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산대학교’ 학생이다. 오늘도 등교, 아니 출근을 한다. 정문을 지나 본관에 이르면 천막들이 들썩댄다. ‘학부제 강행에 반대하는 독·불·일 공동대책위원회 본부’라 적힌 플래카드가 있다. ‘기초학문 수호’라 적힌 플래카드는 청룡연못을 가로질러 내걸려 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거칠게 구조조정을 통과하던 여느 기업과 다를 바 없다.
버거킹을 먹으며 두산 야구팀을 응원하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입학하던 2008년이 스친다. 그해 여름, 중앙대에 대기업 재단이 영입됐다. 학교 발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캠퍼스를 떠돌았다. 대학 간판이 나를 결정하는 시대니까. 교정 곳곳에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에 다들 “돈이 좋긴 좋구나” 했다. 공짜로 받은 폴로 모자를 쓰고 버거킹을 먹으며 모기업 소속 야구팀을 응원했다. 나는 한 가족이 되었다.
대기업 재단은 달랐다. 대학을 ‘구조조정’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잔가지들을 하나씩 쳐냈다. 학내 구성원은 모두 평가와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2010년 2월까지 모두 87명의 정규직 행정직원이 쫓겨났다. 그런데 희한하다. 계약직 행정조교와 교육조교는 415명(2009년 11월 기준)으로 오히려 늘었다. 그것이 기업이 말하는 효율성이다.
교수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법인은 교수 임용 때 외부 헤드헌팅 업체 자문을 도입했다.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라고 했다. 총장 선출도 직선제에서 법인 임명제로 바뀌었다. 효율, 또 효율이다. 놀랍지 않다. 대학의 뿌리라 할 ‘학문’조차 구조조정되는 시대다. 커리큘럼은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이야기고, 이제 대학은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박용성 이사장의 오랜 뜻대로 개편된다(2004년 11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 서울대 강연).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을 초청하는 리더십 교양과목과 ‘회계와 사회’ 강좌가 지난해 2학기 신설됐다. 09학번부터는 졸업을 위해 이들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경영컨설팅 전문업체 액센츄어가 학과를 평가해 개편안을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경영대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어문계열은 학부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4학년 문승건(29)씨는 ‘구조조정 대상’인 독어독문학과에 다닌다. 문씨는 “인문학을 응용학문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학문의 전문성을 파괴하는 사실상의 폐과 조치”라고 말했다.
학내는 전쟁통이지만 외부 언론은 잠잠하다. 지난 3월23일 ‘학문단위 조정 최종안’이 발표됐지만 기성 언론은 단신으로 보도했다. 당연하다. 실용 대학, 효율 대학이 대세다. 숙명여대는 경상대학에서 경영학과를 분리·독립시켜 경영대학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을 지난 3월 발표했다. 건국대는 2008년 히브리·중동학과와 EU문화정보학과를 없앴다. 대신 2009년에 ‘인문학 중심의 예술·기술·마케팅을 접목한’ 문화콘텐츠학과를 신설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침묵했다. 계속, 계속 침묵했다. 결국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대망의 항해 끝 누가 남을까‘10개 대학 공동 설문조사’에서 중앙대 재학생 100명 가운데 64명이 비실용 학과 통폐합을 반대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49명)은 “학교 이미지만 좋아진다면 기업 인수를 (매우) 찬성한다”고 말한다.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천막 농성하는 학생들을 향해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해달라” “흉물스럽다”는 글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자본 앞에서 우린 모순적이거나 계산적이다. 그래서 또 침묵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고 외칠 용기가 없다. 대학조차 자본에 종속된 사회는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류에 편입되지 못할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출근한다. 천막이 흔들리고 플래카드가 아우성친다. 개혁에서 배제된 이들의 신음이다. 신축 중인 건물에 걸린 거대한 문구가 눈에 닿는다. “이제 90년 전통의 중앙대학교는 112년 역사 두산의 배를 타고 대망의 항해를 시작합니다.” 항해 끝에는 누가, 아니 무엇이 남아 있을까.
구예훈 편집장
박중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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