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규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공익요원

다마짱이 죽었을 때, 할머니는 말없이 초상집에 들러 다마짱 딸에게 부조를 했다. 다마짱은 일제강점기엔 일본에 빌붙어 삶을 잇고, 4·3 사건 땐 군정에 붙어 살아남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마짱은 할머니의 가족을 포함해 몇몇 마을 사람들을 좌익으로 몰았고, 할머니의 오빠와 남동생은 그 사건 뒤 대전형무소로 들어가 소식이 없었다. 나는 다마짱이 죽은 뒤에도 변함없는 할머니의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분노와 노여움 없이 태연히 상가에 가 딸에게 부조하는 모습. 상가에 남아 손을 보태는 할머니의 모습.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넘어선 할머니의 모습.
1948년 12월10일 유엔총회에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 애석하게도 1948년은 제주 4·3 사건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평화적인 세상”을 인권선언의 기조로 했지만 지구 반대편은 자유와도, 정의와도, 평화로운 세상과도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들이 선언해야 했던 것은 ‘인간의 감수성 회복’일지도 모른다. ‘내가 저 사람을 때리면 아프겠구나’라는 아주 단순한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말이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식을 때리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아귀다툼이 있을지언정 사람을 해하는 행동과 말은 삼갔다. 그건 사람이 아닌 작은 미물에 대해서도 같았다. 옛집이라 흔한 거미줄도 할머니는 그냥 걷지 않았다. 빗자루에 못 쓰는 백목을 싸서 거미가 도망가다 비에 걸리지 않도록 했다. 방에서 지네가 나와도 백목을 성케 감아 지네가 다치지 않도록 밖으로 내보냈다.
4·3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됐다면 어땠을까. 아니 최소한 대한민국 정부가 세계인권선언을 숙지하고 있었다면 또 이 사건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세계인권선언 10조 “공평하고 공개적인 심문”을 정확히 지켰다면 할머니의 오빠와 남동생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22조 2항의 “자식이 딸린 어머니,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전체 사회로부터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았다면 억울한 죽음만은 면했을 것이다.
2000년이 되어서야 4·3특별법이 생기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법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해결일 수밖에 없다. 인권이란 법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느낀다.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할머니는 알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할머니도 다마짱의 죽음 이후 깨달은 듯했다.
“보라, 다마짱도 정(저렇게) 죽는 거. 사름(사람)이 사름답게 살아사 할 건디 다마짱은 경(그렇게) 못 살았주. 게도(그래도) 사름이 사름 미워하민 안 되어. 다 똑같은 사름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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