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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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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게 ‘양육’ 선택권은 없나

입양부터 권하는 사회복지기관들…
저소득층 미혼모 월 5만원 지원, 입양 보조비 10만원보다 적어
등록 2009-05-14 15:29 수정 2020-05-03 04:25

“생후 1개월 된 아이를 드립니다.”
한 입양기관에 입양을 상담하면서 접한 말이다. 이 입양기관은 미혼모가 낳아서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를 바로 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입양기관에서도 호적이 없는 ‘1~3개월’ 된 아기를 주겠다고 했다. 국내 ‘비밀 입양’의 현주소다.

지난해 미혼모 1056명이 자신의 아이를 국내 입양 보냈다. 해외 입양을 보낸 1114명을 포함하면 지난해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는 2170명이다. 한 미혼모 시설의 풍경.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해 미혼모 1056명이 자신의 아이를 국내 입양 보냈다. 해외 입양을 보낸 1114명을 포함하면 지난해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는 2170명이다. 한 미혼모 시설의 풍경.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양육비보다 더 많은 홍보비, 그러나…

한국에서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다. 4대 입양기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홍보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입양기관이 국내 입양 아동 1명에게 쏟는 비용의 28%가 홍보비다. 아동 양육비(23%)보다 많은 액수다.

덕분에 국내 입양에 관한 인식이 급격히 개선됐다. ‘국내 입양’은 이제 1980년대부터 비판받아온 ‘해외 입양’의 대안이 됐다. 유명 연예인들도 홍보대사로 적극 나섰다. 많은 부모가 선의를 갖고 입양을 선택했다. 2007년부터는 입양 때 부모가 내던 수수료 220만원도 정부가 대신 입양기관에 지급한다.

하지만 ‘생모와 아이의 분리’라는 기본 구조와 미혼모 문제까지 국내 입양은 해외 입양의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사후관리가 안 되고 파양 때의 대책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입양된 아이는 1306명이다. 이들의 보호자 가운데 518명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이하를 벌었다. 1056명이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였고, 920명이 생후 3개월이 채 못 돼 입양됐다. 이 경우 대부분 양부모의 호적에 바로 출생신고가 된다. 생모와 양부모 모두가 입양 기록이 남길 원치 않아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입양인이 뿌리를 찾거나, 생모가 아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20년 전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에 황아무개(50)씨는 5년 전 국내 입양을 했다. 입양 보낸 아이들을 찾지 못해 애태웠던 마음을 아는 그였다. 아이를 데려온 지 2년 뒤, 황씨는 입양기관에 “아이 부모에게 내 주소를 알려주고 언제든지 오라고 해달라”고 말했다. 입양기관은 펄쩍 뛰었다.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냥 서로 모르는 게 낫다”고 했다. 아이를 뺏긴다는 말에 황씨 마음도 약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아이 생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박아무개(26)씨는 입양을 선택했다가 지난 1년을 눈물로 보냈다. 2008년 3월,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야 했던 그는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을 통해 출산 지원을 받았다. 상담사는 첫 상담에서 입양을 위해 입양 동의서와 친권포기 각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출산일 아침에 박씨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오후에 낳은 딸아이는 입양기관의 임시보호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출산 뒤 아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흘 만에 박씨는 입양기관에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입양기관은 “아이를 데려가려면 아이 아빠와의 관계, 양가 부모의 입장 등을 명확히 하고 그동안 지원한 출산 비용과 아이 위탁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는 생후 2개월이 안 돼 양부모의 품에 안겼다.

민법상 협의 파양 6년 간 4896건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박씨는 아이 아빠와 함께 아이를 키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 찾기에 함께 나섰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민원을 내고 인터넷의 입양 모임에 자신의 사연을 알렸다. 지난 3월 에 보도가 나간 직후 박씨 부부는 아이를 되찾았다. 입양기관을 통해 양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도 좋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입양을 결정하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입양을 번복하는 데는 1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서류상으로 아기는 양부모의 친자다. 아이를 데려오려면 ‘친생자부존재청구소송’을 거쳐야 한다. 박씨 부부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양부모도 상처를 받았다. 결국 1년 가까이 키우던 자식을 뺏겨서다. 충분한 상담과 숙려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입양은 생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신고제인 민법상의 협의 파양이 2001~2006년에 4896건에 달한다. 가정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재판상 파양 사례는 305건이다.

박씨는 “내가 찾아간 입양기관은 단지 입양만 이야기했을 뿐, 양육 지원에 대해선 실질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며 “양육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알았다면 양육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저소득 모자 가정을 일정 기간 보호해 생계를 지원하고 퇴소 뒤 자립 기반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모자보호시설이 전국에 41곳 있다. 이곳에선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고 퇴소 때 정착금으로 200만원이 지원된다. 저소득층 미혼모에겐 한달 5만원의 양육비도 지원된다. 하지만 이는 모든 입양 부모에게 한달에 지급되는 10만원의 양육보조비에도 못 미친다.

어미의 슬픈 눈을 보라

전문가들은 입양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머물 수 있는) 미혼모자 시설 25개 중 17개가 입양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입양을 선택한 미혼모만 입소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혼모가 자녀 양육을 할 경우 입양 부모보다 지원금을 적게 받을 이유가 없다”며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경제·사회적 자립 능력의 제고에 초점을 두어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해체에서 출발한다. 아동이 가족과 고향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제 협약에서 명시하는 ‘기본’이다. 미국에 ‘국제 입양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려던 안과 의사 출신 리처드 보아스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 미혼모 지원시설에 들렀다 생각을 바꿨다. 아기를 입양 보냈거나 입양 보낼 준비를 하는 미혼모들의 슬픈 눈을 본 것이다. 그는 현재 국제 입양 지원 사업을 접고 한국에 ‘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어미의 슬픈 눈을 바라보는 것은 복잡한 입양 문제 풀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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