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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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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망, 우리 아이 사교육을 포기합니다

사교육비 0.3% 감소의 진실은 ‘양극화’…
가계 부채 때문에 저소득층 대거 학원 포기, 고소득층 겨냥한 학원은 전문화로 더욱 번창
등록 2010-08-27 16:12 수정 2020-05-03 04:26
서민 주거지역 학원들은 학생 수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학원.

서민 주거지역 학원들은 학생 수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학원.

지난 8월1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보도자료를 내놨다. “2010년 2분기, 치솟던 사교육비 드디어 감소.” 사뭇 의기양양한 뉘앙스다. 2010년 2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 ‘학원·보습교육비’ 항목이 전년 동월 대비 -0.3%로 집계돼 사교육비가 3년 만에 감소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전체 학원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학원 생산 지수’도 최근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냈다. 이런 결과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성과”라고 교과부는 밝혔다.
과연 그럴까? 교육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공교육이 정상화됐다거나 사교육 수요가 줄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계 부채 증가로 집집마다 돈이 없어서 학원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목했다. ‘있는 집’은 그대로인데 ‘없는 집’은 그만두는 학원 시장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취재 결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사교육 양극화의 증거가 목격됐다. 교과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0.3%’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_편집자

양복점에는 손님이 끊긴 지 오래다. 매년 3월이면 입학이나 취직을 준비하는 단골들이 찾아왔건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었다. 양복점 안주인인 최영자(51)씨는 “문을 닫자니 다른 할 일도 없어, 죽지 못해 운영한다”고 했다. 가게 월세 40만원을 빼면 한 달에 몇십만원 만져보기도 힘들다. 서울 노원구에 자리잡은 최씨의 양복점엔 옷감 대신 시름이 가득하다.

고소득층, 부채 늘어도 사교육 늘려

최씨 부부는 카드빚을 돌려막으며 생활을 꾸렸다. 어느새 카드빚은 최씨가 1천만원, 남편이 800만원이다. 낡고 오래되어 1억원이 간신히 넘는 집으로 담보대출만 3천만원을 받았다. 생활비가 없어 그 집마저 전세를 주고 이웃에 얹혀 살았는데, 집을 처분하려고 보니 전셋값 내주기도 빠듯했다. 부부는 최근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채무 조정 절차를 밟았다. 앞으로 8년간 카드빚을 나눠 갚아야 한다.

이런 처지에서 늦둥이 명수(13)를 학원에 보내는 일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최씨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남들은 선행학습이다 어학연수다 바쁜데 아들만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동네 학원 ‘중학교 예비반’의 한 달 수강료는 26만원.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각 과목의 교재비를 더하니 30만원이 훌쩍 넘었다. 또 빚을 졌다.

결국 지난 4월 학원을 포기했다. 넉 달 만이다. 학원 원장은 “이제 막 명수 성적이 나아지고 있는데 아쉽다”고 했다. 아쉽기로는 원장보다 엄마의 마음이 더했다. 아들 명수는 “학원을 다니니 수학이 좀 이해가 된다”며 엄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별수 없었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 명수의 성적은 중하위권을 맴돈다. 하지만 최씨는 “물가가 올라 제대로 된 반찬을 해줄 돈도 부족한 상황에서 더 이상 사교육에 돈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명수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가계 부채에 허덕이는 가정은 계속 늘고 있다. 2010년 5월 말 현재 예금취급기관의 가계 대출 잔액은 564조원이다. 바로 전달인 4월과 비교해도 6조3천억원이 증가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도 275조4천억원에 달한다. 반면 가계 채무 상환 능력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개인순처분가능소득(전체 소득 가운데 마음대로 소비·저축에 쓸 수 있는 부분) 대비 금융 부채는 2004년 1.14배에서 2009년 1.43배까지 증가했다. 또한 개인순처분가능소득 대비 개인이자지급 비중도 2004년 3.1%에서 2008년 7.5%로 증가했다. 빚은 급격히 늘고, 이를 갚을 능력은 약화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가계 부채의 결정 요인과 평가’란 보고서를 통해 가계 부채와 사교육비의 지출 행태를 비교 분석했다. 2004년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966가구의 가계재무구조와 사교육비 지출을 조사하고 2년 뒤인 2006년 자녀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이들 가정을 재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소득과 자산이 많을수록, 부채가 적을수록 사교육비 규모도 크고 가계지출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그러나 자녀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중위소득(인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50~150%인 중소득층이나 150% 이상인 고소득층은 부채가 증가해도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저소득층은 부채가 늘자 사교육비 지출을 억제했다. 소득계층별로 평균 부채에서 1천만원이 늘어날 때 사교육비 지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가계 부채의 사교육비 한계효과’를 분석한 결과, 저소득층만 -0.568로 부채가 늘면 사교육비를 줄이는 반비례(-) 관계를 보였고, 중소득층은 0.448, 고소득층은 0.764로 부채가 늘어도 사교육비를 늘리는 정(+)의 관계를 나타냈다.

마지막 희망, 우리 아이 사교육을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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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 “밥 반찬이냐 학원이냐”

저소득층이 사교육비를 줄이도록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치솟는 물가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6% 상승했다. 지난 7월 ‘장바구니 지수’ 격인 신선식품 물가는 지난해 대비 16.1% 올랐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 지출하는 식료품비도 늘었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월평균 식료품비는 2008년 2분기 18만7860원에서 2009년 19만1969원, 2010년 20만2166원으로 치솟았다. 명수네 집처럼 “밥 반찬이냐 학원이냐”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간다.

그리하여 월수입이 적은 집들은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없앴다. 집집마다의 선택이 나라의 통계 수치로 잡힌다. 지난 8월13일 교과부가 발표한 자료에서 2010년 2분기 ‘학원·보습교육비’는 전년 동기 대비 0.3% 줄었다. 그런데 월소득 100만원 이하의 계층에서는 65.6%나 줄었다. 이들 계층에서는 가뜩이나 적었던 4만6740원의 평균 사교육비가 2만8228원이 됐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는 “학원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저소득층이 교육비 지출을 멈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계층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월소득 600만원 이상인 가구에서는 사교육비가 2009년 2분기 37만4856원에서 올해 35만3857원으로 5.9% 줄어들었을 뿐이다. 이마저도 2008년 2분기에 34만6101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조금 늘어난 액수다. 월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구와 6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사교육비 격차는 2003년에는 7.66배이던 것이 2008년 10.14배, 2010년 11.28배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결국 사교육비 감소의 실체는 학원조차 보낼 수 없는 빈곤계층의 아우성에 있다. 그 아우성은 ‘가난한 학원’들의 현실에서도 확인된다. 서민 주거지역 학원들의 타격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ㅇ보습학원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8월까지 고등부 원생 500명 중 200명이 학원을 그만뒀다. 이 학원 원장은 “그만두는 학생들과 상담한 결과 절반 이상이 집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학원을 그만둔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학원은 지난 4월 학원 강사 26명 중 3분의 1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맡던 강사가 2·3학년 수업도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된다. 근무 환경이 나빠지니 수업의 질은 더욱 떨어진다. 원장은 “그나마 우리 학원은 규모가 있으니 이 정도로 버티지, 원생 수가 50명 이하인 소규모 학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ㅅ보습학원의 상담교사는 “특히 자영업을 하는 학부모들의 상황이 안 좋다”며 “며칠 전에도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학부모와 서울 남대문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학부모가 ‘장사가 안 된다’며 당분간 학원을 끊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수강료 납부 기간인 25~30일에 제대로 돈을 내는 학생은 10%에 불과하다”며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다니게 돼 속상해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지출이 감소했다지만 서울 대치동 학원가는 오히려 학원 수가 늘었다. 유명 대학합격자 이름을 붙여놓은 대치동 한 학원의 입구.

사교육비 지출이 감소했다지만 서울 대치동 학원가는 오히려 학원 수가 늘었다. 유명 대학합격자 이름을 붙여놓은 대치동 한 학원의 입구.

변두리 학원은 붕괴, 대치동은 ‘투자 열풍’

급기야 문을 닫는 학원도 속출한다. KB국민은행 연구소는 ‘2009 업종별 리포트’를 통해 “문리계 학원의 연간 부도율이 2009년 3.77%에서 향후 1년 이내 최대 4.61%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약국·한의원·부동산·편의점·제과점 등 현재 부도율이 4% 미만인 다른 업종과 비교할 때 가장 가파른 부도율 상승이 예상됐다. 학원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학원 생산지수도 지난 3월부터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수근(42·가명)씨는 최근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서 5년간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수학 강사로 학원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5년 만에 차린 학원이었다. 한 고등학교 앞에 중·고등학교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등을 가르치는 140평 규모의 종합 보습학원을 열었다. 하지만 지난해 내내 적자였다. 100여 명이던 학생이 60명 수준으로 줄었다. 학원비를 못 내는 학생이 많아졌다. 10명이 넘던 교사를 5명까지 줄였다. 학원 강사가 줄자 원생 관리도 수업 관리도 안 돼 악순환이었다. 마지막 카드로 전단지, 현수막 등을 동원해 광고를 했지만 적자만 커졌다. 올해 초 학원을 정리하니 “딱 집 한 채가 날아갔다”고 했다. “이제 변두리는 어쩔 수 없다”는 그는 다시 학원 강사로 취직해 밥벌이를 한다.

정씨의 학원이 있던 동네에서만 지난 1~2년 사이 10여 개 학원이 사라졌다. 남은 학원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 그는 “학생이나 학부모와 상담해보면 입학사정관제 등 생소한 대입제도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그런데도 학원을 포기하는 것은 대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두리는 망해도 중심부는 번성한다. 학원가의 양극화는 또렷하다. 2010년 6월 말 현재 서울 시내 학교 교과교습학원 수는 1만3460개로 지난해보다 0.9% 줄었다. 하지만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중랑·동대문구에서는 학원 수가 2008년 말에 비해 752개에서 717개로, 영등포·구로·금천구에서는 1060개에서 1052개로 줄어들었다. 반면 강남구와 서초구를 포함하는 강남교육청 관할 지역에서는 2399개에서 2507개로 1년6개월 만에 108개가 늘어났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는 오히려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과목별, 입시 전략별로 세분화된 학원들이 대규모 자본의 투자 제의를 받고 있다. 1990년대 대치동에서 종합 보습학원으로 출발한 한 학원은 2000년대 들어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과학·수학·국어 학원으로 분리 독립한 뒤 외부 투자를 받았다.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맞춤 전략을 제시하는 컨설팅 업체, 영재 교육을 위한 전문 학원 등 분야도 이름도 다양한 학원들을 두루 거느렸다.

입시 전형에 따라 ‘맞춤형 학원’

학원 간 합병이나 사모펀드 투자를 통해 규모를 키워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형 학원’도 여럿이다. 2004년 12월 온라인 강의업체인 메가스터디가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 크레듀, 정상JLS, 청담러닝 등 여러 학원 기업이 잇달아 상장했다. 사모펀드인 디지털컨버젼스바이아웃펀드는 청산, 하이스트, 학림, 푸른, 길잡이 등 수도권 지역 5개 학원을 인수해 ‘타임교육홀딩스’를 출범한 뒤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세계적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이 특목고 입시학원인 토피아아카데미에, 골드만삭스 투자펀드인 오즈매니지먼트도 논술교육 업체 엘림에듀에 투자했다.

대치동에서 10년간 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전문학원을 운영해온 ㅁ학원 원장 김영민(48·가명)씨는 지난 2년간 3~4개 기업과 투자회사로부터 합병이나 투자 제의를 받았다. 대부분 투자 제의가 코스닥 상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김씨는 그중 한 곳의 투자 제의를 받아들여 그 투자금으로 현재 초등학교 전문 과학 학원 론칭을 준비 중이다.

그의 학원은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고등부의 경우 국제과학올림피아드 등 국제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몰려든 과학고 재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중등부 수업에는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몰린다. 정원의 두 배가 넘는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시험을 봐 지원자의 절반을 자른다. 최근 과학고 입시가 내신 위주로 바뀌면서 위기를 맞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과학고를 영재학교로 전환하면서 입시 전형에 집필 고사, 창의성 캠프 등을 넣어 오히려 시장이 창출됐다. 김 원장은 “입시 전형에 창의성 캠프, 입학사정관제 등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면 학부모들은 불안해 더욱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현재 대치동에는 자칭 ‘창의성 캠프 전문 학원’이라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 전형 방식의 변화에 따라 학원들은 ‘업종 변경’을 하기도 한다. 외고 입시 전형에 영어 교과 내신 성적 반영이 강화되면서 학교별 맞춤 내신 향상을 위한 전문 학원이 출현하고 있다. 김 원장은 “현재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하지만 강남 지역의 가정이 지출하는 사교육비에는 아무 변동이 없다”며 “특목고·자사고 등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이 계속되는 한 대치동 학원 신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19일 ‘공교육 살리기 연석회의’ 등의 주최로 ‘MB 정부 교육정책 전반기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은 “교육비 부담 증가, 학교의 학원화, 일제고사와 교원평가를 비롯한 평가체제 강화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공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은 “계층별 사교육비 격차를 심화시키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다수 학생·학부모에게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잘해서? 교과부 분석은 타당한가

하지만 교과부는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교과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사교육 경감 요인’으로 △외고·과학고·국제고 등 고교 입학전형의 자기주도학습전형 도입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인재를 걸러내고 창의적인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 입학사정관제 도입 △방과 후 학교, EBS 수능 강의 질 강화, 사교육 없는 학교 등 사교육 대체 서비스 확대 정책 등을 꼽았다. 교과부는 2010년을 ‘사교육비 절감 원년’으로 선포했다. 이대로 ‘사교육 양극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사교육비 총액이 줄어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사교육비가 줄어든다는 허울좋은 통계 수치 속에 ‘계층 이동 포기’라는 치명적 독소가 자리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미숙 한국교원대 교수(교육학)는 “마치 대기업 수출이 늘어도 중소기업에 온기가 돌아가지 않은 것처럼 경기가 풀려도 저소득층은 가처분소득이 줄고 있다”며 “(이같은 추세라면) 열악한 지역은 학원이 사라질 것이고 계층 간 골은 깊게 파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은 저소득층이 계층 이동을 포기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김 교수는 “저소득층이 교육을 통한 계급 상승에 의욕을 잃으면, 사회 전체의 동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국가가 이를 되돌려 개인의 동기를 고취하기 위해서는 다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성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도 “최근에는 월 3만원짜리 학습지도 부담스러워 끊는 서민층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고액 과외를 중심으로 한 사교육 매커니즘은 건재해 양극화가 강하게 나타난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사교육을 줄였다’며 보여주기식 통계 제시에만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교육비 -0.3%’의 진실 밑바닥에는 더 이상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 어려워졌다는 뼈저린 절망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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