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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 첫번째 특명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상정됐다가 자동폐기된 아동 보호 법안들…다시는 국회가 뒷북치는 사태 없어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뒷북 소리가 높다.

정부는 ‘혜진·예슬법’을 만들어 어린이 대상 성범죄자를 강력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혜진·예슬법의 핵심은 만 13살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하고 살해한 경우 법정 최고 형량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한다는 것이다. 성인 대상 성폭력보다 무거운 처벌을 한다는 의미다. 또한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자는 집행유예 대상에서 제외되고 원칙적으로 가석방도 불허한다.

무서운 사건이 터지면 강력한 대처가 나오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영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6년 서울 용산 어린이 강간 살해 사건 때도 지금의 혜진·예슬법처럼 강력한 처벌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스쿨존, 놀이터 등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지금보다 3배 이상 늘려 전국 1만3천여 곳에 CCTV를 달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이미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았으나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법안과 비슷한 내용이다. 당시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어린이복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해 7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의 학교에 4대씩 CCTV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이렇게 17대 국회에서 발의되고도 방치 끝에 자동 폐기된 어린이 관련 법안은 한둘이 아니다. 지역아동센터 등을 포함한 방과 후 활동에 대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역시나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17대 국회의 임기 마감과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어린이·청소년의 방과 후 활동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현재 여러 법에 흩어져 있어 주관하는 부처도 다르다. 아동복지법에 근거한 지역아동센터가 보건복지부 관할이라면, 각 학교의 방과 후 교실은 교육부에서 주관한다. 여기에 여성부 등이 관할하는 방과 후 활동도 따로 있었다. 이렇게 법률적 근거가 분산되고 총괄하는 부처가 부재한 상황은 방과 후 활동에 혼선을 빚고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을 비롯한 11명의 의원은 2006년 11월 ‘아동·청소년의 방과 후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초안한 최순영 의원실 이선화 보좌관은 “지원 대상인 아동은 같은데 법률은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해소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동·청소년의 방과 후 안전과 건강한 여가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입안된 법안은 국회 정무위에 상정됐다. 최순영 의원은 교육위 소속이었지만, 여러 부처에 관계된 법안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법안은 제대로 심의되지 않았다. 이선화 보좌관은 “정무위 소속 상당수 의원은 방과 후 법안이 왜 필요한지 인식조차 못했다”고 전했다.

앞서 2006년 3월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김현미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학령기 아동·청소년 보호와 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열린우리당 의원이 다수였던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아동 학대가 아동 대상 성범죄자를 낳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많지만, 아동학대방지법도 따로 없는 형편이다.

선거철을 맞아 ‘아이 지키기 공약’이 난무한다. 한나라당은 혜진·예슬법을 정부가 계획 중인 18대 정기국회 기간이 아니라 개원 국회로 앞당겨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통합민주당도 질세라 어린이 안전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은 18대 국회가 문을 열기에 앞서 17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에 했어야 하는 일이다. 다시는 이렇게 뒷북 치는 사태가 없어야 한다. 18대 국회의 첫 번째 특명은 어린이를 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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