴트 섭외 규칙

한국에선 노정구(당시 47살) 한국화학연구소 안전성연구센터장(독성학 박사)을 처음 만났다. 레슬리 연구원과 노 박사는 2년 전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다. 노 박사가 실내공기 연구에 관심을 보이며 다른 한국 과학자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ETS 관련 문건을 노 박사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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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회사가 ETS 컨설턴트를 섭외하는 데는 ‘규칙’이 있다. 우선 과학자에게 ‘실내공기의 청정도’에 관심이 있는지 물으며 접근한다. 긍정적으로 답하면 그 과학자의 이력을 검토한다. 금연운동가 등을 걸러내는 단계다. 배경 심사가 끝나면 일독하라며 ETS 문건을 전달한다. 여기에 간접흡연을 옹호하는 내용의 논문이 포함돼 있다. 여전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담배회사가 그 과학자와 접촉한다.

두 달 뒤 노정구 박사가 소개한 김윤신(당시 40살) 한양대 의대 교수(산업의학)를 섭외한다. 실내공기 오염 전문가인 김 교수에게 ETS 문건을 전달하고 그를 같은 해 6월 타이 방콕회의에 초대했다. 아시아 ETS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한 첫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김 교수는 승낙했다. “김윤신 교수는 이미 일산화탄소, 라돈, 질소산화물 등 실내공기 오염물질을 연구하는 중이다.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실내공기의 질 국제회의에서도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가 후원하려는 연구를 이미 김 교수가 수행하다니 큰 행운이다.”(C&B 보고서) 1일 컨설팅 비용으로 노정구 박사에게 600달러, 김윤신 교수에게 700달러를 주기로 했다. 당시 달러 환율(673.8원)로 따지면 40만원과 47만원이다. 노동자 월평균 임금(54만805원)과 맞먹는 액수였다. C&B 보고서는 “김윤신 교수가 실내공기 오염 분야의 권위자라서 그 정도는 요구할 만하다고 노정구 박사가 제안했다. 흥정하고 싶지 않아 그 금액에 바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대만 과학자 1명과 일본 과학자 3명도 추천해줬다.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박상표·최규진·조홍준)은 담배회사 내부 문건 2042건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거시 담배문건 도서관에서 수집한 관련 담배문건들.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박상표·최규진·조홍준)은 담배회사 내부 문건 2042건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거시 담배문건 도서관에서 수집한 관련 담배문건들.

한국 컨설턴트 섭외팀은 조규상(사망·당시 64살) 가톨릭 의대 교수에게도 접근했지만 거절당했다. 1989년 2월 레슬리 연구원은 조 교수를 만났다. 아시아산업의학회 회장인 타이의 ETS 컨설턴트에게서 그를 소개받았다. 담배회사 후원으로 열리는 포르투갈 리스본 회의에 기술위원을 맡아달라고 제안하자 조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점심값도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조규상 교수는 ETS 컨설턴트로 섭외 불가능하다.”(C&B 보고서)

노정구 박사와 김윤신 교수가 한국에서 다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담배회사는 기대했다. 김 교수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노 박사는 한국 과학계로 접근할 수 있는 창구라고 예상했다. “노 박사는 몇 주 전에 (노태우) 대통령과 점심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계로도 연결해줄 수 있을 듯하다.”(C&B 보고서)

일본실내공기연구협회 후원, 실제로는…

1989년 6월 ‘제1회 아시아 ETS 컨설턴트 방콕회의’가 열렸다. 김윤신 교수가 참석했는데 당시 담배문건은 한국 흡연을 이렇게 평했다. “한국의 남성 흡연율은 74.2%, 여성 흡연율은 5%다. 높은 교육수준에 비해 흡연율이 높다.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도 담배를 피운다. 한국에선 간접흡연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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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26~27일에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아시아 ETS 컨설턴트 회의가 열렸다. 김윤신 교수가 첫쨋날 미국 환경보호청의 간접흡연 보고서를 분석하고, 둘쨋날 노정구 박사가 김 교수와 함께 한국의 우선적 환경 과제를 공동 발표했다. 다음날에는 같은 장소에서 ‘제2회 1990년대 환경·보건·보호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한양대 의대 산업의학과에서 주최하고 환경부에서 후원하는 형식을 취했다. 실제로는 담배회사가 기획·후원하는 행사였다. 세 번째 섹션 ‘우선적 환경보호 과제’에서 노정구 박사가 사회를, 김윤신 교수가 발표를 맡았다.

김윤신 교수는 1992년 3월 서울의 실내공기 질 측정과 관련한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한다. 총연구비는 10만7100달러로 책정했다. 이즈음 새로운 한국 컨설턴트가 담배문서에서 나온다. 백성옥(당시 37살)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다. 석·박사 지도교수였던 로저 페리 영국 런던대 교수의 소개로 백 교수는 담배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백 교수도 1993년 10월 페리 교수를 통해 한국의 실내공기 질 모니터링을 제안받았다. 두 프로젝트는 공동 진행하도록 조율됐다. 서울과 대구에 있는 가정집·사무실·식당을 각각 6곳씩 모두 36곳을 선정해 실내공기의 질을 평가했다. 노정구 박사가 속한 한국화학연구소(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화학연구원)도 참여했다.

프로젝트는 일본실내공기연구협회(JIARS)에서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역시 실질적 후원자는 담배회사였다. 1994년 아시아 ETS 프로젝트 예산안(한국 편)을 보면, ‘백성옥·김윤신 공동연구’로 22만5천달러가 잡혀 있다. 또한 총감독을 맡은 ‘페리 교수의 방한 비용’ 5천달러, ‘백성옥 격려금’ 1만2500달러, ‘김윤신 격려금’ 2만달러가 각각 들어 있다. 백성옥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연구비로 4만6천달러 규모의 분석 장비를 구입해 영남대 연구실에 들여놨다.


“호흡기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것과 니코틴 농도의 증가와는 통계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시 발생하는 각종 화학물질 이외에도 대기오염 유입 또는 실내 생활공간에서 발생하는 오염원의 특징에 따라 실내공기 오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실내공기 질’ 연구 결론

‘한국의 실내공기 질’ 연구는 1996·1998년 국내 학술지, 1997년 국제 학술지에 게재됐다. 담배회사 지원사업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연구 결론은 이렇다. “흡연시 발생하는 각종 화학물질 이외에도 대기오염 유입 또는 실내 생활공간에서 발생하는 오염원의 특징에 따라 실내공기 오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담배회사 컨설팅은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1994년 1월 김규태 한국담배협회장에게 C&B의 존 러퍼 변호사가 보낸 서한 내용이다. “ETS 프로젝트는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 브라운앤드윌리엄스(B&W), JTI, 필립모리스(PM), RJ 레이놀즈 등이 후원한다. (하지만) 이들의 승낙을 받지 않고는 한국에서 컨설팅을 맡아 실내공기 질을 연구하는 김윤신·백성옥 교수를 어떤 방식으로도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담배회사 용역 수행한 연구원이 조언자

담배회사는 특히 백성옥 교수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 정부와 담배회사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한 까닭이다. 1995년 필립모리스의 R. A. 워크는 이렇게 보고했다. “실내공기 질과 관련해 백성옥 교수에게 한국 정부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자문을 수시로 구한다. 서울·대구 지역의 주변 공기를 측정하는 정부 연구팀에 그가 속해 있다. 1차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에도 접근 가능하다.” 담배회사의 후원은 이어졌다.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콘퍼런스에 참석할 때 필립모리스가 백 교수의 여행 경비를 지원했다. 2003년 5월 한국이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담배회사의 광고·판촉·후원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1997년 백성옥 교수는 실내공기연구소에 ‘한국인 비흡연자의 ETS 노출 측정을 위한 방법론 평가’라는 프로젝트를 신청한다. 예산은 14만6천달러. 프로젝트 조언자로 로저 젠킨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연구원을 내세웠다. 그는 간접흡연의 유해성이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입장이었다. 담배회사는 그를 객관적 과학자로 인터넷에 소개했지만 담배문건을 보면 담배회사의 용역을 수행한 것으로 나온다.

이 밖에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 논문은 고려대 의대 교수와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수행하는 ‘환경보건 우선과제’ 연구에 담배회사가 6만달러의 지원예산을 편성한 기록도 찾아냈다. 1996년 10월 미국 담배회사 RJR 과학자가 보낸 서한을 보면, 한국인삼연초연구소도 ETS 측정 방법 연구와 실내공기 질 및 환기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 과학자의 연구논문을 담배회사는 ‘제3자 기술’로 활용했다. 제3자 기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홍보업계의 전략이다. “김윤신 교수는 ‘최근 홍콩에서 사무실·상점의 실내공기를 측정해보니 ETS 성분은 미미했다. 실질적으로 실내공기 공개 문제는 자동차 배기가스, 세정제, 기타 오염물질 및 활동 때문이었다’고 밝혔다.”(‘제3자 참고문헌’) 필립모리스의 후원으로 수행된 백성옥 교수의 연구논문도 그랬다. 필립모리스 소속 과학자는 백 교수의 논문을 근거로 간접흡연이 실내공기 오염의 주요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다국적 담배회사의 ‘검은 전략’을 한국 과학자들이 미리 알았다거나 동의했다고 단언할 순 없다. 설령 연구비를 지원받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과학자를 컨설턴트로 고용하고 ‘한국의 실내공기 질’ 연구를 지원한 목적을 다국적 담배회사가 어느정도 달성한 것만은 분명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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