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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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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의 100일, 김태동의 100일

‘경제 스승’을 구하기 위해 육십평생 처음 법정 증인까지…
‘주류 교수’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한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등록 2009-04-29 13:56 수정 2020-05-02 04:25
김태동교수

김태동교수

‘미네르바’가 무죄로 석방됐다. 지난 4월20일, 박대성(31)씨가 서울구치소를 나서자마자 먹은 건 어머니가 건네준 하얀 두부였다. 그날 저녁 그는 사우나로 향했다. 1월7일 긴급체포됐으니 100여 일, 더께가 한 차례 물세례로 씻길 리 없다. 함께 욕탕에 몸을 담근 채 때를 지운 이 있다.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다.

김 교수는 “판결이 나왔을 때 얼떨떨했다”고 말한다. “검찰 구형이 1년6개월이나 돼, 변호인단도 얼마간의 실형은 나오겠다 예상했죠.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언론 자유와 관련해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한 게 없었기에 더 그랬어요. 담당 판사한테도 분명 (부담이) 있었을 테고요. 사실 당연한 역할을 한 것이지만, 오랜만에 내린 단비와 같은 판결이었습니다.”

한편 이를 지켜본 인터넷 논객들, 특히 미네르바와 함께 사이버 중원을 누비던 ‘경방고수’(경제 관련 인기 논객)들의 심사는 복잡하다. 무죄판결은 예제 없이 환영하지만, 함의와 전망은 달리 갖는다. 모든 것은, 미네르바는 사라지고 박대성씨만 남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하여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반토막 승리다.

검찰은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박씨가 올린 글 280편 가운데 단 2편을 문제 삼아, 대외 신인도를 해치고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 허위 사실이란 혐의로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이 가공할 ‘잡도리’를 기화로, 논객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졌다. 아고라 경제논객 양원석(필명)은 “광장의 안전성을 없애면서, 광장 그 자체를 없앤 것”이라고 말한다. 시민의 익명성이 갖는 파괴력은 철저히 거세됐고, 그들의 온라인 광장엔 잡초만 무성해졌다. 공권력이 궁극적으로 이를 노렸다면, 옹근 그들의 승리다.

한토마에서 활동하는 경제논객 마포강변(필명)은 “인터넷 논객들은 온전히 자신의 기준에 따라 글을 쓰는 게 중요하고, 그 힘은 익명성에서 나온다”며 “미네르바를 장기간 구속함으로써 정부는 바라는 바를 달성했다고 본다”고 말한다.

절반의 승리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옳은 것을 옳다 말하고 옳다 증명하는 것이, 산소가 왜 산소인지 말하고 증명하는 것만큼 힘들다. 그래서 박대성씨의 100일은 김태동 교수의 100일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김 교수는 아고라에 글을 올리며 “(미네르바는) 국민들의 경제 스승”이라며 전면 지지해왔다. 곧이어 미네르바가 전문대 출신에 무직이란 사실이 드러나자, 일부 언론은 자격 미달자에 온 나라가 놀아났다고 힐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첫 경제수석을 지낸 김 교수가 그런 이를 ‘경제 스승’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며 비꼬았다. ‘미네르바 거품’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김 교수가 처음 글을 올린 지난해 11월, 미네르바는 글당 수십만 조회 수를 몰고 다닌 7~9월을 정점으로 수많은 ‘신화’를 뒤로한 채 절필까지 선언했던 상황이다.

“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시려 합니까”

이 때문에, 김 교수 자신부터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원죄’를 꺼낸다. “경제 관련 정보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는 게, 경제발전이나 경제위기 극복, 경제위기 예방을 위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린 (10년 동안) 세 차례의 위기(1997년 외환위기-2003년 카드대란-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매번 학습 못하고 반복하는 겁니다. 많은 정치인, 관료들 반성해야죠. 첫 위기 때 경제수석을 맡았던 저 역시 조금이라도 잘못을 씻어야 하는 거죠.”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학자로서의 분노도 더해진다. 그가 보기에 경제위기를 제대로 털고 다음 위기를 예방하려면 정확한 정보의 원활한 흐름이 필수인데, 현 정부에선 그렇지 못하다. 특히 지난해 말 외환위기가 끝났다는 정보의 발표엔 실색했다. “언제 시작했다는 말이 있었던가요? 심부름꾼인 정부가 주인인 국민에게 위기가 왔으면 왔다 정확히 얘기하면 주인이 알아서 대비를 하는 건데, 자꾸 감추려 드니까 문제가 더 커진 거죠.”

박대성씨 공판이 시작되면서 김 교수는 박씨 쪽의 증인으로 직접 법정에까지 섰다. 박씨의 변호를 맡은 박찬종 변호사에게 무죄의 근거를 전하려 손수 만남을 청했다. 증인으로도 나서달라는 박 변호사의 부탁을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학자는 많으나 지식인은 드문 한국 사회다. 당시 한 인터넷 논객은 아고라에 글을 올려 “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시려 합니까”라며 김 교수의 증인 출석을 만류했다. 김 교수는 증인으로 출석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인지 100% 확신은 못합니다. 그가 설사 가짜래도 그는 풀려나야 합니다. 인터넷 언론 자유의 존속 여부가 이 사건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주일을 준비해서 육십 평생 처음으로 나섰던 ‘증인’은 되레 백로 노는 곳 까마귀 신세가 됐다. 준비해온 자료를 읽지 말라, 영어가 사용된 증언을 속기록에서 지워라, 마지막 발언이 1분을 넘기면 쫓아내겠다, 번번이 판사에 제지당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첫 번째 제지를 받을 때부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며 “개·돼지 취급을 받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참았다”고 말했다.

아예 지난 3월30일부터 미네르바 무죄 시리즈를 다섯 차례에 걸쳐 아고라에 올렸다. “이런 일로 바빠야 한다는 게 슬프다”면서도 글 한 편에 10시간이 넘는 품을 들였다. 꼬박 새운 날들이 이어졌다. 검찰의 구형 수위가 워낙 높아 변호사들이 비관적 전망을 내놓자,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를 증인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해 성사시켰다. 훨씬 더 법리적인 증언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올 1월까지 경제 서적을 펴내기로 한 출판사와의 약속은 속절없이 밀려났다.

박대성씨가 1심에서 무죄로 석방된 지난 4월20일 비가 내렸다. 서울구치소를 나서자마자 어머니가 건네준 두부를 먹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박대성씨가 1심에서 무죄로 석방된 지난 4월20일 비가 내렸다. 서울구치소를 나서자마자 어머니가 건네준 두부를 먹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아직도 많은 미네르바들

재판부는 “(박대성씨의 두 글인) 지난 7월 게재한 ‘환전업무 전면 중단’, 12월 게재한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이 사실과 다른 것은 인정한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표현 방식에서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도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했다.

박씨는 석방된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한 인터넷 매체의 생방송 대담을 비롯해 9차례가 넘는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공인으로서의 글쓰기도 예고했다. 하지만 정작 일부 누리꾼들과 언론은 “말이 어눌하다” “답변이 질문의 논점을 빗나간다”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제2의 미네르바 진위 논란을 점화했다. 변호인 쪽은 “석방 직후 인터뷰는 부적절하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불리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고 했다.

정작 석방일에 함께 목욕을 하고 저녁식사까지 했던 김태동 교수는 “막상 만나면서 그가 미네르바가 맞다는 걸 더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아군’끼리의 싸움이 사안의 본질을 흐릴 위험성을 짚는 말처럼 들렸다.

아고라 경제논객 양원석(필명)은 “온라인 미네르바를 의심하고 수용한 뒤 열광했듯, 오프라인의 박대성씨도 그저 새로 의심하고 수용·기각을 선택하는 과정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고라 논객 SDE(필명)도 “이전의 미네르바와 이후의 미네르바는 달라지겠지만, 그게 의미 있지는 않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가치관 위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아고라 논객 헝그리울프(필명)는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소통하는 이들은 (실체가) 드러나는 걸 대개 싫어한다. 드러났다 해서 크게 판을 벌리자고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어쨌건 박씨는 미네르바를 버렸고,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새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박대성씨 석방으로 한숨 돌렸느냐고 묻자 김태동 교수는 “아직도 많은 ‘미네르바’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민주주의 수준이 1년 사이 전두환 정권 말기만큼으로 곤두박질쳤다고 그는 생각한다. “위기가 있을 때 정부는 감추려고만 했고 미네르바는 위기라고 정확히 말한 것인데, 그걸 이유로 주권자인 국민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건 민주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미네르바냐가 아니다. 우리 모두 미네르바이고 바로 주권자인 우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총천연색 현실경제 실감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주류 교수는 절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상처 입을 작정을 하고서 크게는 표현의 자유, 작게는 민중 한 사람을 지키려고 나선 것에 (김 교수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4월22일 만난 김태동 교수는 지쳐 보였다. 그는 웃음이 많지 않다. 한때 경제를 쉽게 알리고 싶은 바람에 경제 관련 소재 코미디 작가가 되고도 싶었다지만, 그의 수업 중에 웃었다는 학생 또한 많지 않다. 그런 그가 미네르바의 무죄를 설명하는 많은 글에 해학과 풍자, 그리고 균질할 수 없는 감정선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김 교수는 ‘현장학습’을 통해 자신이 얻은 게 더 많다고 한다. 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이와 얘기하며 지역 경제 현실을, 자신보다 나이 많은 노인 방청객이나 아고라의 수많은 댓글을 통해 천연색의 현실경제를 체감하고 배웠다. 그가 “설령 무죄가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법정에서 배우고 얻은 것만 해도 충분히 많았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그의 눈엔 이제 사이버 모욕죄와 ‘재벌은행’이 밟힌다. 특히 미네르바 때문에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애쓰는 ‘재벌은행 법안’ 반대 운동을 도와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는 “사회에 부가가치가 있는 지식과 지성은 반드시 행동의 경험이 있어야만 달성 가능하다는 걸 이제 겨우 좀 파악한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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