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주체가 된 대중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분석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성서 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 천지창조 이전부터 ‘말’이 있었다. 말은 뜻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섞으면 생각을 나누게 된다. 태초부터 존재해온 말은 ‘소통’의 씨앗이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는 곧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일 터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는 소통은 말이면 족하다. 얼굴을 맞대고 침을 튀기면 될 일이다. 반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할 때는 소통의 매개체가 필요하다. 시공을 초월한 소통을 중개해주는 것이 바로 ‘미디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미디어 가운데 하나가 책이다. 동시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지식과 경험을 고루 나눌 수 있게 해준 소중한 매체다.
강의에서 대화로, 행동으로
문자의 발명 이후 대략 15세기 중반까지 책은 사람의 손으로 쓰였고, 복제됐다. 책을 베껴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자생’ 또는 ‘필사원’으로 불린 이들이다. 손으로 일일이 베껴 만들었으니, 책은 귀한 물건이었다. 지식의 독점은 그만큼 쉬웠다. 사회의 변화는 기술의 진보를 뒤따른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책의 사본을 만드는 속도가 그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빨라졌다. ‘사자생’이란 직업이 사라진 중세의 뒤안길에서 책을 손에 든 대중들이 르네상스의 큰길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전보와 전화의 출현도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공간의 한계’가 비로소 사라지기 시작한 게다. 한두 달 전의 소식을 싣던 ‘신문’이 바야흐로 새 소식을 담을 수 있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뒤를 이어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차례로 등장했다. 소통의 대상은 그렇게 넓어졌고, 매스미디어 시대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뉴미디어의 총아’로 절정의 힘을 구가하던 1960년 말~70년대 초, 다음 세대를 주도할 미디어가 조용히 태어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마치 ‘강의’를 듣는 것처럼, 특정 개인의 메시지를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방식이었다. 예외적으로 전화가 동시 소통의 쌍방향성을 구현해냈지만, 책·전보·신문·라디오·텔레비전 등 나머지 매체의 소통은 한쪽 방향으로만 이뤄졌다. 이를 바꿔낸 것이 네트워크,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은 더 이상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게 됐다. 누구든 발언을 할 수 있게 됐고, 이를 모두와 나눌 수 있게 됐다.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강연’의 시대가 가고, 멀티미디어가 몰고 온 ‘대화’의 시대가 열린 게다.
매체의 변화는 소통방식의 변화를 낳고, 이는 다시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부른다.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말을 다소곳이 듣기만 하던 대중은 언제부턴가 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고작 항의전화를 하거나 독자편지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던 이들이, 직접 소식을 모아 자기들끼리 나누기 시작했다. 전자우편, 메일링리스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버 토론장, 블로그, 미니홈피, 문자메시지, 휴대전화 카메라, RSS 구독기, P2P 파일공유, 인터넷 방송…. 쌍방향 소통의 멋진 신세계로 안내할 도구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한때 ‘청중’에 불과했던 이들이 스스로 미디어의 주체로 나서게 만든 힘이다.
관심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공통의 관심, 공통의 인식을 가진 이들은 함께 모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곧잘 공통의 행동에 나선다. ‘공유와 소통, 개방과 참여.’ 흔히들 ‘웹 2.0’이라 부르는 커뮤니케이션의 진보는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미 뉴욕대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교수인 클레이 서키가 쓴 (송연석 옮김·갤리온 펴냄)는 “전통적 의미의 ‘조직’이 없이도 집단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중의 시대”, 곧 우리 시대의 변화와 역동을 다양한 사례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나에게 적절한 지렛대만 준다면 지구도 움직여주겠소.”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주어졌을 때, 대중의 집단행동이 갖는 힘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를 닮아 있다. 서키는 이렇게 썼다. “쉽게 가라앉던 분노와 사소한 문제가 거대한 이슈가 돼, 시장과 사회에 뜨거운 마그마처럼 흘러다닌다. 개인의 삶을 틀어쥐고 있던 독점적 힘이나, 사회를 장악하던 권력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힘은 이동하고 흩어지는 반면,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서로 연결돼,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소통의 주체가 된 대중이 집단행동에 나서기 위해선 ‘인식의 공유’가 전제돼야 한다. 서키는 이런 사회적 인식의 발현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첫 번째는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다. 이어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다. 풀어 설명해보자. 1단계는 특정 사실을 특정 그룹이 알게 되는 일종의 ‘정보 입수’ 과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특정 그룹이 자기 친구와 이웃, 동료 대부분도 같은 사실을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2단계다. 하지만 서키는 2단계에서 집단행동이 촉발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왜?
“(특정 사실에 대한) 감정은 널리 확산돼 있지만, 모두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설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행동에 나서고 있는 다른 사람들 모습을 보게 된다. 3단계,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가 된 게다. 이런 인식의 공유는 대중의 실질적 행동이 이뤄지려면 꼭 필요한 단계다.”
여기에 “흥미를 일으킬 정도로 거창하면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메시지”가 추가된다면, 집단행동은 바야흐로 꽃을 피우게 된다. 서키는 이를 두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이론가 에릭 레이몬드의 말을 따 ‘그럴듯한 약속’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럴듯한 약속이 없다면 세상 어떤 기술도 그저 평범한 기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굳이 서키가 책에서 언급한 사례를 들춰낼 필요는 없겠다. 2008년 7월4일 현재, 우리는 최신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모여든 대중의 집단행동을 벌써 60여 일째 목도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의 부당함은 지난 4월18일 새 수입위생조건에 한-미 양국이 합의한 직후부터 ‘모두’가 알게 됐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협상의 부당함을 ‘모두가 알고 있음’을 다음 아고라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5월2일 첫 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리면서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 ‘협상 무효, 고시 철회’의 함성은 촛불로 하나가 된 대중들에게 실현 가능한 ‘그럴듯한 약속’으로 들렸을 게다. 누가 ‘배후’를 말하는가? 서키는 이렇게 경고한다.
“시작되면 멈추기 어렵다”
“집단행동은 개인행동과는 다르다.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시작되면 멈추기는 더 어렵다. …새로운 사회적 도구는 흩어져 존재하는 그룹을 서로 연결하고, 커뮤니케이션은 빨라지고 있다. 많아지면 달라지듯, 빨라져도 달라진다. 또한 그룹 내부의 향상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질적으로 다른 그룹으로 변모시키며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에너지를 촉발한다. 도처에서 집단행동이 분출하고 있으며, 속도는 빨라지고, 파장은 넓고 깊으며,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을 위협하는 시민 군단이 어딘가에서 행동을 도모하고 있으며, 신종 소비자 군단은 기업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웰 컴 투 브레이브 뉴미디어 월드.’ 멋진 뉴미디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부디 소통 가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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