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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나라를 이용해먹다

땅 문제는 “형사 시켜 해결…”, 장인은 부실기업 인수 도와주곤 “정치자금 준비하라”
등록 2012-11-03 14:3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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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보다 인정과 의리, 즉 일차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그(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치관은 가족이기주의, 소단위 집단행동이라는 정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부정부패를 초래하여 공공적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저서 <대통령의 자격: 스테이트크래프트>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5공화국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장인 대신해 복수하고 면담 거절했다 옷 벗고

과연 이창석씨 집안은 전 전 대통령의 이런 면모를 활용했고, 전 전 대통령은 처가를 감쌌다. 박철언 전 장관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전 전 대통령이 장인을 대신해 노골적으로 복수한 일화가 소개된다. 전 전 대통령은 1983년 당시 청와대 법률비서관이던 박 전 장관에게 장인을 대신해 복수한 에피소드를 말했다. “10년 전 장인어른의 땅을 어느 놈이 해먹어 팔아버렸다. 전직 국회의원인 변호사인데 세단을 타고 다니며 갑에서 을로, 을에서 병으로, 병에서 정으로 서너 단계로 넘겼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사려는 사람이 장인을 아는 사람이라서… 땅은 200평이지만 장인에게 알려주어 깜짝 놀라 알아보니 그래도 재판을 해야 한다는 거야. 흥정을 해들어와서 발칵 뒤집어졌다. 내가 아는 형사를 시켜 잡아넣어 해결했는데 신문에도 나고 했다.”

1988년 전 전 대통령은 민정당 책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태우 정부가 5공 비리를 문제 삼는 것에 분개하며 “동생(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을 잡아넣고 이제는 형님과 처남(이창석)까지 구속하겠다고? 우리 장인(이규동) 집안은 원래 잘살아서 나는 물론이고 노(태우) 대통령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장규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저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전두환 시대 경제비사>에서 이규동 전 회장이 정치자금에 관여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규동 전 회장은 1980년대 부실기업 인수를 추진하던 기업 담당자와 만나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업을 찾아줄 터이니 그 대신 정치자금은 섭섭지 않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이규동 전 회장이 정부가 추진하던 액화천연가스(LNG) 건설공사를 친분이 있던 한보 정태수 회장에게 맡기라고 박봉환 당시 동자부 장관에게 로비한 일화도 소개된다. 서울행정법원 11부(당시 재판장 김용찬)는 200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전재용씨의 세무재판에서 이규동 전 회장에 대해 “특히 이규동씨는 전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 전 전 대통령의 자금으로 이 사건 1채권을 취득하여 원고에게 교부하는 등 평소 전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이라고 적시했다. 이용만 당시 재무부 재정차관보는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가 며칠 뒤 옷을 벗었다.

국부를 사익으로 취하는 클렙토크라시, 도둑정치

1982년 권력형 비리 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사건과 관련해 이규광씨가 구속됐다. 전 전 대통령은 비서관이던 박철언 전 장관에게 “(이규광 처벌은) 억울한 정치재판이었으니 재심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박 전 장관이 반대해 실제로 재심이 이뤄지진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처삼촌 어른을 희생시키는 인간미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두환과 그의 시대에, 사익은 공익과 잘 분리되지 않았다. 중남미·아프리카 독재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현상이다. 국부를 사익으로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도둑정치’로 번역된다. 이창석씨가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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