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필기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는데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성균관대 김정직(25·경영학 4년)씨는 지난해 학점 교류를 통해 숙명여대에서 세 과목을 수강했다. “학점교류생은 본교생과 달리 절대평가로 점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여학생들과의 ‘어울림’이 훨씬 수월해졌다. “다들 열심히 학점을 관리하지만 여학생들은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실제 이번 ‘10개 대학 공동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스펙’을 더 중시했다. ‘대학생활 우선가치’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숙명여대에선 ‘스펙’이 1순위(76회)로 꼽혔다. 중앙대의 경우 스펙을 1순위로 꼽은 90회 가운데 52회가 여학생의 선택이다. 연세대·조선대·안양대에서도 여학생들은 스펙을 더 우선시했다.
결과가 말해준다. 경북대에선 올해 1학기 성적장학금을 받은 이들 가운데 여학생이 70%를 넘었다. 학업성취도나 취업 성적만 따지자면 여성이 남성을 대체로 앞선다는 건 오래된 진실이다.
‘독한 X’들이라 그런가. 꼭 그렇진 않다. 한양대 화학과 4학년인 한지수(23)씨는 여성이 취업하기 더 어려운 사회 여건을 지적했다. “기업에서는 같은 조건이라도 남자를 선호하니까 (여성은) 더 좋은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여성 선배들의 수많은 ‘취업 수난사’가 후배들을 더 야박하고 살벌한 경쟁체제로 밀어넣는다. 숭실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박선희(26·가명)씨는 지난해 취업 면접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당시 면접장에는 남학생 4명이 함께 있었다. 그들에게 전공 지식을 묻던 면접관들이 박씨에겐 딱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결혼해도 일을 계속할 수 있나?” 그는 졸업한 지 2년 만에 겨우 취업에 성공했다. 여성 우주인이 탄생한 때에 웬 허풍이냐고?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취업한 강윤주(27)씨는 “시험 점수만 따지면 여학생들이 훨씬 앞서는데도, 기업들이 억지로 남녀 비율을 맞춰 채용한다는 느낌이 많았다”고 말했다.
“남자가 가진 최고의 스펙은 남자”라는 대학가 경구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안도와 자조가 뒤섞여 있다. 광운대 화학공학과 4학년 박재현(26)씨도 “특히 이공계 쪽 취업은 여성이 훨씬 불리하다”며 “남자보다 더 좋은 스펙을 가져야 경쟁이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어느 여대에선 수업시간 중에 학생들이 공개 질문하길 꺼린다. 수업이 끝난 뒤 교수의 연구실을 개인적으로 찾는다. 연구실 앞에 줄을 늘어선 경우도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지식’을 얻으려는 이들이 포함돼 있다.
이번 설문조사를 보면 ‘선배가 알려준 최종면접 노하우를 친구와 공유하겠나’란 질문에 “아닌 편”이거나 “절대 아니다”를 선택한 응답자도 여학생이 훨씬 많았다. 숙명여대·서울여대에서 “그런 편”을 선택한 학생 수는 각각 21명, 27명으로 다른 대학의 절반 정도였다. 경북대·서울대·연세대·조선대 등도 “아닌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10명 이상 많았다.
고용시장 남녀 성비 8 대 2오재림 숙명여대 교수(교육학)는 “성차별은 여전히 견고하다”고 지적한다. 오 교수는 “남자의 빈자리는 남자로 채우기 때문에, 고용시장의 남녀 성비는 8 대 2 정도”라며 “고용 구조가 평등하지 않은 만큼, 여성의 취업이 어려운 이유를 개인적인 책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유경 편집장·이승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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