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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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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거용’의 차이

기득권 위해 기민당과 연정한 독일 사민당의 몰락 vs 미래를 내다보는 전향적 협상으로 탄생한 좌파당의 약진
등록 2010-01-06 16:27 수정 2020-05-03 04:25

2009년 9월 독일에서 연방 총선이 치러졌다. 선거 결과, 신생 좌파당은 11.9%를 얻어 득표율 10.7%를 기록한 녹색당을 제치고 바야흐로 원내 제4당으로 대약진했다. 반면 사회민주당은 4년 전인 2005년 총선 때보다 무려 11.2%포인트가 빠진 23.0%에 그쳤다. 가히 ‘몰락’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민·기사당 연합은 33.8%를 득표해 제1당의 지위를 굳혔다. 사민당과 자유민주당(14.6%), 좌파당이 그 뒤를 이었다.

2009년 9월27일 연방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독일 좌파당의 두 거두인 그레고어 기지(오른쪽)와 오스카어 라퐁텐이 연단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REUTERS/ MORRIS MAC MATZEN

2009년 9월27일 연방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독일 좌파당의 두 거두인 그레고어 기지(오른쪽)와 오스카어 라퐁텐이 연단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REUTERS/ MORRIS MAC MATZEN

68세대 ‘라퐁텐’과 옛 동독 당의 상징 ‘기지’

2007년 6월 창당해 2년 만에 총 622개 연방의석 가운데 76석을 차지하는 성공을 거둔 좌파당은 과연 어떤 당인가? 좌파당을 설명하려면 우선 오스카어 라퐁텐과 그레고어 기지라는 두 스타 정치인을 소개해야 한다.

라퐁텐은 독일의 대표적인 68세대 정치인이다. 독일 사민당의 전통적 좌파 노선을 대표하는 그는 프랑스와 접경한 독일 자를란트주 주지사를 거쳐 독일 통합 와중인 1990년 사민당의 총리 후보를 지냈다. 1990년대 중반 사민당 대표를 거친 뒤 콜의 기민당 장기 집권 체제가 무너진 1998년 선거 이후 사민당 정권의 재무장관을 지낸 재무통이기도 했다. 자신의 저서 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라퐁텐은 이 책에서 자신의 오랜 당 동지인 슈뢰더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강력히 비판하며, 사회민주주의적 가치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가 사민당 집권 5개월 만에 당 대표직과 재무장관직을 버리자, 로비스트와 경제단체들은 하나같이 기쁨에 겨워 몸둘 바를 몰라했으며 유로화가 장중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그레고어 기지는 옛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이라는 낙인을 달고 살던 민주사회당(PDS)의 상징이다. 옛 동독의 변호사 출신인 그는 탁월한 설득력과 ‘기지’(!) 넘치는 언변으로 동·서독 통합 과정에서 전국적 인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대 초 ‘마일리지 스캔들’이라는 황색 매체의 폭로에 휘말려 민사당 당직을 일시 사임할 때까지 ‘기지=민사당’이라 할 정도로 확고한 대중적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좌파당은 라퐁텐과 기지를 투톱으로 하는 선거 연합으로 출발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정부 내 노동개혁 담당 기구 ‘하르츠 위원회’의 4단계(Hartz IV), 곧 전통적인 복지 축소 및 사회보장 삭감에 대한 사민당 내 좌파와 노동조합의 강력한 항의에서 시작된다. 사민당식 신자유주의에 반발한 산발적 흐름들이 점차 대안적 정치조직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이라는 선거용 정치조직이 결성됐다. 이 조직은 노르트라인베스터팔렌 주의회 지방선거에서 비록 5%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선거 직후 사민당을 탈당한 라퐁텐이 WASG 지지를 표명했고, 이때부터 민사당과 WASG의 선거 연합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두 정당의 선거 연합이 2005년 조기 총선을 앞두고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양당의 정치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WASG는 지방선거에서 잠시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독자적으로 5% 진입장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탈당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진 라퐁텐으로서도 연방의회 진입 여부에 정치 생명을 걸어야 했다. 그 이전 선거에서 연방의회 진입에 실패한 민사당 역시 옛 동독 지역 정당의 굴레를 벗고 전국적 좌파 정당으로 서려면 옛 서독 지역의 교두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서남부 제외한 대부분 지방의회에 진출

독일의 선거법 아래에서 양당이 협력을 성사시키기 위한 옵션은 대략 3가지가 있었다. △양당이 즉각 합당 뒤 신당을 건설하는 안 △선거용 정당(Wahlpartei)을 만드는 안 △민사당의 후보 리스트에 WASG 후보를 포함시키는 안(Offene Liste·독일은 1인2표제 선거로 1표는 지역구 입후보자에게, 다른 1표는 정당에 투표한다. 후자의 정당 득표 비율에 따라 후보 리스트에 등재된 후보를 대상으로 의석을 배분한다)이었다.

하지만 2006년 예정된 선거가 2005년으로 앞당겨진 조건에서 즉시 합당은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 그래서 민사당은 ‘민사당 후보 리스트에 WASG 후보를 포함시키는 안’을 주로 제안했다. 반면 WASG는 이 방안이 곧 민사당으로의 합병을 뜻한다는 이유를 들어 ‘선거용 정당’ 건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률 검토 과정에서 선거용 정당을 새롭게 만들 경우 연방 선관위에서 정당으로 승인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 연방선거 참여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양당 지도부는 아래와 같은 합의를 도출해냈다. △독일의 새로운 좌파 프로젝트를 위한 협상을 개시한다 △연방선거에서 상호 경합하지 않는다 △WASG 후보를 민사당의 후보 리스트에 공동 등재한다 △민사당은 이후 당명 변경을 검토한다. 이후 민사당은 당명을 ‘좌파당·민사당’(Linkspartei·PDS)으로 변경했다.

라퐁텐과 기지를 투톱으로 내세워 치른 2005년 총선에서 양당의 선거 연합은 8.7%, 54석을 확보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2007년 공동전당대회를 거쳐 합당을 결의했고, 같은 해 6월 베를린에서 ‘좌파당’(Die Linke)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좌파당은 현재 독일의 서남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의회에 진출해 있고, 베를린 주변의 브란덴부르크와 작센안할트주에서는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주에서는 사민당과 함께 현재 ‘적적’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좌파당에는 엘마어 알트파터, 요하임 비숍, 프랑크 데페, 볼프강 프리츠 하우크 등 독일의 대표적 좌파 지성들과 양독 통합 당시 옛 동독 총리를 지낸 한스 모드로가 참여하고 있다.

좌파당은 ‘민주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복’을 기본 강령으로 내걸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좌파당을 이루고 있는 세력과 집단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좌파당 내부에는 민사당 출신인 ‘반자본주의 좌파’와 ‘공산주의 플랫폼’부터 WASG 내부 분파로 출발한 ‘사회주의 좌파’와 ‘개혁좌파 네트워크’, 좌파당 내부의 공식 의견그룹인 ‘민주사회주의 포럼’,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해방좌파’ 등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력과 집단이 동거하고 있다.

독일 좌파는 나름대로 분열과 결합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저 멀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공채 발행을 둘러싼 사민당 내부의 갈등은 로자 룩셈부르크 등 소수파의 분리와 독일 공산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분열의 제도화는 결국 히틀러 파시즘에 패배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당내 일부가 다른 좌파와 연대한 사례

다시금 21세기, 집권 사민당의 신자유주의는 급기야 당의 분열과 독일판 ‘좌파의 재구성’을 초래했다. 당의 분열을 목전에 두고서도 개혁보다는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한 기득권의 연장을 선택한 사민당은 2009년 선거에서 그렇게 몰락을 자초했다.

한국에서도 2010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연합 논의가 한창이다. 독일의 경험은 물론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집권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당내 일부가 탈당해 원외의 다른 좌파와 연대해서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뒤 일단 성공을 거둔 사례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기는 하지만, 독일과는 선거제도가 다른 조건에서 이를 선거 연합의 구체적 전술로 응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선거 연합을 위해서는 좀더 창의적 발상이 긴요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에만’ 혹은 ‘선거 때마다’ 선거 연합이 아니라, 분열의 진정한 지양을 위한 큰 그림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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