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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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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진짜 이유, 정적 제거와 이권?

사찰 피해자 배정근씨, 노동계 이영호-장석춘 라인과 대립…
김종익씨는 알짜 기업 대표이사직 사임 압력 받아
등록 2010-07-15 16:18 수정 2020-05-02 04:26

왜?
김종익 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와 배정근 한국노총 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두 사람은 각각 평범한 중소기업의 대표였고 노조의 간부였다.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들이 ‘민간인 사찰’의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의 ‘눈엣가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가 7월7일 검찰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가 7월7일 검찰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배정근 위원장이 국무총리실에서 나온 검은색 승용차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음을 눈치챈 것은 지난해 12월30일 낮이었다. 한국노총은 당시 노조법 합의에 따른 후폭풍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을 때였다.

사건의 발단은 배 위원장이 미행을 당하기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노총 지도부는 노조법 개정 논의에 항의하며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모습이 농성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은 투쟁 강도가 극에 달한 11월30일 새벽이었다. 장 위원장은 이날까지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이명박 정부와의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못박아둔 상황이었다.

몇 시간 동안 증발했던 장 위원장이 다시 나타난 것은 이날 오후 1시30분 국회 정론관이었다.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종이에 적힌 뭔가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국민 선언’이었다. 내용은 한국노총은 합리적 노동운동 노선에 따라 투쟁을 접고 대화와 타협으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2월4일 한국노총은 정부 등과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가 담긴 노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장 위원장은 이를 ‘고뇌의 결단’이라고 표현했지만 한국노총 일각에서는 강하게 반발했다. 문제의 11월30일 새벽 장 위원장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사실, 그리고 그가 돌아와 읽은 ‘대국민 선언문’의 출처도 엄청난 의혹을 낳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사라진 몇 시간 동안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대국민 선언문에 담긴 ‘선진화’ 등의 표현은 노총 수장이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과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치권 일각에서 “장 위원장이 읽은 대국민 선언문의 작성자가 따로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국민 선언문의 출처로 의심받은 쪽이 바로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었다.

장석춘 위원장과 이영호 비서관의 끈끈한 관계가 의심의 배경이었다. 장 위원장은 전임인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달랐다. 이 전 위원장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를 직접 조율한 인물이다. 대신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조직본부장 출신인 이영호 비서관에게는 금융노조위원장 출신이기도 했던 이 전 위원장이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반면 2008년부터 이 전 위원장에 이어 한국노총을 이끈 장석춘 위원장은 2008년 해외 자본 유치 활동과 2009년 문제의 노조법 타협, 그리고 지난 5월 타임오프 협상 과정에서 정부와 재계의 찬사를 받았다. 대신 노동계에서는 그를 ‘어용’의 상징으로 기억했다.

한국노총 안에서 장 위원장을 가장 세게 들이받은 인물이 배정근 공공연맹 위원장이었다. 2009년 12월 노조법 합의 직후에도 공공연맹은 장 위원장의 독단적 결정을 겨냥해 “정부와 사용자, 한나라당에 무릎 꿇은 굴욕적 백기투항”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임시대의원 대회의 즉각적 소집도 요구했다. 장 위원장의 불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공공연맹이 장 위원장에게 반기를 든 이때부터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검은 차량이 배 위원장 뒤를 따라붙었다.

표면적 이유는 근무시간 골프, 대통령 비하

배 위원장 사찰 의혹이 터지자 총리실은 미행 등 관련 사실을 부인하기보다 “배 위원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과장급 직원으로 신분은 공공기관 직원”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배 위원장이 평일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제보가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합법적 감찰’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배 위원장이 아무리 공공기관 종사자였다고 해도 통상적으로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이 아닌데다, 건강보험공단에서의 직급이 고위직이 아닌 과장급에 불과했고, 공공연맹 위원장으로서 회사 업무는 하지 않는 노조 전임자였다는 점에서 총리실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정치권에서는 노사 문제를 주도하는 이영호·장석춘 라인이 ‘눈엣가시’인 배 위원장을 표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배 위원장이 2011년 1월로 예정된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출마를 예정하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배 위원장은 연임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장 위원장과 맞설 거의 유일한 개혁 그룹 후보로 꼽힌다. 노동계 사정에 밝은 한나라당 관계자는 “배정근 위원장 사찰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정적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이영호·장석춘 두 사람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움직인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의 또 다른 피해자 김종익 전 대표가 표적이 된 이유는 아직까지 명쾌하지 않다. 총리실 해명은 ‘공공기관 종사자인 김 전 대표가 2008년 9월 개인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내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가 노사모 핵심인데다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친분이 있어 총리실이 사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2008년 여름 촛불 열기에 놀란 현 정권이 ‘촛불 배후’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그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2009년 초 경찰이 김 전 대표를 조사할 때 무게를 둔 대목도 그의 노사모 및 이 지사와의 관계 규명이었다. 김 전 대표가 노사모 가입 사실이 없고 이 지사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지만 경찰의 추궁은 집요했다. 배정근 위원장 사찰 사례에서 보듯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 김 전 대표에 대한 사찰도 애꿎은 민간인에 대한 무리한 ‘친노 덧씌우기’ 사찰로 볼 수 있다.

반면 김 전 대표의 사업 영역이 국민은행 관련 이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사찰의 이유는 달라질 수 있다. 그가 대표로 있던 뉴스타트한마음은 2005년 국민은행 희망퇴직자 및 직원들(행우회)의 출자로 설립된 회사다. 김 전 대표는 2006년 다른 직원의 지분을 양도받아 대주주 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주요 사업 분야는 은행 대출서류 관리와 훼손된 지폐를 분류하는 현금정사 등 국민은행의 하청업무였다. 국내 최대 은행 가운데 한 곳인 국민은행을 거래처로 하고 있으니 알짜배기 중소기업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했다.

김 전 대표는 7월7일 검찰 조사에서 “2008년 9월 중순 지원관실의 압력으로 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지분 75%를 주식 가치의 3분의 1 가격에 헐값 처분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8년 말 경찰 조사에서도 그는 지원관실이 국민은행을 통해 대표이사직 사임과 뉴스타트한마음 지분 정리를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지원관실이 김 전 대표를 압박한 진짜 목적은 바로 김 전 대표가 차지했던 국민은행 관련 사업 이권에 있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종익씨 “압력 받고 지분 헐값 처분”

7월5일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부분, ‘왜’이다. 검찰은 “총리실이 평범한 기업인에 불과한 김(종익)씨를 그토록 집요하게 내사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원관실이 민간인 불법 사찰에 나선 ‘진짜 이유’를 밝혀내는 것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비선’ 보고 체계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첫 단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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