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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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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여름휴가?”

여름휴가 대신에 ‘만혼·만육 휴가’ 등 수십 가지 휴가가 있는 중국…
그들의 춘절 연휴는 우리의 여름휴가보다 길다
등록 2011-07-28 16:21 수정 2020-05-03 04:26
» 사이페이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딸과 함께 찍은 사진.

» 사이페이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이번 여름휴가 때 뭐할 거야?” “무슨 여름휴가?”
아차! 중국에는 한국처럼 여름휴가 제도가 없다는 걸 깜박했다.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여름마다 중국 지인들에게 이런 ‘우문’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질문들. “그럼 너희 나라에는 여름휴가가 따로 있니?”

가을 국경절 휴가도 일주일

슬픈 건(!) 그 친구들에게 한국의 여름휴가 제도를 자랑하기엔 중국에 ‘노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단지 중국에는 한국과 같은 여름 집중 휴가제도가 없을 뿐이다. 공기업에 다니는 사이페이(36)도 한국과 같은 여름휴가를 즐기지는 못한다. 대신 그는 1년에 쓸 수 있는 여러 휴가를 조금씩 잘게 쪼개거나 필요할 때마다 곶감 빼먹듯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대학을 마치고 회사를 잠시 다니다 프랑스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속칭 ‘유학파’ 재원으로 분류되는 화이트칼라다. 유학 시절 만난 아내는 한국인이다. 덕분에 그는 한국의 처가로 자주 휴가를 떠난다. 지난 4월에도 연차휴가를 쪼개서 처가에서 가까운 안면도로 휴가를 갔다. 직장 생활 10년이 넘은 그는 연차휴가를 10일 이상 낼 수 있다. 중국에서 연차휴가는 10년 미만 직장인은 평균 5일을, 10~15년차는 평균 10일 정도를 신청할 수 있다.

중국의 휴가제도는 한국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사이페이는 말한다. 주 5일 근무제가 기본인데다 공식 휴가 일수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많다. 나라 규모가 엄청나다 보니 오가는 거리와 시간 소비가 ‘장난이 아니다’. 이 때문에 휴가도 당연히 길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연차·월차 휴가나 국가 지정 공식 휴일 외에도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친척 방문 휴가’라든지 늦은 나이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신청할 수 있는 ‘만혼·만육 휴가’ 등 특수한 휴가도 있다. 이런 휴가들을 다 합치면 그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직장 내 여건 등을 고려해 이런 휴가들을 붙여서 쓰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주말과 끼워서 3~4일 정도 짧은 휴가로 쪼개 쓰기도 한다.

장기 휴가를 즐기고 싶으면 10월에 있는 일주일간의 국경절 휴가나 역시 일주일인 춘절 연휴를 주로 이용한다. 좀 ‘널널한’ 직장이라면 이런 공식 휴일에 연차나 월차, 각종 경조사 휴가 등을 끼워서 보름 이상 놀기도 한다. 대부분의 미혼 직장인은 국경절이나 춘절, 노동절 연휴 등을 이용해 결혼을 한다. 이때가 아니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친척과 친구들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페이에 따르면, 중국의 직장은 1년 업무계획이 연초에 모두 확정되기 때문에 그 계획에 맞춰서 휴가를 요령껏 선택한다. 업무가 바쁠 때는 상사의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업무계획에 차질을 빚지 않는 선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다. 하지만 유럽처럼 한 달 이상의 장기 휴가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두 달 휴가를 쓸 여유는 없어”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그곳 사람들은 보통 한두 달 장기 휴가를 쓰더라고요. 그때는 참 부러운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와서 중국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그런 장기 휴가 제도가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인구가 많다 보니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장기 휴가를 쓰면 직장 업무도 마비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긴 휴가를 쓸 수 있는 경제·문화적 여유가 없어요.”

사이페이는 결혼 뒤 아이가 없을 때는 이런저런 휴가를 모아 아내와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아이가 생긴 뒤로는 주로 한국의 처가나 중국 산둥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휴가를 가고 있다. 한국인 아내 덕분에 외국에 있는 처가댁 방문 휴가는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올해는 그것도 너무 많이 써먹어서 남은 하반기에는 회사에 ‘콕 박혀서’ 국경절이나 춘절 연휴만을 목 빠지게 기다려야 한다고 푸념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 중국 1년 평균 노동시간 #
2319시간(2008년·국제노동기구(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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