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화 조처’의 향방을 가늠하는 고비… 선거 참여운동 벌어지지만 아직 대중의 관심 적어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4월15일 이명박 정부는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학교 자율화 조처는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은 학교가 결정한다는 것이 뼈대다. 4월 말에는 자율화 조처에 따라 곧장 학사운영 지도지침, 방과후 학교 운영지침, 수준별 이동수업 운영지침 등 29개의 지침이 모두 폐지됐다. 이에 따라 0교시, 심야 보충수업, 일제고사, 우열반 등이 학교에 따라 속속 부활하면서 학생들의 삶의 조건은 급격히 바뀌었다.
강남역 촛불집회, 시민단체도 움직여
7월30일, 교육과 관련한 삶의 조건이 두 번째로 달라진다. 이날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계기다. 학교 자율화 조처는 학교에 자율을 주면서 동시에 각 시·도 교육감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그동안 학교장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시·도 교육청 장학관, 교육장, 교육연수원장 임용권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있었지만 이를 모두 교육감에게 넘겼다. 대폭 확대된 인사권 외에도 교육감은 6조원이 넘는 예산편성권, 조례와 교육규칙 제정권, 학교와 그 외 교육기관 설치·이전 및 폐지에 관한 권한 등을 모두 갖는다. 당장 미국산 쇠고기가 학교급식 재료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례를 제정할 수 있고,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 과학고 등 각종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국제중학교의 설립도 교육감이 결정한다. 누가 교육감이 되느냐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은 추진이 힘들어질 수 있다. 수도 서울의 초·중·고 교육에 관한 큰 그림은 물론 세세한 곳까지 힘을 미칠 수 있는 서울시교육감을 7월30일 서울 시민이 직접 뽑는다.
지난 두 달간 촛불은 출구를 찾아헤맸다. 차벽을 두드리고, 전경차를 끌어내고, 밤을 지새우며 촛불을 드는 것을 넘어 촛불의 열정을 발산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즈음 촛불의 언저리에서 ‘촛불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이 ‘합법적 직접행동’의 방안으로 떠올린 것이 ‘교육감 선거’다.
7월9일 서울 강남역 근처 한 빵집 앞. 이곳에서는 지난 7월2일부터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아고라강남직장인촛불본부’가 시작했고 화요일마다 강남학부모모임, 강남교사모임 등이 함께했다. 이날은 거리에서 ‘미친 소 미친 교육 냉큼 그만두시오’ ‘미친 소 미친 교육 OUT, 7·30 교육감 선거로’ 등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촛불의 위력을 과시하겠다는 구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나상채(51·서울 서초동)씨는 ‘촛불을 7월30일 교육감 선거로’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나씨는 “아들이 이미 대학생이라 교육감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육은 나라의 미래이므로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선거는 교육감 선거임과 동시에 정권 심판과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나씨는 “예비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육감 선거를 정치와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아무개(12·경기 성남시)양은 “6교시도 힘든데 7교시까지 하라 하고, 영어를 안 그래도 많이 하는데 더 많이 하라니까 지긋지긋하다”며 “학교에서 친구들이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놀리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홍승희(31·서울 흑석동)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누가 교육감이 되느냐는 내 아이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영어 몰입교육과 0교시 등 경쟁 위주의 교육을 막아줄 교육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촛불 정신을 교육감 선거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민단체들도 움직인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좋은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경제정의실천연합,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등 다섯 단체는 지난 6월26일 ‘서울시교육감 시민선택’ 모임을 꾸렸다. 비교적 정치색이 없는 단체들이 모여 각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보내 정책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7월21~22일에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 초청 합동토론회를 열고, 7월24일에는 공약을 분석한 결과로 기자회견을 연다.
8명 예비후보들의 정책은?
7월16일 후보 등록 마감을 닷새 앞둔 11일 현재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등록한 예비후보는 모두 8명이다. 현직에 있다가 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한 공정택 전 교육감을 비롯해 김성동 전 경일대 총장, 이영만 전 경기고 교장, 이인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장옥 한국청소년연합 자문위원, 주경복 건국대 교수, 장희철 장희철행정사무소 대표, 조창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다. 교육감 후보는 교육 관련 경력 5년 이상이면 등록할 수 있다. 7월16일까지 기탁금 5천만원을 내면 정식 후보가 된다.
이 중 어떤 교육감을 뽑아야 할까. 김재춘 영남대 교수(교육과정)는 “정책을 평가하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학교 안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교육 정상화를 보장하느냐, 학교 밖으로는 사교육비를 얼마나 줄이는 정책을 펴느냐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에 더해 “새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교육 기조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번에 뽑는 교육감이 새 정부의 교육 정책에 날개를 달 수도,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판단도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서울시교육감인 공정택 예비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4개월간 추진해온 교육정책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공정택 예비후보 정책의 주제어는 ‘경쟁’이다. 공 후보는 ‘다양한 형태의 학교 설립’을 내걸고 기숙형 공립학교·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의 설립을 공약했다. 정부의 ‘학교 다양화 300’과 같은 조처다.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달리 말하면 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확대하려 하고 일제고사를 통한 학력평가, 수준별 이동수업 등에 대해서도 찬성한다. 공정택 선거본부 관계자는 “이 모두가 학생과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쪽 끝에 서 있는 후보는 주경복 예비후보다. 주 후보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에 반대하고 현재의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입시 경쟁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목적에 맞는 학교로, 또는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신 학교별로 핀란드형 공립학교의 수업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 선택권 확대 대신 현행대로의 추첨식을 지향한다. 점수에 집착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동·박장옥·이영만 예비후보 역시 학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특목고·자사고 설립에 찬성하고, 시험 등을 통한 학생 선발에도 찬성한다. 이인규 예비후보는 특목고·자사고가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은 사교육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대신 선지원 후추첨제를 통해 들어가는 창의형 자율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취재에 응한 이들 여섯 후보는 ‘학교 다양화 정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공정택·김성동·박장규·이영만 후보는 모두 공교육 내실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성동 후보는 “학력 신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교육비가 상승한다”며 “이를 막기 위해 맞춤형 학교 교육, 영어교육 강화 등을 통해 사교육비를 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후보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인규 후보는 “창의형 자율학교를 많이 설립해 특목고 학생 선발 기회를 확대하고 저비용 고효율의 방과후 교육으로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고 말한다. 주경복 후보는 “현재 학력 신장이 사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더 높은 점수 따기, 더 좋은 대학 가기가 사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에, 결국 현행 입시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사교육이 근절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내거는 사교육비 절감 정책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자사고 설립 등 학교 다양화를 지지하면서 사교육비 절감을 주장하는데, 이들 학교의 선발시험이 있는 한은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공정택·김성동·박장옥·이영만 후보의 사교육 절감 정책은 사교육비를 1만~2만원 줄일 뿐 사교육 자체를 근절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인규 후보는 창의형 자율학교에 대한 구상이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하며, 주경복 후보는 뜻은 좋지만 선언에 그칠 수 있어 정책의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택 후보, 수세적 자세로 입길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은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 일반의 관심은 미미하다. 온라인 광장 아고라에는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 세 개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7월2일 올라온 ‘교육감 선거에 참여합시다’라는 청원에는 3438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7월10일 올라온 ‘교육감 선거날 출근시간을 10시로 늦춰주세요’라는 청원이나 7월11일 올라온 ‘교육감 선거합시다’라는 청원에는 각각 3명과 7명이 서명에 참여했을 뿐이다. 바른선거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부 이숙영(50)씨는 “길거리에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우선 홍보가 급선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달 전까지 교육감을 지내 기득권 프리미엄을 쥐고 있는 공정택 예비후보는 애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수세적 선거운동으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공 후보는 의 인터뷰 요청도 “시간이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 ‘서울시교육감 시민선택’이 7월22일 마련한 토론회에 대해서도 “15일 이후에야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방송 토론에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김진우 좋은교사모임 정책위원장은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선거에 참여한 후보의 의무사항”이라며 “이미 현직 교육감으로서 갖고 있던 조직이 탄탄하다 보니, 실익을 따져 오히려 노출을 꺼리는 수세적 전략을 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교육감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인 동시에 지난 두 달간 타올랐던 촛불의 성격과 행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간평가이기도 하다. 촛불은 얼마만큼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행동력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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