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설이라도 같이 쇠었으면 좋겠다고 어제 전화하셨어요.”
12월13일 50m 높이의 송전탑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36)씨가 말했다. 10월17일 밤 15만4천V 고압전기가 흐르는 이곳에 올라왔으니 이날로 58일째다. 그의 요구는 간단하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월23일 현대차가 최씨를 부당 해고했다고 확정판결했다. 2010년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현대차의 업무 감독 아래 2년 이상 근무한 최씨는 불법 파견 노동자인 만큼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0년 ‘올해의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 판결에도 행정소송 낸 회사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정규직과 혼재돼 배치됐다. 노동자들은 현대차 시설과 부품을 사용하고 현대차가 작성한 각종 작업지시서로 업무를 수행했다. 작업량과 작업 방법 등을 현대차가 결정하고 노동자들의 근태 상황, 인원 현황 등도 현대차가 관리했다.”
파견과 도급은 작업의 지휘·감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현대차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했기에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무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그 기준에 따라 2002년 현대차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2005년에 해고된 최씨는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돼야 했다. 대법원 최종 판결 뒤 중앙노동위원회도 최씨에 대한 원직 복귀 명령을 현대차에 내렸다. 하지만 현대차는 또다시 최씨 해고는 정당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대법원 판결 조차 외면하는 현대차에서 볼 수 있는 건 자정능력을 상실한 재벌의 모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씨는 결국 마지막 선택을 했다. 민주노총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 천의봉(30)씨와 함께 송전탑 23m 위에 농성장을 차렸다. 3평 규모의 위태로운 농성장에는 녹색 천막만 나부낀다. 사방이 뻥 뚫려있어 영포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뼛속까지 훑는다. 고공농성이 언론의 주목을 받자 현대차는 지난 11월22일 뒤늦게 최씨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최씨에 한정된 판단이니 최씨만 구제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새로이 소송을 제기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울산지법 형사2단독 권순열 판사의 10월25일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고 싶으면 최씨처럼 다 7년간 소송하라는 얘기다. 최씨는 “어이없다”고 했다. “소송 비용이 비싸서 내가 대표로 소송했다. 동료들과 소송 자료를 모으고 함께 싸웠는데 이제 와서 회사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꼼수를 부린다.”
법학자는 회장 고발, 변호사는 감사 청구
법학자와 법률가들도 현대차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학 교수 35명은 12월13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12월14일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직무유기를 이유로 고용노동부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불법 파견을 일삼는 현대차의 사업장을 노동부가 폐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의 버티기가 점점 궁색해진다. 설이라도 아들과 함께 쇠고 싶은 아버지의 소망이 이루어질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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