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에서 ‘적준’으로, 다시 ‘다원’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땅을 매개로 한 자본의 욕망은 언제나 누군가의 삶을 짓밟은 자리에서 피어올랐다. 1998년 세상에 나온 는 그저 한 시대의 유물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 안에 있는데 중장비 동원 외벽 철거
서울 북아현동에서 아내와 함께 곱창집을 운영하던 이선형(51)씨는 ‘다원이앤아이’ 소속 용역이 가게의 집기류를 강제로 들어낸 2011년 11월9일부터 실제 철거가 집행된 11일까지 ‘공포의 48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9일 오전 건장한 용역 수십 명이 가게로 몰려들어 테이블과 의자, 식기,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들어냈다. 식자재가 들어 있는 냉장고가 코드가 잘린 채 트럭에 실렸다. 재개발 조합과 세입자 사이의 법원 중재 일정이 잡혀 있던 시점이었다. 이씨는 일단 가게를 지키면서 버틸 요량이었지만, 무자비한 폭력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용역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밤늦게 찾아와 욕을 하면서 멀쩡한 사람을 걷어찼어요. 밖에서 오물을 퍼붓고, 바닥에 돗자리도 깔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 상태로 아내와 함께 부들부들 떨면서 48시간을 버틴 겁니다.”
법원에 출석하기 위해 이씨가 가게를 비우자 곧바로 철거가 시작됐다. 명도집행 이틀 뒤인 11일의 일이었다. 용역은 이씨의 아내 박선희(48)씨가 가게 안에 있는데도 중장비를 동원해 외벽 철거를 시작했다. 간판과 돌무더기가 쏟아져내리는 과정에 급히 몸을 피하던 박씨의 다리에 대못이 박혔다. “법원에서 연락을 받고 달려와보니 아내는 피를 흘리면서 실신해 있었어요.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하고 열흘 정도 입원했죠. 사람이 건물 안에 있는데도 철거를 강행하고 폐자재를 들이부은 거예요. 이해가 안 돼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외벽이 헐린 건물은 올해 4월까지 철골만 남은 상태로 있었다. 이씨는 한때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가게 앞에 천막을 쳤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 4월11일 이씨는 농성을 도와주러 방문한 두 명의 남성과 함께 천막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을 틈타 용역이 들이닥쳤다. 용역들은 강제로 이씨의 무릎을 꿇렸고, 다른 두 명에게는 군대식 얼차려인 ‘원산폭격’을 시켰다. “휴대전화를 뺐고, 두세 명이 붙어서 사람을 끌어냈어요. 건장한 깡패들이 죽이니 살리니 하면서 협박하니까 결국 연대하러 온 분들은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박아야 했어요. 찍소리도 못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 도대체 이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지금도 아현동 재개발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특히 아내는 아무 데나 버려진 식당 집기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꿈을 꾸곤 한다더라. 나도 갑자기 용역이 들이닥칠까봐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했다.
시행사부터 원스톱 서비스, 거대한 실패작재개발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짓는 초기 단계부터 다원이 개입한 사례도 있다.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 사업이 그렇다. 양천구청에서 보낸, 실태조사와 사전 설명회를 알리는 우편물을 다원 계열사인 ‘다원이앤아이’ 소속 용역들이 수거하거나 훼손했다. 이 지역에서 재개발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계원(55)씨는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지역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지역 언론의 보도를 복사해서 집집마다 돌렸는데, 다음날 조합 사무실에 가보니 그 유인물 수백 장이 쌓여 있더라. 용역들이 수거해서 갖고 온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실태조사든 여론조사든 사업에 부정적인 의견이 확산될 수 있는 활동은 무조건 방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열린 조합 정기총회에서는 사업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용역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씨도 피해자였다. 용역들은 단상 위에서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감사를 끌어내리고,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항의하는 이씨를 용역 4~5명이 순식간에 둘러쌌다. 용역은 이씨의 목을 잡아채고 오른팔을 비튼 채로 그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총회장 밖으로 실려나온 이씨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는 “5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다원이 덩치를 키우면서 사업 방식도 다변화하고 있다. 다원 계열사가 시행사로 직접 뛰어들었다가 재개발 사업 자체가 와해된 경우도 발생했다. 15년 전 가 나왔을 때와는 달라진 사업 방식이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일대에 51만m²(약 15만4천 평), 4천여 가구 규모의 대형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신곡 6지구 도시개발사업’은 건설자본의 하수인에 머물기를 거부한 철거자본이 직접 시행과 시공에 나서면서 비롯된 ‘거대한 실패작’이라고 할 만하다. 일개 철거용역 회사에 불과했던 다원이 ‘원스톱 서비스’ 사업을 꾀할 만큼 성장한 탓이기도 하다.
시행사는 다원 계열사인 ‘새날’이었다. 애초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총비용은 1조9400억원이 넘었다.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한 새날은 빚을 끌어모았고, 시공사들이 연대보증을 섰다. 새날이 인수한 대구지역의 중견 건설업체 ‘청구’ 역시 이 사업의 시공사 중 하나였다. 새날이 ‘지분쪼개기’(토지소유자 부풀리기)를 시도하다 적발돼 2012년 8월3일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청구와 함께 시공사로 참여한 남광토건과 신동아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업계에서 신곡은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표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미 주민들에 대한 강제 퇴거와 철거가 이뤄진 뒤였다. 다원 계열사인 ‘다원이앤씨’가 이 지역의 철거용역을 맡았다. 신곡리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조규승(57)씨는 “철거는 주로 2008년 상반기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용역들이 마을에 상주하거나, 몰려다니면서 욕설을 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11년째 신곡리에 살고 있는 주부 원용수(49)씨는 “당시 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용역들이 딸에게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한 일도 있었다. 마당 안으로 들어와 사람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고 말했다.
| |
조규승씨는 재개발 반대 집회에 참여하면서 ‘공권력’이라는 말의 허망함을 체득했다고 했다. “가운데 경찰이 서고, 세입자와 용역이 양쪽에 나눠서 자리를 잡아요. 처음에는 전경들이 세입자 쪽을 보고 있다가 지휘관이 용역 간부와 뭔가 이야기를 하더니, 경찰이 갑자기 돌아섭디다. 그러면 용역이 밀고 들어와서 그냥 세입자들을 때리고 밟는 거예요. 경찰은 못보는 게 아니라 안 보는 거죠. 집단 구타? 숱하게 당해요. 경찰이나 철거용역이나 똑같아요.”
2008년 4월께였다. “용역이 몰려온다”는 연락을 받은 새벽에 조씨가 달려와보니 마을 입구마다 수십 명의 용역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250명쯤 됐을 거예요. 공장 쪽으로 가는 길을 모두 막고, 바로 앞에 있는 빈집을 포클레인으로 밀고 있었어요.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용역하고 몸싸움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그냥 두들겨 맞는 거지요. 부녀자·노인 폭행은 예사고 임산부도 맞은 일이 있었어요. 한 세입자는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고요.”
철거용역의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업 자체가 중단되면서 한때 마을이었던 이곳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처럼 쌓인 건물 잔해 위로 나무와 풀이 길게 자랐다. 이렇게 방치된 폐자재 더미가 수십곳이었다. 조씨는 “무슨 왕릉도 아니고, 마을 곳곳이 ‘철거릉’이 되었다”고 했다. 여전히 자신의 집과 공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지만 신곡리 일대는 치외법권의 ‘게토’나 마찬가지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 빈집에 들어가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지상 3층, 30여 가구 규모의 빌라 단지는 바닥이 모두 깨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바로 앞에는 유명 여배우가 광고모델로 나서면서 이른바 ‘대박’을 친 H아파트 단지가 있다. 말끔하게 단장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폐허가 되어버린 신곡리 일대는 불과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구리관이나 창틀, 철제빔 등 조금이라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밤중에 도둑이 와서 쓸어갔다. 쓰러진 냉장고 문짝에는 초등학생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조씨는 “그냥 버려진 땅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몰려와 빈 건물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고 장난감총을 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뭐 하는 짓이냐고 항의했더니 돌아가더라”고 말했다.
2차선 도로 건너편 주민의 주말농장건물의 잔해나 쓰레기가 쌓여 있지 않은 땅에는 누군가 상추, 마늘, 파 등을 심었다. 조씨는 “황당하게도 H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이곳에 와서 땅을 갈고, 농사를 짓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잘 관리된 텃밭이 여러 곳이었다. 세입자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고통의 땅이 누군가에게는 주말농장인 셈이다. 사업 자체가 중단되면서 용역은 모두 철수했지만 그만큼 싸움의 끝도 멀어졌다. 90명으로 시작했던 세입자들의 철거대책위원회는 현재 10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글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민주 장경태 “김건희, 계엄 당일 성형외과에 3시간 있었다”
윤석열 쪽 “박근혜도 탄핵 인용 뒤 수사 진행”…수사 불응 공식화
[단독] “말 잘 듣는 장교들, 호남 빼고”…‘노상원 사조직’ 9월부터 포섭했다
선관위 “‘이재명 안된다’ 펼침막 불허는 섣부른 결정, 조치 보류”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 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이승환 구미 콘서트 취소 후폭풍…“김장호 시장은 사과하고 사퇴하라”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