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귀빈식당 쪽 통로가 뚫렸다</font>
김효재(맨 왼쪽)·강승규(왼쪽 네 번째)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의장실 쪽 통로를 막은 집기를 치우려고 민주당 당직자·보좌진들과 대치하고 있다. 김 의원은 사회부장, 강 의원은 기자 출신의 이명박계 초선 의원으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 논의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강 의원은 이날 날치기 통과된 신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의 출입로를 확보하려고 민주당 쪽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한나라당 당직자·보좌진들은 반대편 국회 귀빈식당 쪽 통로를 확보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이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민주당 인력은 대부분 본회의장 정문 쪽에 집결해 있어 역부족이었다.
쇠사슬로 잠긴 귀빈식당 쪽 마지막 문은 본회의장 안에 있던 육군 대령 출신 김성회 의원 등이 밧줄로 문고리를 뜯어내 열었다. 한나라당 보좌진들은 다급하게 “이윤성 부의장 모시고 와! 의원님들 이쪽으로 오시라고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귀빈식당 옆 휴게실 등에서 대기하던 이윤성 국회부의장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이 통로로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font color="#C21A8D">오후 3시30분</font><font size="3">기권한 홍정욱 의원의 역할 </font>
이윤성 부의장(왼쪽 안긴 이)이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흰 셔츠 입은 이)과 국회 경위들에게 둘러싸인 채 급히 본회의장 의장석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부의장이 본회의장에 도착하기 직전 의장석 주변을 점거해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방해를 막았다. 의장석에 앉은 이 부의장이 3시34분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자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직권상정 무효”를 외치며 항의했다.
홍정욱 의원은 이 부의장 ‘경호’와 관련해 “누군가 떠밀려와 넘어지기에 부축해 일으켜세웠더니 이 부의장이었다. 상황이 긴박했고, 경위들이 안으로 모시고 가자기에 도왔다”고 설명했다. 정작 홍 의원 자신은 신문법·방송법 표결에 모두 기권했다. “헤럴드미디어와 동아TV 등 신문·방송사 대주주이기 때문에 사익을 추구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어 기권하는 게 도의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font color="#C21A8D">오후 3시36분</font>
<font size="3">넘어지고 붙들린 채 끌려나오다</font>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정태근·이명규 한나라당 의원에게 붙들린 채 의장석 단상 앞쪽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회의장 앞줄 책상 위에 서서 “이윤성 부의장 당장 내려오라. 날치기하려고 한나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줄 아느냐.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직권상정 강행에 항의하다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넘어진 상황이었다. 조 의원은 “야당 의원 수를 모두 합쳐 한나라당과 비슷하기만 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수적 열세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font color="#C21A8D">오후 3시42분</font>
<font size="3">끌고 끌리던 사법연수원 룸메이트</font>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왼쪽 두 번째)을 이은재·김옥이 한나라당 의원(왼쪽부터)이 의장석 반대편으로 끌어내고 있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이를 말리려 하자 정미경 한나라당 의원(맨 오른쪽)이 김 의원을 저지했다. 끌려나가던 이정희 의원이 “이거 놓으라”고 소리지르자 누군가 “여자가 잡았는데 뭐 어때?”라고 대꾸했다. 이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엔 ‘야만의 땀냄새’가 진동했다. 특히 의장석과 발언대를 지키느라 덩치 좋은 한나라당 남성 의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야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 이 의원의 ‘의장석 돌진’을 막으려고 맨 먼저 나선 이은재 의원은 건국대 행정대학원장 출신으로, 현재 한나라당 여성위원장이다. 의장석 반대편 끝에서 그를 에워싼 정미경 의원은 “(의장석 쪽으로) 보내주면 우리가 다시 끌어와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며 이 의원의 항의를 묵살했다. 이정희·정미경 의원은 사법연수원 동기(28기)로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였다.
3시50분 신문법 표결이 시작됐다. 의장석 주변을 지키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돌아가며 투표를 하러 자리로 돌아왔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이들을 가로막으며 설득했지만, 회의장 정면 양쪽의 전광판엔 속속 불이 켜졌다. 반대표인 빨간불이 갑자기 찬성표인 녹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방청석에선 “대리투표 원천무효!” “이윤성 내려와”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7분 만에 재석 162명, 찬성 152명, 기권 10명으로 가결됐다. 의장석 쪽으로 누군가 던진 신문이 날아들었다.
<font color="#C21A8D">오후 4시2분</font>
<font size="3">판사 출신 의원이 다급하게 다가오다</font>
방송법이 부결된 것으로 전광판에 표시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윤성 부의장이 “투표 다 하셨습니까? 투표를 종료합니다”라고 선언하자, 옆에서 투표 상황을 체크하던 출신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아직 145밖에 안 됐다. 기다려야 된다”고 제지했다. 곧 전광판엔 재석 145, 찬성 142, 기권 3으로 표시됐다. 재적 과반(148명)의 재석과 재석 과반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인데, 재석의원이 3명 모자라 부결이라는 뜻이다. 야당 의원들과 방청석에선 “부결” “부결”을 연호하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당황한 이 부의장에게 김효재 의원이 “투표 계속하라 그래! 종료하면 안 돼!”라고 소리쳤다. 판사 출신 주호영 의원도 다급하게 다가와 “투표 종료한다 그랬나? 종료한다 소리 안 했으면 (그냥) 계세요”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투표 종료했잖아!”라고 소리지르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 했어요!”라고 맞받았다. 방청객들은 “(부결을) 선포해! 선포해!”라며 이 부의장에게 부결 선언을 요구했다.
<font color="#C21A8D">오후 4시4분</font><font size="3">“다시, 다시!” “원천 무효”</font>
이윤성 부의장이 “재석의원이 부족해 표결이 불성립됐으니 다시 투표해달라”며 누군가 써준 쪽지를 읽자,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의장석 쪽으로 몸을 던져 의사진행을 막으려 하고 있다. 조 의원은 이 부의장 주변 경위들에게 떠밀려 의장석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초조한 기색으로 이 부의장을 바라보던 주호영 의원은 이 부의장이 재투표를 선언하자 고개를 끄덕였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다시, 다시! 다시 투표!”라며 전열을 정비했다. 야당 의원과 방청객들은 “투표를 다시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원천 무효”라고 절규했다. 이번엔 투표 상황을 제대로 체크한 이 부의장이 재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153명 찬성, 3명 기권이었다. 방청석에선 “양아치 OO들아” “이 사기꾼들” 같은 욕설과 야유가 쏟아졌다. 곧이어 표결한 IPTV법은 161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font color="#C21A8D">오후 4시11분</font>
<font size="3">정세균 대표 “진 데 책임을 지겠다”</font>
정세균 민주당 대표(맨 오른쪽)와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가 앉은 자리로 가 방송법 재투표 등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고 있다. 이날로 단식 나흘째였던 정 대표는 산회 뒤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나와 이강래 대표는 (약속대로) 의원직 사퇴를 결행하겠다. 열심히 싸웠지만 진 데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직권상정과 날치기 과정의 불법성을 담담하게 말하던 정 대표는 “당직자·보좌진 여러분”을 부르다 목이 메어 잠시 말을 끊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말할 땐 목소리가 떨렸다. 일부 당직자들은 정 대표 대신 눈물을 왈칵 쏟았다.
<font color="#C21A8D">오후 4시16분</font>
<font size="3">“누님, 미안합니다”</font>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이윤성 부의장 사퇴하라, 사과하라”고 외치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이 부의장을 가로막고 있다. 개의 40분 만에 미디어법, 금융지주회사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이 부의장은 산회를 선포한 뒤에도 들어올 때처럼 경위들에게 둘러싸인 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의 뒤통수엔 “사기꾼” “날치기하니까 좋으냐”는 방청객의 야유가 꽂혔다. 회의 도중에도 끊임없이 의장석 쪽으로 몸을 던져 회의를 중단시키려던 강 의원은 “이 부의장의 사회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합의 처리 요구를 무시한 직권상정이므로, 회의가 성립되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누님, 미안합니다”라며 다가온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을 붙들고 오열했다.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짓을 왜 했어? 옛날에 같이 운동할 때 이렇게 하자고 한 거야?” 노동계에서 20여 년 전부터 최 의원과 인연을 맺은 김 의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산회가 선포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승리’의 악수를 나눴다. 장제원 의원은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일부 의원들은 장 의원처럼 만족스럽게 웃으며 본회의장을 떠났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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