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장을 지배하는 논리는 ‘경쟁’이다.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잘해야 하기에 사람들은 사교육 시장을 찾는다.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줄세우기식 입시제도다. 이 때문에 사교육 시장은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렇다면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을 구호로 내세운 교육과학기술부의 새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font color="#00847C">수능 두 번, 보름짜리 족집게 과외?</font>
우선 지난 8월1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중장기 대입 선진화 연구회’(이하 연구회)가 내놓은 ‘대입 선진화 방안’을 통해 그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방안, 입학전형 개선 방안, 입학사정관제 정착 등이 주 내용이다. 대입 선진화 방안은 ‘학교교육 정상화’를 추구한다고 밝혔지만 내용이 발표된 뒤 각계 전문가들은 “사교육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수능시험은 한마디로 ‘복잡’해졌다. 우선 현재 중학교 3학년이 대학 입시를 보는 2014학년도부터 수능시험을 두 번씩 치른다. 1차와 2차 시험 사이에는 보름의 시간차가 있다. 수험생들은 희망에 따라 한 번만 응시할 수도 있고, 두 번을 치른 경우 과목별로 좋은 점수를 선택해 대학에 제출할 수 있다. 한 과목만 선택하면 되는 사회탐구·과학탐구 영역의 경우 1·2차 시험에서 서로 다른 과목을 택할 수 있다.
여기서 첫 번째 사교육 요인이 발생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차 시험 뒤 보름 만에 2차 시험을 보면 이 기간에 ‘족집게 과외’가 성행해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사교육업체는 새로운 ‘보름짜리 수능 대비 전략 상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모든 학생들이 두 번의 수학능력고사를 봐야 하는 부담을 안게 돼 사교육 시장의 확대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과목별로 난이도가 다른 시험을 도입해 ‘과목별 눈치작전’도 심해질 전망이다. 수험생들은 기존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인 국어·수학·영어 과목의 난이도를 A형(기존 수능보다 낮은 수준)과 B형(현행 수능 수준) 중에 선택해 치르게 된다. 단, 최대 두 과목까지만 B형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 난이도가 낮은 A형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대학에 따라 B형만 입시에 반영하는 등 여러 변수가 남아있다.
이에 대해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강사는 “이렇게 입시 전형 방식이 복잡해지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느껴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난이도를 낮춰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질 경우 대학별로 논술고사, 면접·구술 고사, 실기·실험 고사 등의 반영 비율을 높여 본고사가 부활하는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확대된다. 대학 수시모집의 평가 방식을 입학사정관제로 통일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수시 선발 인원은 전체 모집 정원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황희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입시를 사실상 자율화하는 입학사정관제는 ‘3불 정책’을 뒤흔들 결정적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입학사정관 관련 사교육 시장이 급격히 팽창해 사교육비 증가가 우려될 뿐 아니라, 이들과 대학이 불순한 목적으로 결탁할 경우 초래될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font color="#C21A8D">대학과목선이수제, 특목고에 유리</font>대학 수업을 선행학습해 학점을 인정받는 ‘대학과목선이수제’(AP)도 대입 전형 자료로 활용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김성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이번 ‘대입 선진화 방안’의 최대 독소 조항”이라며 “외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에서는 이미 AP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반면 서울 강남권이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주변에 관련 학원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실상 특목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방침”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AP 대비 강좌’를 가르쳐온 한 학원 강사는 “재작년에 고려대, 이화여대 등이 글로벌 전형에서 AP를 반영해 특목고 학생들 사이에 AP 열풍이 불었는데, 이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강남권의 AP 사교육 시장이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P 과목은 수강료가 비싼데다 학원이 대부분 강남 지역에만 몰려 있어 지역별·계층별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려한’ 입시제도와는 반대로 저소득층 학생 지원 대책은 빈약하다. 교과부가 내세운 대표적 사교육비 경감 대책인 ‘방과후 학교’에도 ‘양극화’는 진행 중이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99.9%가 방과후 수업을 운영 중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2월 현재 방과후 학교 유상 프로그램의 평균 참여율은 43.1%인데, 이 중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 자녀의 참여율은 29.4%로 떨어진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명수의 학원을 끊은 최영자(51)씨는 ‘방과후 수업’을 선택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거기라도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이 끝난 뒤 여러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1~2회, 한 과목에 3만~4만원이었다. 교재비는 별도였다.
최씨가 학교에 찾아가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한 뒤에야 한 과목의 무료 수강증을 받았다. 국어·수학·과학 세 과목을 듣는데, 두 과목 수강료와 교재비를 내니 10만원이 넘게 든다. 여름방학 때는 2주간 운영되는 방과후 학교에 과목당 3만~4만원의 돈을 냈다. 저녁 급식비, 방학 중 급식비도 별도다. 최씨는 “단돈 1만~2만원도 아쉬운 상황에서 2학기부터는 방과후 학교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용 면에서는 ‘학교의 학원화’가 진행 중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2009년 방과후 학교 운영 실태 조사 및 성과 분석’ 자료를 보면, 학생 1인당 평균 2.3개 강좌를 수강하며 초등학교 인기 강좌는 영어·음악, 중·고등학교 인기 강좌는 영어·수학인 것으로 나타났다.
<font color="#008ABD">방과후 학교도 사교육 대책 안 돼</font>2008년 교과부가 방과후 학교 운영 주체 개방을 골자로 한 ‘학교 자율화 계획’을 발표한 뒤로는 학원 강사들이 방과후 학교로 진출했다. 취재진이 만난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ㅇ학원, 강남구 대치동의 ㅁ학원, 경기 수원의 ㅅ학원 모두 “인근 중·고등학교로부터 방과후 수업 강사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의 학교에 개설된 교과 강좌에 참여하는 외부 강사는 총 1만3177명으로 서울 3923명, 경기도 1882명 순이다. 학교 교사가 아닌 외부 강사가 수업을 할 경우 수강료는 더욱 비싸진다.
경기 안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의 경우 안산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에 있는데,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면 수강료 지원이 안 돼 차상위계층 아이들이 수강료에 저녁 급식비까지 부담하며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을 강제로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게 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같은 방식의 방과후 학교 운영에 대해 교사의 92.9%가 “업무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2009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김성천 부소장은 “학교에서 학원 강사를 고용해 선행학습을 하는 등 방과후 학교는 이미 사교육으로 봐야 한다”며 “방과후 학교 수강료를 사교육비로 집계하지 않고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만중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은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교육 대체 서비스 확대를 통해 사교육비를 경감시킨다는 것”이라며 “소모적인 입시경쟁 교육을 강화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으로 학생의 학습 노동시간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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