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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창 물값은 과천의 3배인가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수도 사업이 지자체별로 쪼개져 요금 천차만별…자본은 시장을 또 어떻게 뒤흔들까

▣ 평창=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집 전화로 30분 동안 시내 통화를 했다. 누구는 300원의 요금을 내면 되지만 다른 누구는 1천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면? 1시간에 10kw의 전기를 사용했다. 이번에도 역시 누구는 300원의 요금을 내면 되지만 다른 누구는 1천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면?

물론 가정이다. 현재 전기요금과 통신요금은 동일한 사용량에 대한 요금 편차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이같은 가정은 수도요금에서만은 현실이 된다. 똑같이 1t의 물을 쓰더라도 경기도 과천시 주민들은 345원만 내면 되지만, 강원도 평창군 주민들은 1071원을 내야 한다. 무려 3배 이상의 가격 차이다. 왜 그럴까?

평창군, 생산원가 40%로 공급

전기와 통신은 전국 규모로 통합돼 운영되지만, 수도 사업은 전국 164개 지자체별로 잘게 쪼개져 운영된다. 각 지자체가 별도로 수도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지자체의 크기, 물 사정, 재정 여건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수돗물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은 수도 시설에 들어간 투자비와 그에 대한 이자, 감가상각비, 유지관리비, 시설을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인건비 등을 합쳐 산정된다. 그렇게 따졌을 때 강원도 평창군의 수돗물 생산원가는 t당 2624원이나 된다. 가장 비싼 영월(2894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왜 평창 사람들은 서울이나 과천 사람보다 비싼 돈을 내고 물을 마실까. 여러 이유들이 겹친다. 평창의 인구 밀도는 1㎢당 31명으로 매우 낮다. 가수 조용필의 연말 공연 입장객 수와 비슷한 4만4천여 명이 강원도 총면적의 8.6%에 해당하는 지역에 퍼져 산다. 마을은 골짜기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다. 아파트에서는 짧은 수도관으로 많은 집에 물을 공급할 수 있지만 평창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마을마다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수도관은 산 넘어 물 건너 흩어진 마을들을 하나로 이어야 한다.

정수장 역시 여러 개가 필요하다. 평창군에는 평창·미탄·대화·봉평·진부·월정·대관령 정수장 등 총 6개의 정수장이 있다. 서울·부산과 같은 6개고, 대구·광주보다 1개가 더 많다. 이는 고스란히 생산원가에 포함된다.

평창의 상수도 보급률은 67.7%다. 평창 군민의 27%는 마을 상수도와 소규모 급수 시설을 이용한다. 5%는 수도관이 닿지 않아 여전히 지하수와 우물 등을 사용한다. 평창군 상하수도사업소는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는 지역에 소규모 정수장과 소독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관리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한다. 수도사업소는 3개월에 한 번씩 수질 검사, 하자 보수 등을 맡는다. 주민들에게 따로 수도요금을 받지 않는다. 시설운영비는 주민들이 자치조직을 만들어 갹출해 충당한다. 이운배 평창군 상하수도사업소 소장은 “마을 상수도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평창은 산간지대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수돗물을 보내려면 별도의 가압시설이 필요하다. 적정 수압에 이르지 않으면 물은 높은 곳에 흩어진 마을에 닿지 못한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물이 내려올 때는 반대로 수압을 낮추는 감압시설이 필요하다. 물이 저지대로 내려오는 동안 수압이 높아져 관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압과 감압 시설은 전기로 작동된다. 전기를 쓴다는 것은 돈이 든다는 뜻이다. 이런 부가시설의 설치·유지비가 추가되면서 생산원가는 폭등한다.

그런데도 평창군은 주민들에게 t당 생산원가를 다 받지 못한다. t당 2624원을 들여 물을 만든 뒤 40% 수준인 1071원에 판다. 지자체의 상수도 사업은 일반회계에서 독립된 특별회계로 운영된다. 군은 1t을 팔 때마다 1500원씩 적자를 보고, 그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일반회계에 손을 댄다. 최영훈 평창군 상하수도사업소 계장은 “원가대로 받으면 주민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수도요금이 높기로 소문난 강원도 정선·영월·인제·홍천·태백이 모두 같은 상황이다.

수도요금 인상 압박하는 중앙정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중앙정부의 태도다. 중앙정부는 이 지자체들을 향해 지방교부세를 무기로 수도요금 현실화를 압박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수도요금을 생산원가만큼 올리지 않은 평창군에 1억5천만원의 지방교부세를 삭감했다. 주민 진옥자(45)씨는 “도시에 살지 않는 것이 죄냐”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수돗물이 가장 싼 과천시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물을 사 주민들에게 공급한다. 과천시는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팔당댐에서 원수 1t을 213원을 주고 사들인다. 그렇게 사들인 원수를 자체 정수시설을 통해 수돗물로 만들어 내보낸다. 6만9천여 명이 살고 있는 과천시의 상수도 보급률은 98.2%다.

그러나 과천시의 수돗물 생산원가가 그렇게 싼 것은 아니다. 서울의 경우엔 한강에서 수돗물을 취수해 비용이 들지 않지만, 과천은 수자원공사에다 1t당 213원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지 관리비 등이 더해져 t당 생산원가는 1098원이다. 전국 평균가인 704원에 견주면 300원이나 비싸다. 그렇지만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가격은 t당 345.5원에 불과하다. 과천 경마장에서 거둬들이는 마권세로 높은 재정자립도를 유지하는 덕분이다. 노태수 과천 상수도사업소 상수행정팀장은 “과천은 유동인구가 많아 물값이 비싸지면 식당과 음식점이 타격을 받는다”며 “주민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칭 ‘물산업육성법’을 만들어 수돗물에 경쟁 원리를 도입할 계획이다. 능력이 없는 지방의 중소 규모 수도사업소들은 통폐합되고, 그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공기업, 민간자본, 외국자본들의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물산업의 구조개편이 끝난 뒤 평창 사람들과 과천 사람들은 t당 얼마의 물을 마시게 될까? t당 1500원씩 손해를 봐가며 산과 골짝 너머로 수돗물을 공급하던 평창군의 고집을 꺾어 한국 사회가 이루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일 요금 적용할 수 없나

국가기관 설립하면 상수도사업본부·사업소·한국수자원공사 등의 반대 거셀 듯

우리나라 상수도 가격은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다. 광역시 단위로 보더라도 서울시는 1t당 537원인데 견줘, 강원도는 그 두 배 정도인 1055원이다. 상수도 보급률도 마찬가지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보급률은 평균 99.1%인 데 견줘 면 단위 보급률은 40.7%다.
전기나 통신처럼 단일 요금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상하수도청과 같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국가기관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상수도를 지자체의 고유 업무로 파악해왔던 우리나라 수도 관련 법률 체계에 대손질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수돗물을 공급해왔던 대도시 상수도사업본부나 상수도사업소, 광역상수도 운영권을 쥐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수공) 등의 반대는 불보듯 뻔하다.
도시민들이 상수도 요금 추가 부담을 반가워할지도 미지수다. 전국 단일요금을 적용하려면, 그동안 싼 물을 마셔왔던 대도시 주민들의 요금 부담은 높아지고, 농·어촌 주민들의 부담은 낮아진다. 전국의 광역상수도를 통합해 운영 관리하는 수공은 ‘정수’ 기준으로 t당 394원의 전국 단일요금을 유지하고 있다. 신병호 수공 수도사업처 차장은 “광역 상수도의 경우 농어촌 지역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면서 전국 단일요금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전국적으로 노후관을 교체하는 데 5~7년 동안 10조원의 돈이 들고 상수도 보급률을 높이는 데도 만만찮은 예산이 들어간다. 송유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하수도 요금을 일정 부분 올려 상하수도의 건설·관리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20년 만에 받아본 수돗물

겨우 시민의 권리를 찾은 강남 비닐하우스촌, 기업이 물줄기를 쥔다면?

서울 서초구 양재2동 212번지. 비닐과 판자를 얼기설기 엮은 비닐하우스촌을 구청이 설치한 철벽이 단단하게 품고 있다.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촌에는 잔디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지만, 주민들은 이 거친 땅을 ‘잔디마을’이라고 부른다.
이능자(69)씨 집 안 곳곳은 물이 꽉 들어찬 큰 통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씨는 세탁기를 돌릴 때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버리지 않고 받아둔다. 걸레를 빨거나 화장실 변기에 물을 채울 때 사용하기 위해서다. 수도요금 한두 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귀하게 얻은 수돗물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수돗물이 처음 들어온 날은 2004년 8월4일이다. 애초 이 터에 주민들이 살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강남 지역을 개발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곳곳의 자투리 땅을 ‘체비지’로 남겨두었다. 점차사람이 살지 않는 빈 터에 도시 빈민들이 몰려들었다. 서울시는 “주민들이 불법으로 땅을 점유하고 있다”며 물과 전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전기는 돈을 주고 이웃에서 끌어올 수 있었지만, 물은 그렇지 못했다. 약수물을 받아오거나, 근처 공원으로 가 수돗물을 길어와 식수로 써야 했다. 주민들은 이런 물을 ‘도둑 수돗물’이라 불렀다. 몸의 불편함보다 이웃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더욱 고역이었다.



1991년 마을에 지하수를 팠다. 수질은 따져볼 생각도 못했다. 이웃 눈치 보지 않고 물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주민 대부분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잔디마을 주변에는 쓰레기장과 고물상이 들어서 있다. 여름에 비가 오면 화장실에서 넘친 물과 쓰레기장, 고물상에서 흘러나온 물이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지하수는 이렇게 오염돼갔다. 이갑순(75)씨는 “지하수를 받아놓고 서너 시간만 지나면 파란 이끼가 꼈다”고 회상했다.
수돗물 공급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2004년 4월 와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가 잔디마을과 같은 강남 비닐하우스촌 7곳의 지하수 수질 검사를 벌인 뒤다. 주민들이 마시던 물은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막는 질산성 질소에 오염돼 있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불법 비닐하우스촌에 물을 넣어주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깨끗한 상수도를 공급받는 것은 시민의 권리라는 주장을 당해낼 순 없었다. 주민들은 수돗물이 들어오던 날 고사상에 돼지 머리와 함께 수돗물을 올렸다.
“국가도 20년이 지나서 넣어줬습니다. 기업이 물줄기를 쥐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물을 쓸 수나 있겠습니까. 죽으라는 소리죠.” 잔디마을 김경선(62)씨의 말이다. 박순석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선교사는 “물은 생명인데,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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