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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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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쌍팔년도식 해외경영이냐

인권경영은커녕 책임경영 국제규범 가입조차 소극적인 한국 기업…

“현지 시민에게 다가가는 경영으로 국가브랜드 가치 높여야”
등록 2011-03-30 16:34 수정 2020-05-03 04:26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 라디오 연설에서 “개발도상국에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함께 도와주자”며 개발도상국 지원 문제를 G20 의장국인 한국이 주도하는 주요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세계경제 13위 나라라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 진출 및 투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수출입은행에 신고된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 금액은 194억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제조업은 45억달러, 건설업은 2억달러, 물류·운수업은 7억달러 등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이런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국제 규범을 따르고 있는지,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은 부족하다. 다른 나라의 빈곤 문제 해결과 번영을 위해 얼마나 기여할지에 관한 고민도 없다.

차라리 폭스콘의 애플이 낫다

애플은 지난 2월 ‘협력업체와 공급업체에 관한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127개 하청기업을 감사한 결과 적발한 아동노동, 유독물질 사용 등 위반 사항 및 조처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성년자 91명을 고용한 기업 10곳을 적발한 뒤 곧바로 시정 명령을 내렸고, 이 가운데 42명이나 고용한 한 기업과는 계약을 끝냈다. 또 대만기업 윈텍의 중국 쑤저우 공장에서 유독물질인 ‘노멀헥산’(N-Hexane)을 사용해 아이폰의 액정을 닦는 바람에 137명이 중독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치료비와 임금 등을 제공했고, 대부분 건강을 회복해 회사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계속 발생한 중국 폭스콘 공장의 노동자 자살사건에 대한 감사도 포함됐다. 애플은 독자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폭스콘 사건을 조사한 결과, 다수의 심리상담가를 고용하고 24시간 운영되는 진료센터와 자살을 막기 위한 그물을 회사 건물에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애플은 2007년 하청업체에 대한 감사를 시작해 해마다 그 대상을 늘려가고 있다.

» 한국이 원조해 건립된 라오스의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주경기장 연결도로 곳곳에 구멍이 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ODA 워치 제공

» 한국이 원조해 건립된 라오스의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주경기장 연결도로 곳곳에 구멍이 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ODA 워치 제공

물론 애플의 감사는 비정부기구(NGO)와 언론이 애플 하청업체의 반인권 경영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데 영향을 받았다. 또 여전히 애플은 NGO의 비판 대상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NGO 소모(SOMO)는 3월 현재 윈텍의 쑤저우 공장에서 유독물질에 중독된 이들 가운데 22명만 남아 일하고 있으며, 이들 역시 여전히 질병을 앓고 있다며 애플의 감사 보고와는 다른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과 비교하면 애플은 상대적으로 책임경영에 적극적인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하청업체 조사는커녕 국제규범 가입조차 소극적이다. 2004년 휼렛패커드, IBM 등이 시작한 인권경영을 위한 ‘전자산업 행동규범’(Electronic Industry Code of Conduct)에 삼성전자는 2008년, LG전자는 2010년에 뒤늦게 가입했다. 애플과 같은 하청업체 감사 결과는 이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별도 별고서는 더더욱 없다.

애플의 ‘협력업체와 공급업체에 관한 보고서’는 127개 하청기업을 감사한 결과 적발한 아동노동, 유독물질 사용 등 위반사항 및 조처 내용을 담고 있다. 미성년자 91명을 고용한 기업 10곳을 적발한 뒤 시정 명령을 내렸고, 이 가운데 42명이나 고용한 한 기업과는 계약을 끝냈다.

다른 업종의 한국 기업을 살펴보면 더욱 초라해진다. 정보기술(IT), 에너지, 금융 등의 업종에서 세워진 각종 인권보호 원칙에 가입한 기업을 찾기 힘들다. 우선 AT&T, 보다폰 등 IT 업체가 가입한 ‘세계e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GeSI·Global e-Sustainable Initiative)에서는 SK텔레콤이나 KT 등 국내 기업을 찾을 수 없다. 에너지업체나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업체가 기업 활동에서 관련 당사자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원칙인 ‘안전과 인권에 관한 자발적 원칙’(Voluntary Principles on Security and Human Rights)에 우리 정부나 기업은 가입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영국·스위스 등 7개국과 엑손모빌·셸 등 18개 업체가 가입해 있다. 금융기관의 대규모 개발사업 투자에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적도 원칙’(Equator Principles)에도 ING그룹, 시티그룹, HSBC 등 70개 은행이 가입했지만 국내 은행은 없다.

라오스 도로 지원하고 원망 들어

국제기구 가입도 마찬가지다. 유엔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2000년 설립한 유엔 글로벌콤팩트(Global Compact)의 국내 기업 가입은 더디게 늘어난다. 지난해 12월 GS칼텍스 등이 가입하면서 3월 현재 190개 기업이 가입해 해마다 늘어나고는 있지만, 삼성전자나 포스코, 효성,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미가입 상태다.

정부 역시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서툴다. 올해 제3세계 국가를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1조660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3천억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0.11%(추정치)고, 올해는 예산으로 따지면 0.13~0.14%로 올라갈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의 평균 GNI 대비 비율(0.31%)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수 국가들에 도움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서울 주요20개국(G20) 비지니스 서밋’이 열려 외국 정부 관계자와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서울 주요20개국(G20) 비지니스 서밋’이 열려 외국 정부 관계자와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 원조로 인해 불협화음이 곧잘 생긴다. 지난해 7월28일 라오스의 는 1면 톱기사로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Games)를 위해 설립된 도로가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 도로는 2009년 12월 라오스에서 열린 동남아 11개국의 동남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한국이 차관으로 300만달러를 원조하는 ‘SEA 게임 주경기장 연결도로 개선사업’으로 건립됐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몇 개월도 안 돼 도로 곳곳에 구멍이 파여 차가 지나다닐 수 없게 됐다. 국내 시민단체인 ‘ODA 워치’의 윤지영 정책팀장은 “해마다 한국의 원조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라오스의 도로 사례처럼 한국 이름에 먹칠을 하고 수원국(원조를 받는 나라)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한국 원조는 해당 국가 주민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력 순위에 비해 국가 브랜드 지수가 낮다며 2009년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립했다. 국가브랜드 조사기관 안홀트(Anholt)가 평가한 결과를 보면 2009년 50개국 중 33위에 불과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한국 문화를 IT와 접목해 알리는 것을 비롯해, 글로벌 시민의식 함양, 다문화 포용, 문화·관광 자원 개발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오래된 습관, 여전한 관행

하지만 국내 기업의 해외 경영 활동과 원조가 해당 국가의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국제민주연대의 최미경 국장은 “한국 기업이 1970~80년대 한국에서 벌였던 노동착취 등의 행태가 최근에는 해외에서 곧잘 드러난다”며 “이같은 행태를 근절하고 노동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문화를 일구는 것이 국가브랜드 이미지 상승은 물론 지속 가능한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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