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창의적 체험활동’이었다. 공주사대 부속고교 2학년 학생들을 사지로 내몬 사설 해병대 캠프 말이다. 유사 군사훈련을 우리는 그렇게 호명하고 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과정을 개편해 특별활동·재량활동 등 교과 외 영역을 합쳐 창의적 체험활동을 도입했다. 일정 시간 이수해야 하는 교과과정이며,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사항이다. 교육목표는 이렇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을 계발·신장하고, 자율적인 생활 자세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동체 의식과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자질 함양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이다.”
자격 조건 없으면 수련활동 업체와 손잡아수련활동 및 교육캠프 업체 운영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각종 캠프 시장은 창의적 체험활동 도입 이후 커졌다. 캠프단체협의회 ‘캠프나라’ 김병진 사무국장은 “지난해 시장 규모는 9조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체험학습이 늘어나면서 시장 규모도 3배가량 확대됐다”고 말했다. 학교 단위 고객 비중은 70~80%다. 이러한 시장 한쪽에 병영체험 캠프가 있다. 사설 해병대 캠프업체 ㄱ사 역시 학생 고객 비중이 80%라고 했다. 나머지는 주로 기업체 직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친 1997년, 해병대사령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해병대 캠프를 처음 시작했다. 불황 타개를 위한 대국민 ‘정신력 강화’의 일환으로 호응이 높아지자 2000년대 초반 해병대 출신 전역 군인들이 운영하는 사설 병영체험 업체가 속속 등장했다. 2005년 10여 개이던 업체 수는 2~3년 전부터 더욱 늘어났다. 병영체험 캠프업체도 학교 물량을 유치하려면 청소년수련시설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수련활동 업체와 손을 잡기도 했다. 실질적인 훈련을 담당하지 않는 다른 업체가 학교와 용역 계약을 맺고, 업체 2곳이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사고가 난 공주사대 부고가 맺은 계약은 이러한 형태였다. 캠프 시설을 빌려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리랜서들도 있다.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게시된 학교별 체험활동 용역 입찰 공고 내용을 살펴보면, 병영체험은 레크리에이션과 접목된 수련회·리더십체험·직업캠프 등 다양한 ‘콘셉트’로 변신했다. 전북지역 ㅁ중학교가 수련활동으로 제시한 일과표에는 헬기레펠, IBS(공기주입 고무보트) 수상훈련, 고공 세줄타기 등이 포함돼 있다. 다른 학교 프로그램도 대동소이하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의 부재는, 교육 영역에서 병영체험이 설 자리를 넓혀주었다. 그나마 초등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다채로운 편이지만, 중·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영어캠프 정도라는 것이다.
한 일선 교사는 좀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병영체험 캠프에 가면 교사 대신 교관들이 통솔하잖아요. 선생님들 처지에서는 좀더 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창의적 체험활동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대규모 집단 캠프를 선택하기 쉽죠.” 공주사대 부고 사고 뒤 영업에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설 해병대 캠프업체 관계자는 전역 군인들의 생계 문제를 거론했다. “5공 때는 군에서 장기 복무하고 나오면 경찰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직장을 갖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민간인도 재취업이 어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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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안보 교육 강화 흐름은 병영체험 시장을 키운 또 다른 요인이다. 2011년 3월 당시 교과부 이주호 장관·국방부 김관진 장관·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안양옥 회장은 교류·협력 협약을 체결한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국가관 및 안보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서였다. 협약 체결 이후, 교총이 내놓은 ‘학생 병영체험활동 추진 계획’을 보면, 군·학교 안보교육 공동 프로그램 사례 중 하나로 해병대 캠프 등 병영체험 활동을 거론한다. 2011년 8월,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옛 포병부대 주둔시설을 리모델링해 ‘국민안보 통일교육 체험학습장’을 열었다. 국방부로부터 군 유휴시설을 임차한 것이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수익 창출 사업이라기보단 요새 안보의식이 부족하니 교육을 하자는 취지로 국방부 장관에게 부탁해서 시설을 얻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향군인회가 운영하는 ‘나라사랑 병영체험 캠프’에는 안보 관련 강의가 포함돼 있으며, 게임용 가스총을 이용한 모의 전투를 추가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8천 명이 이곳을 찾았다.
안보 강조와 전쟁의 흔적은 지역의 특화된 관광자원으로 ‘소비’된다. 정전 60주년 기념일인 7월27일,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 반환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는 숙박형 병영체험장이 되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2km가량 떨어진 임진강변에 위치한 이 시설에는 1953년부터 2007년까지 미군이 주둔했다. 경기도는 이날 대학생·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안보투어’를 개최했다. 지난해 경기도 파주시 육군 1사단은 캠프 그리브스를 보전해 안보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전쟁’ 같은 경쟁 속 ‘병영’체험군사주의적 조직 논리가 여전히 유효한 우리 사회에서, 병영체험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이 된다. 사교육 업체인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다양한 아이들을 뽑겠다는 취지로 대입 정원의 10%를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고 있지만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함’은 없다”며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해병대 캠프에 참여해 인내심과 협동심을 발휘했다는 등의 내용도 써볼 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병영체험 캠프 참여가 대입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체험 활동을 나열하는 건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공주사대 부고는 명문고로 알려져 있거든요. ‘저 학교에서는 해병대 캠프를 가는구나’로 보일 수도 있어요.” 임 대표가 섬뜩한 말을 덧붙인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어느 고교 신입생이 학교에서 단체로 떠난 병영체험 캠프 활동에서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진정을 해왔다. 그러나 이 학생은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 진정을 취하했다.
교실·직장, 그 모든 분야에서 전쟁 같은 경쟁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병영체험 캠프로 향했다. 안보를 강조하는 보수 세력은 이를 반겼고, 언론은 부추겼다. 병영체험이라는 ‘핫’한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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