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노동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짜인 계급사회다. 정규직·비정규직·자영업자라는 구분에 부동산 보유 여부를 더해보면 한국 사회 내에서 계급을 명확히 판가름할 수 있다. 의 저자인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 “용산 4구역은 재개발 사업이 어떻게 부동산 먹이사슬을 가동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참사를 빚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70번지 ‘국제빌딩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용산 역세권 주변 개발사업의 일부분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의 경우를 보면, 28조원에 이르는 총사업비는 행정중심 복합도시에 들어가는 15조원의 갑절 수준이다. 엄청난 개발이익 때문에 GS·현대산업개발·포스코·금호·SK·두산·롯데건설 등 주요 건설재벌들은 모두 참여하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주간사를 맡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 1개 기업이 얻는 이익이 1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용산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었지만, 참사의 배경에는 건설재벌들의 잔칫상이 놓여 있었던 셈이다.
2001년 초대형 개발사업이 발표되면서 용산 4구역의 땅값은 뛰기 시작했다. 3.3㎡(1평)당 700만원 하던 게 지난해 8천만원으로 폭등했다. 개발사업의 워밍업 단계에서 땅주인들은 10배 이상의 이득을 본 것이다. 또 지난해 5월30일치 용산 4구역 관리처분인가 고시를 보면, 해당 부지엔 최고 40층짜리 주상복합 3개동과 업무용 빌딩 3개동이 들어서는데, 용적률이 무려 746%에 이른다. 6개 건물에는 아파트·오피스텔·판매시설이 들어가는데, 아파트는 60㎡ 면적의 임대아파트 84가구와 164(50평)~312㎡(95평)형의 대형 분양아파트 409가구로 구성돼 있다.
재개발·재건축은 땅을 가진 지주들이 자신의 땅을 내놓고 분양 수익을 돌려받는 시스템이다. 용산 4구역 지주들이 자신의 땅을 내놓고 받는 보상액(권리가액)은 평당 7768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2001년 이 지역의 시세가 평당 1천만원 선이었다는 점에 견줘 보면, 3년 만에 7천만원 가까이 땅값이 오르는 효과를 누린 셈이다. 4구역 땅값이 이렇게 비싸게 매겨진 것은 용산 역세권이면서 상권이 살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개발사업에서 땅 주인과 투기꾼들은 일단 상당한 이익을 먹고 들어간다. 반면 정작 해당 상권을 발생시킨 세입 자영업자에게 돌아가는 영업손실 보상은 1인당 2500만원 정도에 그친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뉴타운 TF단원인 백준씨는 “서울 지역 재개발 사업은 무조건 지주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다. 특히 서울 중심권은 상권 등을 감안해 높은 평가액이 나오니까 지주들로선 재개발을 할수록 이익을 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땅 주인들은 실제 주상복합이 건설된 뒤 분양되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용산 4구역의 기존 집주인 중에 60평대를 분양받는 사람들은 시세보다 4억원 이상, 95평형을 분양받는 사람은 시세보다 7억5천만원 싼값에 분양받게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땅값이 더 오르면 이익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속도전’은 세입 자영업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괴물이다. 어차피 인정받지 못할 권리금은 포기하더라도, 초기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도 전에 재개발로 넘어가버리는 사태가 생기게 된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는 금융권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기 때문에, 철거 날짜가 금융 비용과 직결된다”고 전했다. 2007년 5월31일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용산 4구역의 지주조합은 2009년 2월 공사를 시작하기로 시공사와 계약이 돼 있었다. 공사 시작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시행사 쪽이나 시공사 쪽의 손실 우려가 커졌고, 강제 철거에 나서는 용역업체에서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도 재개발 사업 갈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설득과 대화,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한국의 재개발 사업과 사업 절차·목적 등이 비슷한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11만㎡) 복합시설도 17년 동안 3천 회 이상의 간담회를 거치며 사업이 진행됐다. 용산 세입자들이 ‘대화의 장’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온 과정에 견줘보면, 한국적 시스템의 결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나 영세 지주 등의 피해를 막는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정부가 중장기적인 도시계획 아래 공공택지 개발사업처럼 ‘개발 프리미엄’이 생기기 전의 가격으로 강제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기 세력이 땅값을 띄워놓은 다음 감정평가로 보상받는 현실을 깨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영국이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대체시장, 상가 임대권 등 대안 찾기사단법인 ‘나눔과 미래’의 이주원 지역사업국장은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건설재벌이 끼어들고 정비사업 조합이 과다한 권한을 행사해 이익을 챙기도록 하는, 개발세력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며 “이들 법을 주민 참여 확대, 공익성 강화, 세입자 주거 안정 방안 확대 등의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세입 자영업자의 경우, 대체시장을 만들거나 상가 임대권을 주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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