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파문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수사의 ‘방법론’을 두고 벌어진다. 새누리당의 특검 제안과 민주통합당의 청문회 및 국정조사 실시 요구가 격돌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여야의 인식과 성격 규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4일 대구 북구 복현동에 위치한 경북대 대강당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은 이날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판단한 다음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찍어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종식
민주당 역공으로 태도 바꾼 박근혜 위원장
새누리당이 제안한 특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를 겨냥한다. 이상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전 정권과 현 정권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모든 진실을 규명하는, 성역 없는 특검을 즉각 실시하자”고 말했다. “사찰 문건의 80%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 청와대의 물타기에 발맞춰 여당 역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 대통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분리해 총선을 앞두고 전면화되고 있는 ‘정권 심판론’을 비켜가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사태 초반만 해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책임질 사람은 엄벌해야 한다”는 원론적 견해를 밝혔던 박근혜 위원장은 최근 “현 정부가 날 사찰했다고 주장했던 야당이 지금은 내가 불법사찰의 동조자라고 비방하며 말을 바꾸고 있다”고 화살을 민주통합당에 돌리고 있다.
반면 이번 사태의 궁극적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야당의 논리다. 특검 구성부터 수사 결과 발표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야권은 국회가 주도하는 청문회와 국정조사에서 이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위원장까지 증인석에 앉히겠다고 공언하는 등 총선 이후 대대적인 대여 공세의 장을 열겠다는 방침이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4월6일 “박근혜 위원장은 청문회를 거부하지 마라. 뭐가 그리 두려운가”라며 “나도 청문회에 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더러운 정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별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는 오히려 ‘역풍’의 가능성마저 낳고 있다. 국정의 포괄적인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할 새누리당의 ‘지난 정부 탓’은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수도권 민심을 더욱 냉랭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여당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사안의 엄중함’은 그 어떤 정교한 프레임으로도 뛰어넘기 어려운 산이다. 새누리당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의 ‘모르쇠’ TV 토론도 비난을 자초했다.
“민주당 중앙당 차원 공중전 너무 점잖아”
민주당은 국면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당초 새누리당의 특검 제안을 수용했다가 곧 번복했고, 역으로 청문회를 제안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재선을 노리고 서울에 출마한 민주당의 한 후보는 “지금은 박근혜 위원장을 공격할 필요가 없다. 심판의 대상자인 청와대가 공세적으로 나오면 야당에는 오히려 호재 아닌가”라며 “하지만 중앙당 차원의 공중전이 너무 점잖게 진행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수사 방법론을 둘러싼 좌충우돌 속에 자칫하면 정국의 주도권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인 셈이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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