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누가 평화를 쏘았는가

등록 2008-09-02 00:00 수정 2020-05-03 04:25

조계종,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 종교 편향 문제 23건 집계… “이러다가 한국에서도 종교전쟁 난다”

▣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한국은 다종교 사회다. 2005년 실시된 인구센서스를 보면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종교를 갖고 있다(종교 인구 2497만 명, 전체 인구의 53.1%). 불교 인구가 22.8%로 가장 많고, 개신교(기독교)가 18.3%, 천주교가 10.9% 순이다. 교계의 뜻있는 이들은 모두 이렇게 말해왔다.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 갈등이 없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 기적이 깨질 위기다. 공평해야 할 ‘디케의 천칭’이 기울어진 탓이다. 불심 깊은 한나라당 의원도 사석에서 “나도 (범불교도) 집회에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기독신앙을 가진 한 사단 참모장이 초파일에 비상을 걸어 법회에 있던 장병들을 다 ‘원위치’시키고, 기독교인인 한 사립학교 교장이 문화재로 인정받은 그 학교의 불교 유물들을 모두 땅에 묻어버린 사례를 언급했다. 조계종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발생한 종교 편향 사건으로 꼽는 게 벌써 23건에 이른다.

우란분절(盂蘭盆節·망자의 구원을 비는 재를 올리는 명절·음력 7월15일)인 8월15일 서울 상도동의 한 사찰에서 주지 스님은 이런 법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종교전쟁이 없었지만, 서양사에 얼룩진 종교전쟁을 보면 모두 기독교가 시작한 것입니다. 참된 포용이란 그들이 잘못된 걸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불교계에서는 1972년 강원 춘천에서 시작된 ‘성시화(聖市化·전체 시를 기독교화하자) 운동’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성국화(聖國化·전국을 기독교화하자)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8월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20만 불자(주최 쪽 추산)의 행진은 이런 마음들이 ‘육화’(肉化)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영남에서 올라온 한나라당 지지자였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뜻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저변의 여론이 움직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기독교회관 앞에서는 부산에서 올라온 김홍술(53) 목사가 8월25일부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한국 교회여, 너 가진 것을 나누어주라’고 외치고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는 “정부가 (종교 간의 상생을 찾을 수 있는) 때를 자꾸 놓치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에서도 종교전쟁 난다”고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다. 대형 교회도 여전히 귀를 막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세간에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말씀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소망’이라”고 비튼 패러디가 돌고 있다. 이제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다시 확인할 때가 왔다. 많은 이들은 그 사랑 실천에 이명박 대통령과 기독교가 먼저 나서라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21 관련기사]

▶영남 불자들의 처절한 배신감

▶개신교에 부는 ‘회개’의 바람

▶“추기경이 수구에 둘러싸여 있다”

▶“대통령은 기독교를 역차별해야”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