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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부처도 촛불 들었을 것”

등록 2008-07-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촛불과 평화에 대한 정만영 신부·양재성 목사·지관 스님 대담… “대통령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념이 문제”

▣ 사회·정리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촛불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당과 교회, 법당을 밝혀왔다. 가장 종교적인 공간을 빛내온 촛불은 평화 그 자체다. 온갖 유혹과 인생의 고통에 신음하는 어린 양들과 중생의 곁을 지키며 구원과 깨달음을 지켜본 것도 촛불이다. 지쳐가던 촛불집회에 종교계가 합류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땅엔 평화가 찾아왔다. 천주교의 정만영 신부(한국남자수도회 예수회신학원), 기독교의 양재성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지관 스님(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김포 용화사 주지)과 함께 촛불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예수와 부처라도 분명히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담은 7월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아무리 절박해도 비폭력을

사회: 이번 촛불시위는 처음부터 일반 시민이 주도한 가운데 평화적으로 열렸다. 평화시위가 끈질기게 지속되는 힘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양재성(이하 양): 미국산 쇠고기는 불특정 다수, 국민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생명권을 지키려고 나섰다. 일부 과열 양상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 의사를 좀더 확실히 빨리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일어나고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확대됐다. 폭력으로 뭘 관철하려는 국민 정서는 지나갔다. 아무리 절박해도 비폭력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폭력이 나오면 여론이 등을 돌릴 것이고, 그러면 뜻을 관철할 수 없다. 더 힘들고 오래가더라도 비폭력을 유지해야 한다.

지관(이하 지): 대승불교는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비롯됐다. 촛불시위도 국민이 ‘새로운 개혁’을 원한다는 점에서 그 차원으로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바보로 안다.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등 목표만 생각했지, 그로 인해서 고통받는 국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은 새롭게 개혁하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부는 자꾸 아니라고 하니 소통이 안 된다. 불교에서는 이번 촛불에 모인 사람들이야말로 ‘보살’이라고 여긴다. 기존 불교 운동에서 새로운 부처 정신으로 가야 한다는 대승불교 운동의 중점이 ‘우리 모두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의 말씀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부처님께 법문을 들어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해 부처님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의 배후 세력은 결국 주부와 아이들이다. 이걸 보고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 대통령은 대승불교가 개혁하려 한 기존 불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시위 시민들은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해 불도를 닦는 일)의 정신으로 뛰어드는 보살의 모습이다.

정만영(이하 정): 미국산 쇠고기 문제의 이면에는 창조에 대한 문제가 있다. 가축에게 동물 사료를 먹인 건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사건이다. 광우병은 창조 질서를 위배한 인간에 대한 보복이다.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성서에 보면 예수께서 물고기 2마리와 떡 5개로 5천 명을 먹였던 적이 있다. 이 기적이 왜 일어났나. 그들의 배고픔을 보고 측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지금 장관, 대통령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나? 국민을 불쌍히 여기나? 아무도 안 그럴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지 않나. 오히려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사회: 예수는 현재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양: 평화를 지키고 구축하는 게 예수가 꿈꾸던 삶이다.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예수는 목숨을 걸었다.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하는 것은 반예수적이다. 소통으로 풀어갈 수 있는 민주적 역량이 성숙했는데 정부는 왜 이렇게 귀를 틀어막나 궁금하다. 결국 불통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폭력이 사용되면서 사회구조가 균열되고 있다. 예수 말씀에 따르면 평화는 존중에서 나오고, 존중이 대화를 이끌며, 대화는 배려를 낳는다. 국민은 요구하면서도 인내하고 기다리는데, 정부는 독선과 오만을 부리고 있다. 예수라도 아마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 거다.

사회: 그럼, 부처는 촛불을 들었을까.

지: 당연히 부처님도 촛불을 들 것이다. 이념과 상관없이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 때문이다. 부처가 살던 당시에도 그는 생명이 위험한데도 물싸움을 막고 전쟁을 앞장서서 막았다. 부처님이 지금 계셨으면 절대로 절에서 목탁만 두드리고 염불만 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사회: 대통령이 믿는 예수와 양 목사가 믿는 예수는 다른 사람인가 보다.

양: 기독교는 극좌에서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히틀러를 따르던 무리 중에서도 기독교도가 많았다. 기독교에서 성과주의와 물량주의가 이어지면서 교회가 대형화됐고, 종교 기득권을 장악한 이들은 정치에까지 뛰어들었다. 부시도 예수를 믿는다. 그는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주의자이면서 예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에 반대하고 몸으로 맞서 시위하는 세력도 역시 예수를 따른다. 결국 이들이 믿는 예수가 다르다고밖에 볼 수 없다. 몸으로 막아선 사람의 예수와 전쟁을 일으키는 예수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겠다.

종교인이 맨 앞줄에 서야

사회: 이 대통령은 종교인을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불교 등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 논란이 인다.

정: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종교 사상 속에 문화적 다양성이 배어 있다. 나는 신부지만, 내 생각 속엔 유·불·도 사상이 고루 배어 있다. 정치와 종교는 서로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과 현 정부 관료는 정치와 종교를 혼돈하고 있다.

지: 대통령이 자꾸 종교적 입장에서 얘기를 하니 관료들이 편향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지도에 사찰이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 있나. 대통령이 그러니 장관들이 다 종교 편향이 되고, 또 공무원들도 다 따르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특정 종교를 대통령이 됐다고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인의 공복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교적 가치를 철저히 낮추는 처신이 필요했다. 그렇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양: 자기 신념을 수십 년간 쌓아온 것이라 신앙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에게 중도를 유지하라는 것은 아니다. 불자가 대통령이 되면 불교의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정치력의 문제라고 본다. 근본주의자들의 문제는 자기 신념을 모두의 신념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그런 치우친 근본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 김홍도 목사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등은 사탄 발언을 했다. 예수는 자신을 믿지 않는 무리에 대해 제자들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내버려두라고 했다.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반예수적이다.

사회: 다시 촛불 얘기로 돌아가자. 성경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나.

양: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예수께서도 죽을 줄 알고도 잡히셨고, 죽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방을 살리는 사랑의 완성을 실천했다. 그 당시도 지도자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받았지만, 사랑으로서 그들 정부를 감싸고 자신이 희생했다. 지금도 이명박 퇴진이 문제가 아니다. 한편이 승리하고 한편이 지는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승리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해 비폭력 유지가 중요하다. 결국 이명박 정부도 성공해야 하지 않겠나.

사회: 예수도 탄압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적은 없나.

정: 무저항이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저들의 폭력을 해학과 조롱으로 무력화하는 게 가장 큰 저항일 수도 있다.

사회: 만약 정부가 누운 사람들을 밟았듯이 또다시 시위대의 비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그게 정말 큰 문제다. 나도 감정이 격양될 때가 많다. 현장에 있어보면 분노가 치민다. 내가 스스로 날 통제하기 힘들 정도다.

지: 시위 현장에 가보면 이성이 마비된다. 감정의 문제, 본성의 문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에 막아야 한다. 종교인이 맨 앞줄에 서서 폭력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

사회: 부처는 탄압당할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나.

지: 그냥 맞고 계셨다. 부처가 법문을 전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제자에게 물었다. “교리를 전파하다 다른 문화에 익숙한 남들이 날 욕하고 때리면 어떡할래?” 제자는 그냥 맞고 있겠다고 했다. 부처는 “그런 마음으로 가라”고 했다. 오히려 맞아도 가만있는 것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한다. 부처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은 때릴 수 없다. 나도 열 받으면 욕한다. 그건 모두 내 탓이다. 내가 깨우침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에 내가 따르지 못한 것이다.

성공이 행복은 아니다

사회: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과 정권에 전하고 싶은 각 종교의 경구 하나씩만 소개해달라.

정: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요한복음에 나온다. 거짓이 당장은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지: 경전에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이란 말이 나온다. 내 마음이 청정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우리 국토, 우리 국민의 행복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내 생각과 의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생각과 의도가 청정하고 진정하다면 모든 국토와 국민이 청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어리석은 발상은 ‘심청정’이 아니다. 이는 국토를 더럽히고 국민을 괴롭힌다. 불교는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양: 이 대통령을 선택한 건 결국 국민이다.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기반은 국민 생존권과 국민 존중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러한 기반을 무시해서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성공시대’를 외치는데, 성공이 꼭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쪽이 풍요롭게 살면 다른 한쪽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성공해야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경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고, 나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행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지 않으면 그건 곧 하느님께 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하나님처럼 대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지금은 지극히 작은 자도 아닌 국민 수백만 명의 소리인데 이걸 안 듣고 있는 건 문제다.

지: 추가로 한마디 하겠다. 압도적으로 지지해서 대통령을 뽑은 건 국민이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면 국민들이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참회하겠습니다’라는 생각을 먼저 가지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큰 머슴’(대통령)도 반성과 참회를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 심정으로, 주인이 머슴을 잘못 부린 심정으로 우리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게 불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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