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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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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박근혜, 복잡한 문재인

‘신촌 테러’ 소재로 한 박 캠프 첫 TV 광고 ‘스토리·화면 느낌·후보의 특성 잘 어우러져’… 문 후보 광고는 ‘너무 많은 내용’ 담아
등록 2012-12-07 11:32 수정 2020-05-02 19:27

정치는 마케팅이다. 자신의 상품(대선 후보)을 소비자(유권자)가 선택하도록 유혹하고 설득하는 작업이다. 이 비유는 현대의 대중민주주의에 더 잘 들어맞는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던 19세기 영국의 민주주의자가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재산과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1표를 행사한다. 유권자는 후보를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미디어를 통해 후보를 본다. 정치광고가 중요해진 이유다. 이런 현대 대중정치의 속성을 잘간파한 건 1930년대 독일 나치당이었다. 선전·선동을 맡은 요제프 괴벨스는 현대 정치광고의 선구자였다. 히틀러의 연설을 국민이 들을 수 있도록 각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고, 히틀러의 연설을 레코드판에 담아 뿌렸다. 선동의 귀재 괴벨스가 정치광고 교과서로 삼고 공부한 인물이 있었다. 1920년대 미국의 유명한 광고 컨설턴트 에드워드 버네이스였다.

TV 광고는 중도 유권자를 공략하는 데 효과가 크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첫 TV 광고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광고보다 명쾌하다는 평이 나온다. 각 캠프 제공

TV 광고는 중도 유권자를 공략하는 데 효과가 크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첫 TV 광고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광고보다 명쾌하다는 평이 나온다. 각 캠프 제공

 

피습 사건을 기억하는 지지자들에게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박후보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강화한다. 피습 사건을 모르는 젊은 유권자에게는 강렬한 스토리를 통해 긍정적 인식을 형성한다.
국민의 상처 치유 vs 친숙함

2012년 본격적인 정치 마케팅이 시작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최근 첫 TV 광고를 발표했다. 60초 전쟁이다. 박근혜 후보는 ‘그때 그 사건’을 마케팅의 핵심으로 삼았다. 장면(scene) 구성은 이렇다. #창밖에 부슬비가 내린다. 카메라는 창틀에 놓인 가볍게 주먹 쥔 손을 포착한다→ #박 후보는 창밖을 내다본다→ #2006년 박 후보 피습 사건을 찍은 사진이 흑백으로 나온다→ #카메라는 박 후보의 상처를 클로즈업한다→ #지지자들이 쾌유를 비는 촛불집회를 연다→ #카메라가 다시 박 후보가 비 내리는 창밖을 보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번엔 손을 펴서 창문을 가볍게 짚고 있다. 미묘한 자신감이 손 자세의 변화로 엿보인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조용히 깔린다.

문 후보는 첫 연설을 준비하는 일상을 소재로 했다. #카메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간다→ #첫 화면에 부인 김정숙씨가 보이고 음료를 갖다주는 동선을 카메라가 패닝하며 비로소 문 후보가 포착된다→ #문 후보가 편한 일상적인 복장으로 연설문을 읽는 모습과 조는 모습이 나온다→ #부인 김정숙씨가 옷을 다리는 모습이 나온다→ #문 후보가 연설하는 배경 화면에 연설문의 핵심 내용을 자막으로 깐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깔린다.

박 후보 쪽은 ‘국민의 상처 치유’가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캠프 변추석 홍보본부장이 11월27일 한 설명을 종합하면,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는 박근혜 후보의 의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스토리로 전달하려는 게 목표였다. 박 캠프는 이런 주제의식을 먼저 설정한 뒤,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이른바 ‘박근혜 신촌 테러’가 퍼뜩 떠올랐다. 정신치료 전력이 있는 한 시민이 커터칼로 박 후보의 턱 부분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박 캠프는 스토리텔링을 구성했다. ‘죽음 문턱에 가야 했던 피습 사건→ 국민 성원으로 충격 극복→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로 스토리 흐름을 구성했다. 광고의 기대효과도 유권자 집단을 나눠 고민했다. 피습 사건을 기억하는 지지자들에게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박 후보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강화한다. 피습 사건을 모르는 젊은 유권자에게는 강렬한 스토리를 통해 긍정적 인식을 형성한다.

문재인 캠프 홍보본부장인 유은혜 의원은 ‘친숙함’이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첫 광고라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 캠프 쪽은 이런 목표를 위해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 일상을 보여주며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 등 핵심 메시지 3개를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다음 광고부터는 임팩트 강한, 정권 교체의 필요성과 후보 간 차별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히 할것”이라고 밝혔다.

둘 다 감성 자극, 네거티브 없어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 네거티브가 없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양 캠프 모두 TV 광고 제작에 1억원 안팎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상 허용된 TV 광고 횟수는 30회다. 양 캠프 모두 4~5편의 TV 광고를 내보낼 계획이지만 상황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 가제작은 실제 내보낼 편수 이상을 해놓는다.

양 캠프 모두 자기들이 잘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첫 광고와 관련해서, 홍보커뮤니케이션 업체 ‘에그피알’의 홍순언 대표는 박근혜 후보 광고가 좀더 낫다고 평했다. 홍 대표는 벅스피알 등 오랫동안 여러 광고홍보 업체에서 경험을 쌓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국회의원의 선거를 도운 적도 있어 정치광고에 대한 이해가 깊다.

“정치광고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TV 광고를 주로 네거티브로 활용한다. TV 광고는 특히 중도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박 후보 광고는 일반 지지자보다 박 후보를 몰랐거나 2006년 사건을 잘 모르는 중도 유권자를 향해 만들어진 게 보인다. 지지층 결집 효과도 있다. 테러의 원인이 중요한 게 아니어서 그 자체는 의미가 없고 출마 의지를 강조하려고 (사건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섬세함을 보여줬다고 본다. 테러사건이란 게 무거운 내용인데 전혀 무겁지 않게 처리했다. 화면톤도 그러하다. 메시지도 부드러워 상대 후보에 대한 아무런 네거티브가 없다. 중도 유권자가 봤을 때 ‘여성 대통령이 이런 일도 겪었네?’라고 생각할 법한 이미지가 보인다.” 스토리, 화면 느낌, 후보의 특성이 비교적 잘 어우러졌다는 취지다.

홍 대표는 문재인 후보 광고의 아쉬움으로 ‘너무 많은 내용’을 언급했다. “문재인 후보 광고는 ‘노무현 기타 광고’처럼 상대를 의식한 듯 한 느낌이 있다. 가정이 없는 상대 후보(박근혜)에 대해서도 의식을 한 것 같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선 광고는 30대부터 50대까지 공통의 경험을 끌어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기타라는 사물 자체도 그렇고 노래 도 그런 동질감을 일으키며 이회창 후보와 서민 대 귀족 프레임을 형성했다. 반면 이번 문재인 후보의 광고는 스토리·감성·멘트를 모두 살리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프레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이미지 구성도 조금 흐트러졌다. 욕심이 과했다는 느낌이 든다. 가령 영화배우 문소리씨 멘트라든가 후보 부인이 다리미질하는 장면 등은 아마 상대방에 대한 차별 전략이었겠지만 (보는 사람의) 생각을 흐트러지게 한다.”

“문 캠프, 안철수 사퇴 이후를 풀어내야”

홍 대표는 “TV 정치광고는 중도 유권자에게 본인의 강점을 부각하며 상대와의 차별 포인트를 그려내면 성공적”이라며 “문 후보의 경우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상황 변화도 TV 광고를 통해 풀어내야 한다고 본다. 문 후보의 프레임이 다소 약하다는 부분을 TV 광고로 해결하는 것이 숙제다”라고 덧붙였다.

정치 마케팅 싸움은 막 시작됐다. 소비자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마케팅이 성공했는지는 12월19일 투표함을 까봐야 알 수 있다. 양 캠프는 다음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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