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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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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다시 타오를까

광우병 때와 비슷한 60% 웃도는 반대 여론…
‘집회피로증’과 정권의 역공에도 촛불은 불가측하다
등록 2009-07-30 10:42 수정 2020-05-03 04:25

시민은 다시 촛불을 들까? 언론 관련법이 강행 처리되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의 반응에 쏠리고 있다. 과거 경험으로 본다면 민심을 거스른 수적 다수의 독재나 횡포는 늘 거센 역풍으로 이어졌다. 곧 촛불이었다. 2002년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됐을 때 그랬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의 강행 처리 국면에서 그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 때도 시민은 촛불을 들었다.

한나라당 주도로 언론 관련법이 강행 처리된 7월22일 이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과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촛불의 규모가 확대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한나라당 주도로 언론 관련법이 강행 처리된 7월22일 이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과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촛불의 규모가 확대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누리꾼 대리투표 의혹 찾기 등 활동 개시

촛불의 불씨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언론 관련법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차갑다. 지난 1년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언론 관련법 반대 의견은 늘 60%를 웃돌아 찬성 여론을 압도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 관련법 직권상정에 대해 절대다수의 응답자(78.9%)가 ‘충분한 여론 수렴을 위해 처리를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이 타협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직권상정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18.5%).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찬반 여론을 물었을 때, 반대 여론이 각각 60%를 오르내렸던 것과 비교해도 반대의 폭과 강도가 약하지 않다.

여론조사 이면의 사실도 중요하다. 반대의 이유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과거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비교할 때, 언론 관련법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언론계 종사자는 물론 한나라당 의원조차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철희 KSOI 수석 애널리스트는 “언론 관련법 통과 이후의 결과를 미리 체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반대 여론이 굉장히 높다는 사실은 대중이 이를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언론 관련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지만, 반대의 주된 원인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밀어붙이기식 행태에 저항하는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촛불의 주요 동력이었던 온라인도 꿈틀대고 있다. 상당수 누리꾼이 이미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 소식을 전하는 신문 사진과 방송 영상 등을 토대로 한나라당의 대리투표 의혹을 직접 찾아내는 등 행동에 나섰다. 언론 관련법 처리 당시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이 같은 당 이종혁 의원 자리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 화면을 누르는 장면 등을 찾아낸 것도 누리꾼이었다.

언론 관련법에 대한 여론의 흐름과 강행 처리 이후 시민사회의 격앙된 반응을 종합해보면 촛불의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적 다수의 독재’에 대한 항의의 표시가 촛불이 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당장 들불처럼 촛불이 번질 것으로 예측하기엔 조심스런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피로감이 깊다. 이명박 정권 출범 1년 반이 채 되기도 전에 국민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촛불을 들어야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거리에서 눈물을 뿌려야 했다. 문제는 이런 집단적 열정의 분출이 이명박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바꾸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촛불이 일어나거나 조문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 이명박 정권은 잠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관련자 형사 처벌 등의 방식으로 역공을 펼쳤다. ‘집단적 열정의 분출-정권의 일시적 후퇴-반격’이란 사이클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시민사회에는 많은 피로가 누적됐다는 지적이다.

언론 관련법은 추상적, 광우병은 즉자적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집회 피로증’이라고 표현했다. “촛불을 들고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열정과 수고를 보여준다는 뜻인데, 이명박 정권은 이에 대해 무대응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동시에 촛불집회 이후 1600명 가까운 사람을 사법 처리했다. 민주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에 공안통치로 응수한 것이다. 국민이 현 정권에 대해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중 동원은 쉽지 않다.”

촛불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슈의 특성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과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은 각각 정치적 비주류에 대한 다수당의 횡포와 대미 굴욕 외교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대중의 감정선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했다. 반면 언론 관련법은 사안의 중대함과 별개로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언론 관련법이 우리 사회의 상층을 대변하는 주류 언론만 선택적으로 키울 우려가 있는 만큼 멀리 볼 때 사회적 분배의 악화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지만, 보통 사람에게 다가가는 절박함은 광우병 이슈와 비교한다면 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언론 관련법을 ‘추상적 이슈’, 광우병 문제를 ‘즉자적 이슈’라고 요약했다.

시민사회가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에 대한 태도를 더 분명히 하려면, 언론의 적극적 역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언론 관련법의 쟁점에 대해 독자와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소개해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정대 미디어행동 사무처장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요구한 독일식 매체합산 시청점유율과 한나라당이 막판에 낸 수정안에 포함시켰던 시청자점유율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도 사람들은 박 전 대표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차이들을 언론이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하는데, 언론 관련법에 대한 보도의 양과 질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언론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절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촛불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바로 촛불의 ‘불가측성’이다. 촛불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롯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성질이 있다는 뜻이다. 시민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촛불의 씨앗이다. 김정대 사무처장의 설명이다.“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 직후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주도한 쪽은 야4당과 언론노조가 포함된 미디어행동 등이었지만, 정작 우리는 지역을 주목했다. 많은 지역에서 자발적인 촛불이 운동과 결합하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촛불로 진화하고 있다.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예상보다 촛불이 활발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역에선 자발적 촛불 결합

언론 관련법이 강행 처리 된 뒤 첫 번째 주말인 7월25일에는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비상시국회의와 야당이 서울광장에서 ‘범국민 문화제’를 연다. 민주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만큼 대중이 이에 얼마나 결합할지가 관건이다. 일단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촛불은 아래로 타지 않는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과의 통화에서 언론 관련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의회는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조정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간인데,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강행 처리한 것은 국회가 스스로 민의의 전당이기를 포기한 행위”라며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후퇴, 정치의 붕괴에 대해 항의 차원에서 시정을 요구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지금이 한국 사회 변화의 주요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 관련법 반대 여론이 촛불의 형태로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국민이 폭발과 체념의 경계 지점, 즉 임계점에 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폭발하든지 아니면 체념하든지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정치적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시민사회에 필요한 것은 꼭 촛불이 아니더라도 싸우면 작은 성과라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인 것 같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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