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계열사인 지흥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장남 구형모씨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2008년 4월에 세워진 지흥은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을 만들어 판매한다. 설립 첫해 51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09년에도 매출 29억원에 4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하지만 지난해는 영업이익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매출 124억원에 영업이익이 19억원이었다. 그 배경에 같은 계열사 LG화학이 있다. LG화학과의 거래가 2009년 1억8600만원에서 2010년 26억원으로 1년 만에 20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흥의 대표이사는 박종만 전 LG상사 상무가 맡고 있고, 구본준 부회장은 지난해 LG전자에 오기 전까지 LG상사의 부회장을 지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재벌 총수 일가의 문제성 주식거래의 실태’라는 보고서를 내어 “지흥의 주된 제품이 LG화학과 밀접한 사업 연관성을 갖고 있어 지배주주 일가가 지흥을 설립한 것이 회사기회유용 사례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 “자산 5조원 이상의 35개 기업집단(공기업 제외)을 분석한 결과 문제성 주식거래 건수가 107건”이며 “그룹별로 삼성·현대차그룹이 9건으로 가장 많고, SK·STX·CJ·효성그룹이 6건 등이었다”고 공개했다.
총수 자녀에 급성장 회사 지분 건네기도
재벌 총수의 자녀가 비상장사를 세우거나 주식을 매입한 뒤 계열사를 동원해 매출을 키워 손쉽게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아울러 거액의 배당을 받거나 비상장사를 상장해 부를 쌓고,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인수해 그룹의 지배권까지 확대하는 사태 전개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 자료 : 재벌닷컴
2002년 10월 설립된 현대엠코도 마찬가지다. 설립 첫해 매출 94억원에서 시작해 2007년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조241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대부분은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내부거래 비중은 2002년에는 100%, 2007년 94%(1조1041억원), 2010년에는 57%(7119억원)였다. 쑥쑥 성장한 현대엠코의 지분은 상당 부분 총수 일가에게 건네졌다. 현대엠코 설립 초기 글로비스가 전체 지분의 59.9%를 갖고 있었고, 기아차(19.9%)·현대모비스(19.9%)도 대주주였다. 이후 2004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0%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25.1%를 글로비스로부터 사들였다. 글로비스가 급성장하는 현대엠코의 지분을 건넨 셈이다. 정 회장 부자는 현대엠코로부터 매년 고액의 배당금을 받았고, 올해도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각각 50억원과 125억원을 받았다.
다른 재벌의 총수 일가가 보유한 비상장사 역시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와 차녀가 18.6%의 지분을 보유한 식음료회사 롯데후레쉬델리카도 지난해 매출 584억원 가운데 97.5%인 569억원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매출은 2000년 37억원에서 10년 만에 16배로 늘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아들 이현준씨 등이 대주주로 있는 시스템통합(SI)업체 티시스와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SI업체 대림I&S의 내부거래 비율도 각각 90.5%, 82.4%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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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닷컴은 지난 4월4일 자산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재벌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총매출 7조4229억원 가운데 내부거래가 3조4249억원으로 절반에 가까운 46%였다고 밝혔다. 이는 30대 그룹 전체 계열사의 평균 내부거래 비율인 28.2%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이 회사들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게 아니라 계열사의 일감을 받아 매출을 올리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내부거래로 매출을 손쉽게 늘리면서도, 기업이 부실화되면 다시 회사에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잘되면 재벌 총수 일가의 돈이 되고, 안 되면 회사 손실이 되는 셈이다.
적자 436억원 기꺼이 떠안은 녹십자
녹십자홀딩스는 지난 3월28일 자회사 그린피앤디를 흡수 합병한다고 공시했다. 그린피앤디는 경기 용인시의 구갈역세권 개발을 위해 2005년 지배주주 일가(76%)와 세원개발(14%), 녹십자이엠(10%) 등이 출자해 설립했다. 세원개발은 지배주주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지배주주일가가 2008년 녹십자이엠 지분을 인수했다. 그린피앤디는 사실상 개인회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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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주주 일가가 만든 회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녹십자홀딩스로부터 부동산을 인수해 개발을 시작하면서 1천억원의 돈을 은행에서 빌렸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 인허가가 나오지 않아 지난해까지 매출 한 푼 내지 못한 채 이자만 냈다. 지난해까지 436억원의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였다. 이런 회사를 녹십자홀딩스가 합병했다. 합병을 위해 지난 3월 그린피앤디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5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0%를 확보했다. 이번 합병으로 250억원의 투자금도 돌아왔지만, 그린피앤지의 적자 436억원도 녹십자홀딩스의 몫이 됐다. 결국 지배주주 일가에게 부동산 개발 권리를 독점시킨 뒤 이것이 실패하자 그 손실을 다시 회사에 떠넘긴 셈이다.
이처럼 재벌 일가가 내부거래를 통해 ‘부’를 대물림하고, 그런 시도가 실패할 경우 다시 회사에 떠넘기는 사례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 프렌들리’라며 출자총액제한제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재벌들의 내부거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게다가 삼성그룹의 사례에서 보듯 편법으로 주식이나 경영권을 물려주기 어려워지자 물량 몰아주기 등의 사례가 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처럼 부와 경영권이 부당하게 이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향후 그룹을 이끌 재벌 2·3세가 손쉽게 부를 이루면서 기업가 정신을 키울 기회를 잃게 된다”며 “자칫 그룹의 미래까지도 불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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