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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 흘리는 동료를 보았다”

방글라데시 영원무역 노동자들, 지난해 12월 파업 때 ‘노동자 구타·실종’ 의혹 제기… 회사 쪽은 “날조된 주장” 반박
등록 2011-03-30 16:24 수정 2020-05-03 04:26

지난해 12월11~12일 방글라데시 항구도시 치타공의 수출가공지역(EPZ)에서 한국 기업인 영원무역 노동자들을 포함한 이 지역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현지 언론은 이날 시위로 최소 3명이 숨지고 250명 이상이 다쳤다고 전했다.

시위에서 3명 숨지고 250여명 부상

한국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지만, 이번처럼 노사 충돌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드물다. 국내에는 임금 인상에 대한 숙련노동자들의 불만과 외부 세력 개입이 시위의 원인이라는 회사 쪽 설명만 전달됐다. 이에 국제민주연대, 민주노총, 좋은기업센터, 서울공익법센터 APIL,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이 조사단을 꾸려 지난 2월9일부터 5일간 현지를 방문했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와 치타공 수출가공지역에 17개 공장이 있다. 현지 관리자인 칸은 면담에서 “최고의 임금과 복지를 제공해 12월 시위 이전에는 노사분규가 한 번도 없었다”며 “지난해 11월치 월급부터 적용된 새 최저임금 체계가 상대적으로 숙련공에게 불리해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6등급으로 나뉜 임금체계에서 가장 낮은 견습공(Trainee)은 기본급이 1400타카(약 2만1800원)에서 2700타카(약 4만2천원)로 2배 가까이 올랐지만, 바로 윗단계인 헬퍼(Helper)는 2100타카(약 3만1천원)에서 3350타카(약 5만2천원)로 올라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낮았다. 나머지 3개 등급 역시 임금이 2배까지는 오르지 않았다. 또 영원무역 쪽은 시위가 발생한 12월11일 외부 세력이 개입해 관리자들을 폭행하고 공장시설을 파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음날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영원무역과 관련이 없고, 현재는 임금 인상 폭에 대한 회사의 충분한 설명으로 노동자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관리자가 노동자 5명을 지목해 얘기하자며 데리고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도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찾아나섰는데, 3층 회의실에서 큰 상처를 입은 동료 2명을 발견했다.” -치타공의 영원무역 YSL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T


당시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증언은 달랐다. 애초 시작은 임금에 대한 불만으로, 1시간씩 돌아가면서 조업을 중단하는 등 소극적인 파업이었다. 이를 대규모로 키운 것은 관리자에게 불려간 노동자가 심한 구타를 당하고, 이중 일부는 현재까지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월11일 영원무역 각 공장의 노동자들이 조업을 중단했다. 12월6일 새 임금체계에 따라 월급을 받고 불만이 커져, 휴일이 지난 뒤 폭발한 것이다. 우리 공장 노동자들도 일손을 놓은 채 불만을 표출했다. 관리자들은 작업을 지시했지만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한 관리자가 노동자 5명을 지목해 얘기하자며 데리고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도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찾아나섰는데, 3층 회의실에서 큰 상처를 입은 동료 2명을 발견했다. 나도 손목과 발목에 피를 흘리는 등 상처를 입은 동료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걸 봤다.”(치타공의 영원무역 YSL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T)
“관리자 S가 데리고 간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전화가 왔다. 이를 듣고 올라가 관리자들에게 행방을 묻자 오히려 ‘퇴근 시간이 됐다’며 전기를 끊었다. 이에 흥분해 관리자를 때리면서 행방을 물었다. 그제야 S가 ‘한 명은 5층 사무실 박스 안에 있다’고 말했다. 잠시 뒤 손목과 발목에서 피가 흐르는 동료가 들려나오는 것을 직접 봤다.”(YSL 공장에서 일했다는 S)

»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12일 치타공의 수출가공지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시위는 전날 영원무역에서 벌어진 관리자들의 노동자 구타 사고로 촉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합 AFP

»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12일 치타공의 수출가공지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시위는 전날 영원무역에서 벌어진 관리자들의 노동자 구타 사고로 촉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합 AFP

정부 관계자 “외부 세력 개입 아니다”

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이처럼 상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다른 공장에까지 알려지면서 많은 노동자가 흥분했다. 영원무역의 또 다른 공장인 YSSIL에서 일한 N은 “당시 노동자들이 퇴근하지 않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수출자유지역 안에서 행진을 계속했다”며 “시위대가 YSL 공장에 도착했을 때 여성들이 ‘동료가 사라졌다’며 우는 것을 보고 대부분 YSL 공장에 몰려왔다”고 말했다. 또 “나도 2층에서부터 5층까지 계단에 피가 묻은 것을 봤다”며 “흥분한 노동자들이 사라진 동료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관리자 A를 감금했는데, 경찰 진압부대가 투입돼 빼내갔다”고 덧붙였다.

다음날인 12월12일 영원무역은 공장문을 닫았다.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은 경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노조의 한 활동가는 “내 눈앞에서 경찰이 실탄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노동자 S도 “노동자들이 해산 명령을 듣지 않자 경찰이 여성까지 곤봉으로 무차별 가격했다”고 밝혔다. 당시 현지 언론은 경찰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3만 명을 입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영원무역은 12월11일 시위는 외부 괴한의 짓이고, 다음날 시위는 공장문을 닫은 만큼 영원무역 노동자들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관리자 자흐둘은 “12월14일 공장이 재가동했을 때 노동자 출근율이 90%에 달한 것을 보면 당시 시위는 영원무역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 출근하지 않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병가 혹은 출산휴가에 따른 정상적인 수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도 영원무역의 주장을 부인한다. 이곳을 관리하는 ‘치타공 수출가공지역 관리청’(BEPZA-Chittagong)의 압두르 라시드 청장은 “수출가공지역과 영원무역의 각 공장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12월11일 사태는 외부 세력이 아니라 영원무역 노동자들의 불만에서 비롯됐다”며 “영원무역은 우리 기관에 임금명세서를 제출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상담하기 위한 우리 직원들의 접근도 막았다”고 밝혔다.

회사 쪽, 정보 공개 않은 채 의혹만 부인

영원무역은 2010년 현재 방글라데시의 섬유·의류산업 총매출액 120억달러 가운데 4.2%인 5억달러를 차지한다. 또 노동자 4만5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의 삶은 넉넉하지 않다. 15년 가까이 일한 A(여)는 지난 1월 6700타카(약 10만7천원)를 받았다. 18일간 2시간씩 연장근무를 하고서 받은 연장근무수당 1181타카까지 포함된 돈이다. 그렇게 일해도 버티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2010년 기준 한 사람당 하루 최소 영양섭취 비용이 60타카(약 920원)라고 밝혔다. 4인 가구 기준으로 한 가족의 한 달 최저 식품비용만 7200타카(약 11만원)가 필요한 셈이다. 휴가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영원무역에서 일하다 2009년 이직한 K는 “회사 규정에는 14일의 휴가가 있다고 돼 있지만, 막상 신청하면 3일밖에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귀국 뒤 서울 영원무역 본사에 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본사는 즉답을 하지 않고 영문으로 질의서를 요구한 뒤 그 질의서를 방글라데시로 보냈다. 방글라데시에 날아온 답변서는 급여 등 기본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은 채,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을 부인했다. 영원무역은 “12월11일 관리자가 노동자 5명을 데려간 적이 없으며, 이들이 부상을 입었거나 실종됐다는 것은 날조된 주장”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시위로 명예가 훼손된 것이 가장 큰 피해지만, 그나마 2만1000달러 정도 피해에 그친 것은 영원무역 노동자들이 외부 괴한의 습격으로부터 공장을 보호해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치타공 수출가공지역 관리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관리하는 지역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발언”이라며 “바루아 산업부장관, 아민 교육부 장관 등도 이번 사태에 대해 영원무역의 책임을 제기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산업부 장관 등은 영원무역이 지난해 12월12일부터 실시한 무기한 휴업 공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날 시위가 확대됐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단을 만난 노동부 장관은 현재 ‘치타공 영원무역에 대한 조사위원회’(Inquiry Committee on Youngone Chittagong)를 꾸려 당시 시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활동가들은 조사위가 노동자 폭행에 가담한 경찰이 속해 있는 내무부 소속이어서 중립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

조사단은 최근 최종 보고서를 아시아 지역 인권단체인 ‘인권과 개발을 위한 아시아 포럼’(FORUM-ASIA)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다시 세계 각지의 비정부기구(NGO)에 전달되고, NGO들은 영원무역 바이어들에게 이런 의혹에 대한 확인을 요구할 전망이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활동가·김종철 서울공익법센터 APIL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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