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특수수색교육단에서 여는 ‘해병대 고무신 캠프’의 광고를 우연히 보았다. 바로 얼마 전인 7월 초까지 모집했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을 ‘고무신’이라고 한다. 기본 콘셉트는 ‘나는 대한민국 군대의 자랑스런 고무신이다’이다. 병영체험을 통해 리더십도 기르고 남자친구의 처지도 잘 이해하자는 취지란다. ‘고무신 바꾸기 방지용’ 목적도 담고 있어 보인다.
입소에서 제대까지 관리하는 엄마들
여성들, 특히 20대 여성들은 주로 남자친구를 통해 군대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군대 가기 전 이른바 ‘도장 찍고 가려는’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고 면회 가는 게 주요한 역할로 보였던 여성들의 군대와 관계 맺기는 점점 적극적이 돼간다. 여성들이 만든 인터넷의 ‘곰신카페’는 회원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인기 있는 카페다. 이 카페를 통해 어떻게 남자친구를 이해하고 상대하고, 보내줄 군대물품을 구입해야 하는지 정보를 나누고 실천하고 격려한다. 남자친구를 이해하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었겠지만 지난해 ㅎ대 총여학생회는 집단적으로 병영체험 캠프를 다녀왔다. 여학생회가 개입하지 않아도 여학생들의 병영캠프 경험은 자주 들리는 소식이다. 올해 한 여론조사에서는 20~30대 여성의 65%가 군가산점제 부활에 찬성한다고 했다. 조사 방식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전 수치보다는 분명 많이 올라가 있다.
20대 여성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머니들이다. 훈련소에 따라가 울면서 아들을 보내고, 음식을 싸들고 가서 면회하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반기던 어머니가 아니다. 혹은 에 짠 하고 나타나서 눈물 바람을 일으키던 어머니의 이미지도 아니다. 인터넷으로 영상면회를 하고 늘 아들이 있는 군대의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국방부가 모집한 청춘예찬 기자단(여기에는 곰신도 포함된다)에 들어가 취재를 하고 병영체험을 직접 한다. 주변의 적극적인 엄마들은 ‘아들과 함께 군대에 갔다’라고 선언하면서 입소에서 제대까지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며 아들을 관리한다.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바꿔 신지 않게 챙기는 것은 기본 센스다.
이제는 까지 나타났다. 주 시청자는 20대와 50대 여성이란다. TV여서 당연한 면이 있지만 여성이 군대 프로그램의 가장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등장했다. 왜 군대문화에 여성들이 적극적인가? 여성계가 반대하는 게 공식처럼 된 군가산점제를 왜 공무원 시험을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20대 여성의 다수가 찬성할까? 국방부의 대중화 노력도 분명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각종 병영체험을 활성화하고 군대 홍보에 연예인을 적극적으로 동원하면서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군대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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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군대의 대표주자가 된 것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된다. 2000년대 이후 연예인들이 병역의 핵심 주체로 떠올랐다. 시작은 병역비리다. 유승준의 예에서 단적으로 드러났지만 ‘병역비리와 관련되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법칙은 거듭 확인됐다. MC몽 같은 경우는 시민들의 치열한 추적으로 군 문제를 밝혀낸 사례로 한 지상파 뉴스에서 시민의 승리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다녀만 오면 든든한 경력이 된다. 누가 군대에 가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등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서 연예인들이 자기의 군대생활을 이야기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제대 뒤 한동안 군대 경험으로 먹고사는 연예인도 늘고 있다. 는 이 모든 것의 절정이다.
대학문화에서 군대문화가 차지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2008년 전국 대학문화를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학생운동 문화가 주도하던 자리를 이제는 군대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별 차이는 있지만 많은 대학에서 집합문화, 체벌문화, 강력한 서열문화, 남성 위주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군대문화와 학생운동 문화 사이엔 비슷한 요소도 있지만, 복학생이 학생회 등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대학의 사회 비판적 기능이 퇴색하면서 군대문화가 이렇다 할 여과 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남학생 대부분이 대학교 2학년 때나 그 이전에 군대를 갔다 온 뒤 오랜 기간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방식이 2000년대 이후로는 완전히 자리잡았다. 대학에 여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많은 20대 초반 여성들이 이 문화에 자연스레 포섭된다. 대학에서 만나는 모든 남자가 군대 중심의 스케줄로 살아간다. 많은 행사가 친구나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고, 휴가를 나와 만나면서 이루어진다. 복학생 오빠가 주 연애 대상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서열성·위계성이 친근한 관계 형성과 인맥 관리를 위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꽤 지배적이다. 여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이런 문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키우려 하고 군대문화는 더없이 좋은 텍스트가 된다. 분명 군대가 여성에게도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으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징병제가 비판이 금기시된 제도라는 점이다. 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연예인들이 군대문화의 부정적 요소를 드러내고 비판해 시민들의 의식을 높이거나 변화 의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항상 고생과 희생, ‘상남자’ 담론에 묶일 수밖에 없다.
징병제가 당연히 동반하는 성차별성
징병제는 나라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여러 서구 국가에서 나타났듯, 징병제는 왕권이나 귀족의 권력에 대립하는 시민권을 보증하는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강조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뒤 독일처럼 군대를 전문 군인이 아닌 시민의 조직으로 유지하기 위해 징병제를 유지한 경우도 있다. 시민의 제도로서 징병제가 자리잡은 국가에서는 징병제 자체에 대해 시민들이 감시와 비판을 하면서 주요 문제를 토론하고 제도 변화에 관여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개인이 국가 안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도구로서 징병제가 자리잡았다. 시민이 징병제를 변화시키거나 개혁할 수 있다는 사고가 전혀 싹트지 않았다. 토론이나 관심의 영역도 철저히 한정된다. 병역비리만이 대중이 감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고, 군가산점제만이 군인의 경험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주제였다. 아무리 여성계가 반대 논리를 펴도 군가산점제는 군인의 희생에 대한 사회적 보답의 필요성이라는 논리를 공격하지 못한다. 왜 군대에 가야 하는가, 혹은 징병제가 이런식으로 운영되는 게 맞는가라는 사회적 논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희생의 논리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희생하는 남자들’이라는 공식이 군대의 대중화와 연예인의 활약으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여성들이 군대에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 체험이 잦아지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을 세울 수 있는 통로가 없다면 징병제가 당연히 동반하는 성차별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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