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QSA는 미 축산업계가 원했던 것

등록 2008-07-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것이 정말 ‘엄청난 성과’인가… 추가 협의 끝난 다음날 축산업자들이 미 정부에 공식서한으로 요청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6월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가 결국 이뤄졌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추가 협의를 끝내고 돌아온 날(21일)로부터 채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추가 협의는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한-미 양국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협의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등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는 김종훈 본부장은 다시 한 번 ‘통상 영웅’으로 부각됐다. 등은 외교 소식통의 말이라며 “협의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김 본부장의 영웅적 면모를 더욱 강조했다.

검증도 없이 박수부터

정부와 한나라당의 평가도 칭찬 일색이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6월21일 “한-미 간 쇠고기 협상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된다”고 평가했다. 김종훈 본부장이 직접 참석한 23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아주 잘하셨어요” “수고했다” 등 김 본부장을 향한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아직 추가 협의 내용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진 것도 아닌데, 우리끼리 박수치고 그러는 것은 좀 심하지 않느냐”라는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일부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반응, 그리고 등만 본다면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왔어야 한다. 그는 고시 하루 전인 25일에야 미국에서 가져온 ‘보따리’를 모두 풀어놓았다.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미국 정부는 미국 축산기업과 한국 수입업자의 요청에 따라 품질시스템평가(QSA)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 다음으로 한국 정부의 도축장 현지 점검 권한을 강조한다는 내용이 있다. 검역 과정에서 2회 이상 식품안전 위해요소가 발견될 경우 한국 정부는 해당 작업장의 작업 중단을 미국 쪽에 요구할 수 있고, 우리 쪽 요구가 오는 대로 미국은 수출 작업 중단 조처를 즉각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과 관계가 없지만 국내의 우려를 고려해 뇌와 눈, 척수와 머리뼈 등 4개 부위에 대해 수입을 차단한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김종훈 본부장이 가져온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성과는 QSA다. 소의 뇌와 눈, 척수를 즐겨 먹는 한국인이 출현하기 전까지, 협상의 세 번째 결과물이 쟁점이 될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 참고로 척수란 등뼈 속 신경다발을 일컫는다. 오히려 광우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면서 국내 수요도 많은 내장과 선진회수육(AMR) 등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 도축장 점검 권한을 갖는다는 것도, 손상된 우리의 검역주권을 되찾아온 것으로 평가받기엔 미흡하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이후 우리나라는 모든 수출국의 육류 작업장에 대해 승인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4월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 미국의 수출용 쇠고기 작업장의 승인권과 취소권 모두가 미국 정부로 넘어갔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유일한 성과라는 QSA의 정체다. 정부는 ‘추가 협의 내용’을 공개한 이튿날 전격적으로 장관 고시를 강행했다. 국민에게 추가 협의 내용을 충분히 판단해볼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부는 할 만큼 했으니까 믿어달라”며 밀어붙인 것이다. 정부가 고시를 서두른 이유는 QS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QSA를 이끌어 냄으로써 30개월 이상의 미국 쇠고기 수출을 원천적으로 막았다고 자랑했지만, 사실 QSA는 오히려 미국 축산업자들이 미국 정부에 요구해왔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주요 수출국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한국과 일본 소비자를 위해 QSA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미국 축산업계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다시 말해서 김종훈 본부장이 슈워브 대표의 울음을 터뜨리면서, 심지어 협의 도중 돌아오겠다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면서까지 얻어온 ‘성과물’로 보기에는 대단히 미흡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QSA를 누가 먼저 요구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김 본부장은 귀국 직후인 21일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EV(수출증명)를 요구하지 않았다. EV는 수출 제품에 대한 것이다. QSA는 내수용 품질 관리를 그대로 적용한다.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의 건강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ISO9001에서 쇠고기의 안정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QSA는 구체성 있고 믿을 만한 것이며 수출용과 국내용을 포함한다. 미국은 EV를 20개국과 시행하고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있으며 EV를 QSA로 전환하는 중이다.”

QSA, 까다로운 수출증명 막기 위해

EV, 즉 수출증명 프로그램이란 미국 내 판매 조건과 월령이나 부위가 다른 수입 조건을 가진 나라에 수출되는 쇠고기에 대해 해당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확인하고 수출 검역증에 표시하는 제도다. 축산업체가 자발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미국 정부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 인증하는 QSA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강력한 제도다.

김 본부장의 말만 본다면 그는 애초부터 미국 쪽에 EV 대신 QSA를 요구한 것으로 들린다. 만약 QSA라는 카드가 미국이 내주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김 본부장이 먼저 이를 요구하고 협상력을 발휘해 얻어낸 것이라면,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볼 수는 있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미국 축산업체를 대표하는 이익단체들이 에드워드 샤퍼 미 농무부 장관과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보낸 공식 서한을 보면, 오히려 이들이 미국 정부에 QSA를 요구한 것으로 나온다. 한-미 쇠고기 추가 협의가 끝난 바로 다음날인 20일 오전(미국 시각), 필립 셍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 대표와 패트릭 보일 미국식육협회(AMI) 회장, 그리고 배리 카펜터 전미육류협회(NMA) 회장 등은 미국 정부에 “우리는 4월18일 한-미 양국이 서명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효력이 발생되는 것과 동시에, 미국 정부가 ‘월령 구분 QSA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요청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즉, 한국이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실시하면, 미국 정부도 QSA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미국 축산업자들이 스스로 요구한 것이다.

이들 축산단체는 여기에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러한 염려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로 수출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이런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한국 시장이 다시 전면 개방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될 조치라는 사실이다. 이 역시 미국 축산단체가 밝힌 내용이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제의 서한을 보면 QSA란 한국 시장을 더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미국 축산업체의 ‘판촉 전략’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며 “김종훈 본부장이 미국에서 대단한 것을 가져온 것처럼 뻥튀기를 했지만 QSA는 사실 미국 축산업체들 스스로가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 때문에 슈워브가 울음을 터뜨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정부도 샤퍼 장관과 슈워브 대표의 명의로 우리 쪽 김종훈 본부장과 정운천 농림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냈다. 미국 쪽은 “미국 수출업계와 한국 수입업계의 자율결의를 지원하기 위해 미 농무부는 QSA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공개한 이 서한에는 날짜가 명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축산업체가 미 정부에 보낸 서한과, 미 정부가 우리 쪽에 보낸 서한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 정부 쪽 서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우리는 한국 정부가 관보에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을 게재한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나와 있다. 논리적 상관관계를 따지면 당연히 필립 셍 미국육류수출협회 대표 등이 샤퍼와 슈워브에게 서한을 보냈고, 미국 정부가 이를 다시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정부의 관보 게재는 26일에 이뤄졌다. 정부가 추가 협의 결과를 타결 직후 공개하지 않고 6월25일이 돼서야 공개한 점도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결국 김종훈 본부장이 슈워브 대표의 울음을 터뜨리며 획득한 ‘영웅적 성과물’이라는 것은 고작 미국 축산업자들이 미국 정부에 요구한 내용을 그대로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김 본부장이 “처음부터 요구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밝힌 EV에 대한 미 육우업계의 반응도 눈여겨 봐야 한다. 지난 2월 초 미 네바다주에서 열린 ‘2008년 육우업계 연차 총회 및 박람회’의 ‘육우업자 실무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보자. 주최 쪽이 밝힌 올해 실무교육의 주제는 △마케팅 △생산 △자원관리 등 3가지였다. 눈길을 끄는 건 행사 첫날 오전 ‘마케팅’ 분과에서 미국 축산기업 해리스 랜치의 마이클 스미스가 내놓은 QSA 관련 발제 자료다. 이들은 발제에서 ‘수출시장 접근성’을 강조하며, EV는 미 육우업계가 직면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불렀다. 광우병 발병 이후 바뀐 시장환경 탓에 싫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상황 인식인 게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출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구적으로 상황이 변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캐나다를 제외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수입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미 농무부가 주관하는 EV를 요구하고 있다. …EV와 관련해 가장 큰 골칫거리는 미 농무부와 무역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각 수입국이 자기 나라에 맞는 독특한 생산 요구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각 수입국은 자국에 앞서 협상을 벌인 나라들의 생산 요구 조건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이 발제문이 나온 지 두 달여 만인 4월18일 한국 정부는 미국과 쇠고기 수입위생검역조건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미 육우업계가 ‘우려’하던 EV 도입에 대해선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미 축산기업 결의를 우리가 받은 것”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QSA는 한-미 양국이 밀고 당긴 협상의 결과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안한 것을 김종훈 본부장이 그대로 받아온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는 QSA를 통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데, 금지가 아니라 미국 축산기업 스스로 한시적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출하겠다고 결의한 것을 우리가 인정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