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담론을 장악한 이명박의 독주, 민심 밑바닥엔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돈벌이’의 욕망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지난 11월26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은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사건, 아들 위장취업 등 숱한 의혹에도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국민 노망’ 발언이다.
이명박 후보는 시종일관 40% 안팎의 지지율을 달리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 민주개혁 세력의 무능 등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후보의 견고한 지지기반이 특정한 지역·계층·연령대를 초월하고 있고, 특히 ‘수도권 40대’가 핵심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지지율의 실체’를 둘러싼 관심이 높다. 수도권 40대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알고 한국의 장래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흔히 평가받기 때문이다.
대다수 여론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형성하는 최대 변수가 ‘경제’라고 말한다. 경제 쟁점을 둘러싸고 후보들 간에 치고받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견고한 지지율의 실체는 경제라는 얘기다. 이 후보 쪽은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일찌감치 경제 담론을 장악한 데 이어 최근 ‘서민의 함박웃음, 국민성공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대세를 굳히고 있다. 곽창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부실장은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경제성장률 1%포인트 추가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 고통 겪나”
물론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르는 변수는 경제가 아니라 ‘집권세력 교체 요구’라는 주장도 있다.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관계자는 “민심은 꼭 이명박이 아니라도 누가 됐든 집권세력을 바꿔야 한다는 욕구가 큰 국면이다”고 말했다. 2004년 4월 총선 당시 한국갤럽의 ‘국민 정치의식 조사’를 보면 20·30대의 경우 민주노동당 지지도가 한나라당을 제칠 정도로 국민의 ‘정치 성향’은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유권자의 의식이 완전히 바뀐 것일까? 일각에서는 “국민이, 과거에 고생한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어떤 부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김대중·노무현에게 두 번 표를 찍어줬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으로 공동체 시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한 것이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사회 공동체보다는 개인적인 욕망과 이해에 따라 투표 행위를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DJP 지역연합으로 탄생했고, 노무현 정부는 세대 간 대결을 거쳐 탄생한 것이지 국민이 민주화 세력에 대한 어떤 책임의식 때문에 표를 찍어준 건 아니다”라며 “이런 논리는 ‘민주화는 다 지난 일이다. 부담 없이 투표하라’는 보수언론의 꼬드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노무현에 대한 등돌림만으로는 이 후보의 압도적 지지율을 설명하기 어렵다. 문국현이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노무현 대안’으로 나왔지만 전혀 힘을 못 쓰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쪽에서 외쳐온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도 경제 담론과 섞이면서 유권자들에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김종엽 교수는 “과연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 사람들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가”라며 “김대중 정부 때 경기부양을 통해 어느 정도 먹고살았고, 노무현 정부 때도 잠재성장률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이 후보 쪽은 ‘잃어버린 10년’이란 교묘한 말을 동원해 지난 정부 동안 경제가 엉망이었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와, 이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근거가 경제(또는 ‘국민성공 시대’)라고 할 때 개별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표방하는 경제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과연 이 후보의 경제 비전인 ‘대한민국 747’(연 7% 성장·소득 4만 달러·세계 7대 부국)에 대한 지지일까. 근대화가 절박했던 60·70년대라면 몰라도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이른 한국에서 이런 거시경제 성장 구호에 공감하는, 그것도 합리적인(?) 수도권 40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 법하다. 소시민 대부분은 관심조차 없을 가능성도 높다.
자기 이익 극대화만 생각
이 때문에 오히려 이 후보의 ‘경제’에 표를 던지는 개인들의 행동 밑바닥에는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돈벌이’가 깔려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후보한테 열광하는 ‘경제’의 실체는 ‘더 많이 성장해 다 함께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저마다 투자해놓은 아파트값이 더 오르고 주가도 올라 펀드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심리가 ‘국민성공 시대’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의 본질이란 것인데, 서민들까지 포함해 너나 할 것 없이 가계자산을 온통 주택이며 펀드에 넣어두고 있는 현실은 이런 해석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곽창규 한나라당 부실장은 “(이 후보가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은 최소한 물가상승률 정도는 오르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물론 한나라당이 집권해 주가를 띄우겠다는 건 아니지만 친기업적·친시장적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히 기업가치가 오르고 주가와 펀드 수익률도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통적 구호인 ‘안정’을 버리고 대신 ‘성공시대’ 등 변화를 앞세워 국민한테 어필하는 측면은 있다. 한나라당 쪽은 “이 후보의 성공신화가 보여주듯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게 국민성공 시대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승자 독식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수성가형 성공신화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여러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끄떡없는 이유를 해명하려면 미시적 관점에서 개별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해영 교수는 “이 후보에 대한 견고하고 높은 지지율은 정치·사회적 행동을 할 때 자기 이익의 극대화만 생각하는 ‘합리적 원숭이들’에 빗댈 수 있다. 나중에 그 기대가 정말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어떤 비합리적인 충동과 열망이 (높은 지지율에) 농축돼 있을 것”이라며 “이 후보의 부패 의혹에 대해 ‘마, 개안타’(괜찮다)는 게 영남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의 뿌리에는 개혁 피로감도 아니고, 이 후보가 땅값 하나만큼은 올려놓을 것이라는, 즉 내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치사한, 숨겨진 욕망구조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은 속내를 다 알면서 온 국민이 공모하는 음침한 선거이고, 결국 이기적인 원숭이의 놀음판”이라고 규정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가 만들어놓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재산증식 욕구가 이 후보에 대한 지지표로 투영되고 있으며, 각자 이명박이란 성공신화로 자신들의 욕망을 포장하고 있을 뿐이란 얘기다.
이명박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이런 점에서 유권자들은 얄밉도록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이 후보를 둘러싼 부패 의혹들이 불거졌지만, 사람들이 ‘솔직히 지배층이고 어디고 한국 사회 곳곳이 부패해 있다는 건 다 아는데, 의혹이 사실이라해도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표심 뒤편에 모종의 ‘도덕성 봐주기’ 공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의 ‘경제’를 보면 노동이나 서민은 뒤로 밀려나고 온통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깎아주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친기업 환경을 만들어주면 기업이 투자를 늘려 경제가 성장하고, 그래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과 소비가 증가해 자영업자도 먹고살기 좋아진다는 논리다. 곽창규 한나라당 선대위 부실장은 “우리는 분배, 복지보다는 시장경쟁 탈락자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고 비정규직 처우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급증과 일자리 감소 등 경제적 불안과 양극화 심화를 초래한 주체는 바로 기업과 고삐 풀린 시장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또 경제가 7% 성장한다고해서 시장이 건전해지고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까?
이 후보를 지지하는 쪽은 “물론 우리도 이 후보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보장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내 집값은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기대조차 실현되기 어려운 환상은 아닐까? 한나라당 쪽은 “‘747’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고용 창출이든 자영업자 소득 증가든 7% 성장이 기본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잠재성장률이 4%대인 경제인데 7% 성장을 약속하고, 규제를 풀면 성장률이 1%포인트 오르고, 법 지배를 확립하면 또 1%포인트 올라간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 후보 본인의 성공신화와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 등이 맞물려 ‘그래도 저 사람은 뭔가 할 것 같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이 후보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도 아니고,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해 영세상인들이 먹고살게 해줄 사람도 아니다. 대중이 선택해주더라도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 후보가 7% 성장 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땅 파는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돈이 돌게 하는 것일 텐데 한나라당은 지금 식은땀이 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높은 가장 큰 이유가 ‘먹고살게 해줄 후보’라면, 나중에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깨끗한 척했던 사람이 부패가 터지면 곧장 위기에 몰리듯, 단기간에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불만이 터지면서 의외로 빨리 주저앉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 스스로 타협하고 있는 상황?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만 몰두하는 경제 인간을 가리켜 ‘합리적인 바보’(rational fools)라고 말한 바 있다. 김종엽 교수는 “사람들의 투표 행위를 비합리적이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주의하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듯해도 사실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기 마련이다”라며 “특히 선거처럼 찍어야 할 후보군이 주어져 있고 모든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중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환 교수는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기득권층의 저항을 뚫고 분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하면, 비록 마땅치 않고 또 헛된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차라리 이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한테 유리할 것이라고 유권자들 스스로 타협하고 있는 상황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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