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또는 중소기업의 컨소시엄 인수 방식 유력… “앞으로 보혁갈등의 장 될 것” 민주당도 대책 고심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MBC를 좌시하지 않겠다. 우리가 집권하면 민영화하겠다.”
지난해 11월23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문화방송 방송연설 녹화에 동행한 한 측근은 문화방송의 한 간부에게 이렇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고 한다. 그날 오전 문화방송 라디오 이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내보낸 것에 대한 항의이자, 문화방송의 앞날에 대한 경고였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연성화 될 것
12월19일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승리했고, 올해 4월9일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대선 승리일로부터 정확히 6개월이 지난 6월18일, 한나라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워크숍에서 앞으로의 언론정책 과제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대선 때의 ‘예고’를 현실화하기 위한 절차 개시를 선언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문화방송을 포함한 공중파 방송의 민영화를 준비하고 있을까.
보고서 내용 중에는 △신문의 방송사 소유 허용(신문·방송 겸영) △국가 기간방송에 대한 법률안 통과(국가기간방송법) △신문법 및 언론중재법 개정 등이 제일 눈에 띄었다. 공중파, 특히 문화방송의 민영화는 국가기간방송법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작업은 정병국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이 이명박 시대의 언론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다. 그는 17대 국회부터 한나라당의 언론정책을 꾸준히 마련해왔다.
정 의원은 6월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08 디지털케이블TV 쇼’에서 “연내에 신문·방송 겸영 허용과 신문법 정비 등 국내 미디어 구도 개편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영방송은 더 공영방송답게, 민영방송은 더 민영방송답게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균형 발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 것”이라며 “공영방송을 규율할 국가기간방송법의 적용 대상은 한국방송 1·2TV, 교육방송, KTV, 아리랑방송이며 문화방송이 이 법의 규율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은 자율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한국방송의 2TV는 민영화에서 제외된다. 한나라당에서도 국민의 수신료로 성장해온 한국방송을 민영화하기는 힘들다는 내부 판단을 세워둔 상태다.
민영화의 남은 선택지는 문화방송이다. 문화방송은 어떻게 선택을 하라는 것일까. 한나라당 관계자는 “문화방송은 사적 소유와 공적 소유가 뒤섞여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이 뒤죽박죽된 구조”라며 “문화방송이 광고를 없애고 수신료만으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을 할지, 아니면 국민주 방식 등으로 소유구조를 바꿔 상업방송의 길을 갈지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화방송은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분의 70%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실질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정수장학회가 나머지 30%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방송에 이어 문화방송까지 수신료를 받겠다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안이다. 결국 두 갈래의 선택에 놓이게 되면 문화방송은 민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형식은 “스스로 선택하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민영화 이외의 출구는 막아버리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왜 문화방송의 민영화를 고집하고 있을까. 한나라당에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붙었던 효선·미순양 추모 촛불집회와 2004년의 탄핵 역풍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당시 〈PD수첩〉과 , 등 문화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은 한나라당의 눈엣가시였다. 민영화된 이후에는 시장 논리에 충실하게 될 수밖에 없고,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은 연성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정권의 개입도 공영 체제일 때보다 훨씬 용이하게 된다.
물론 문화방송 민영화가 쉽지는 않다. 우선 덩치가 크다. 문화방송 사장 출신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문화방송의 자산가치를 따지면 최소한 30조원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는 국민들에게 주식 청약을 받아 지분을 매각하는 국민주 방식이나, 4대 재벌을 제외한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들의 컨소시엄이 문화방송을 인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우선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살펴보자. 과거 정부는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 포항제철과 한국전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민주 방식으로 민영화했다. 그런데 문화방송의 경우는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수장학회가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 몫의 지분 70%만 국민주 방식으로 개미(소액주주)들에게 나눠주면, 박근혜 전 대표가 곧바로 문화방송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를 피하려면 정수장학회 지분을 강제로 인수해야 하는데,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따져봤을 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른바 조·중·동 등 거대 보수신문이 문화방송 인수전에 참여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조·중·동이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중 한 곳이 문화방송까지 인수하게 되면 신문과 방송을 독과점하는 구도가 된다”며 “이런 강력한 언론사의 탄생은 한나라당으로서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조·중·동에 문화방송을 넘기는 것에는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국회 문광위원장 자리 두고 샅바싸움
남은 것은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의 컨소시엄 인수 방식이다. 기초작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정부는 최근 마련한 방송법 개정안을 통해 지상파 방송이나 보도·종합편성 채널 사업에 진출할 수 없는 기업의 자산규모를 3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 3조~10조원의 대기업은 모두 32곳이다. 신세계·LS·현대·CJ·현대건설·코오롱·효성·동양 등이 해당한다. 문화방송의 민영화가 결정되면, 이들은 아무 제한 없이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김유진 사무처장은 “문화방송의 민영화가 추진된다면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CJ”라며 “CJ는 공중파 방송만 제외한 모든 방송 영역을 소유하고 있는 복합미디어 기업”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전의 모태였던 삼성그룹을 통해 와도 연결되는 구조다.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공중파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돌파해야 한다. 민영화가 추진될 경우 문화방송 앞은 촛불로 가득 메워질 공산이 크다.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은 공중파 민영화 등의 언론정책이 앞으로 “보혁 갈등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런 상황을 통합민주당에서도 잘 알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현재 정세균·천정배·이미경·김재윤·최문순 의원 등이 ‘언론장악음모저지대책본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의 카드는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자리를 야당 몫으로 잡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상임위의 핵심인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두고 샅빠싸움 중인데, 법사위가 여당 몫으로 돌아가면 민주당은 문광위를 차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명박 시대에 ‘언론정책’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정책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위원장을 맡아 길목을 지키는 방법뿐이다.
최문순 의원은 “이명박 시대의 제일 중요한 과제는 공중파 방송의 공영성을 지키는 일”이라며 “민주당에서도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는 특별위원회나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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