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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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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업체 사장은 포스코 OB들

41개사 분석 결과 65%가 포스코 출신 경영진…
‘낙하산 돌려막기’식 경영권 승계 탓에 정치권 줄대기 극심
등록 2009-07-02 16:27 수정 2020-05-03 04:25

포스코 외주업체들은 어떤 사람들이 경영할까? 은 경북 포항 지역 포스코 외주업체들의 법인등기와 한국기업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외주업체들의 경영권 현황을 추적해봤다. 포스코의 자회사이거나 대주주·경영진의 이력이 불명확한 업체들을 뺀 41개사를 분석해보니, 이 중 27개사(65.9%)의 경영실권자가 포스코 출신들로 나타났다. 나머지 14개사는 포스코 창립멤버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지역의 정·재계 인사들이 소유한 회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설립한 EG테크, 고 강신우 벽산그룹 회장의 아들이 경영권을 갖고 있는 한중 등이 이런 사례다. 이런 수치들은 외주업체 사장 자리가 포스코 간부들이 은퇴 뒤 챙겨가는 ‘밥그릇’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표 참조)

포스코 빌딩관리를 맡는 외주업체인 포스메이트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사 8층 복도의 모습. 포스메이트 임원실 반대편으론 포스코 과장급이상 퇴직자들의 모임인 포스코동우회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포스코 빌딩관리를 맡는 외주업체인 포스메이트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사 8층 복도의 모습. 포스메이트 임원실 반대편으론 포스코 과장급이상 퇴직자들의 모임인 포스코동우회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부장 출신이 창업, 감사 출신이 승계

포스코 외주업체들의 경영권 변동을 살펴보면 일반 기업들에 견줘 매우 잦은 편이다. 예컨대 포스코 구내 청소 업무를 하는 영남산업은 포스코 부장 출신인 박호열씨가 1995년 창업했지만, 2003년엔 정상훈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2006년엔 포스코 감사 출신인 조영오씨가 대표이사가 됐다. 포철산기의 용삭사업부가 분사돼 설립된 피에스씨의 경우, 95년 창업한 박대용씨가 2003년 물러나고 포스코 노무안전부장 출신인 김덕균 사장이 취임했다. 임원 승진을 못한 포스코 부장들이 퇴사하면서 외주업체 사장으로 들어가고, 다시 일정 기간이 되면 후배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은퇴하는 구조인 셈이다. 포스코 임원들의 경우엔 외주사보다 규모가 큰 포스코 계열회사들, 예컨대 포스코건설이나 삼정피앤에이 같은 곳의 사장·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런 외주사 경영권 승계 시스템은 외환위기 이후 본격 가동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경영 현황에 밝은 한 민간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포스코는 2000년을 전후해 고임금의 본사 인력을 줄이기 위해 생산라인 일부를 분사시키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했다”면서 “분사 이후 6년쯤이 지나면 새 퇴직 임원이 사내 하청업체의 주식을 사들이는 식으로 승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퇴직 임원에게 일단 3년의 경영권을 주고, 특별한 잘못이 없으면 한 차례 연장해 6년쯤 일하게 하는 체제는 이구택 전 회장 시절에 확립됐다.

외주업체는 포항제철소 안에서 건설·운반·정비 사업을 하거나 포스코 사옥 등의 시설관리 업무 업무를 하는 회사들인데, 대부분 자기 공장과 설비가 없는 회사지만 형식상으론 어엿한 독립 기업이다. 그런데 포스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영권 승계 시스템 탓에, 외주업체가 새로 생기거나 업체의 경영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 고위직과 정치인들에 대한 ‘줄대기’가 극심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포스코 관계자들은 ‘낙하산 돌려막기’ 형태의 외주업체 경영권 승계과정을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처럼 포스코 오비(OB)들의 이해관계가 뒤엉킨 외주사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포스코가 ‘원로급 선배들의 기득권을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게 이해할 만하다. 외주사들 중에는 회사 설립 뒤 20년이 지난 곳들도 있는데, 대부분 포스코 창립멤버이거나 박태준 명예회장과 인연이 닿는 ‘오비’들의 회사다. 포스코는 내부적으로 외주사의 원로급 사장이라도,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줘선 안된다는 방침을 세웠다. 포스코 노무외주실 관계자는 “그동안 사업권을 보장받으며 이득을 누려왔는데, 그걸 세습하는 것까지 허용하기는 힘들지 않느냐”고 말했다. 새로 퇴임하는 임원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려다 보니, 선배들과 충돌이 빚어지는 형국이다.

포스코 외주업체 경영권 승계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포스코 외주업체 경영권 승계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포스코가 외주사 경영진 임면 강제 땐 불법”

문제는 독립기업인 외주업체의 경영 승계를 사실상 포스코가 ‘기획’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 외주업체 직원은 “우리 회사는 사장 아들이 임원으로 실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데, 포스코 쪽에서 ‘사장이 퇴진하지 않으면 물량을 빼거나 단가를 깎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들을 흘리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한 외주업체 사장은 “10~20년씩 회사를 일구고 노하우를 쌓아온 창업자들이 있는데, 회사를 키워온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물러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은 거래 상대방 업체의 임직원 선임이나 해임을 강제하는 것을 불공정행위로 못박고 있다”면서 “회사 승계가 포스코의 승인을 받는다거나, 거래 중단의 위협을 받는 요인이 된다면 이를 조사해 불법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외주사들 중에는 독립된 사업장을 갖추고 있으며, 포스코 이외의 기업들과도 다양한 거래를 하는 기업들이 있다. 포스코는 이런 회사들을 ‘일반 용역작업 업체’로 구분한다. 이런 회사들 중에도 대주주나 경영진이 포스코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곳들이 많다.

먼저 눈길을 끄는 회사는 포스메이트다. 포스코 사옥 등에 대한 시설관리 업무를 맡는 이 회사는 1990년 12월 (주)포우진흥으로 설립됐다가 94년엔 동우사로, 그리고 포스코 계열회사로 편입된 2006년엔 포스메이트로 상호가 바뀌었다. 이 회사의 주주인 포스코동우회와 (주)포스코는 각각 70%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 포스코 전직 임원은 “포스코동우회는 한전의 전우회, 경찰의 경우회와 비슷한 전직 포스코 임직원들의 모임”이라며 “포스메이트에서 난 수익은 동우회에 배당되고, 동우회는 이 금액을 회원들의 경조사나 친목행사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에서 토목공사와 각종 설비공사를 맡는 동양종합건설, 서희건설 등 중견기업도 일반 용역업체들이다. 이 건설사들도 포스코와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동양종합건설의 경영실권자로 현 대표이기도 한 배성로씨도 포스코 근무 경력을 갖고 있다. ‘아리채’라는 독자 아파트 브랜드를 갖고 있는 서희건설도 포스코 운송통관 담당 차장이었던 이봉관씨가 1987년 인수한 운수업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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