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구하기’에 뛰어든 보수언론들… 총대를 메고 가장 노골적으로 나선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김용철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현 전략기획실) 법무실장의 양심 고백으로 시작된 이른바 ‘삼성 사태’를 뒤쫓아온 우리 언론들의 지난 한 달을 둘러보며 받은 느낌은 ‘살기’(殺氣)다. 신문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이해득실 셈법에 따라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네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과 그에 따른 삼성의 대응, 그리고 “떡값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추가 고백을 지나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정리되고 있는 이번 사태를 보도하며 저마다 작은 전쟁을 치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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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폭로 뒤 ‘공세’로 전환
언론들의 보도 태도에서 살기를 느낀 것은 이번 ‘삼성 사태’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를 유지해온 가치와 이를 상징하는 거대 권력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경제권력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은 점점 축소돼왔고,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그 힘의 관계는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이건희 공화국’ 또는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에 어색함을 느끼는 대한민국 사람은 이제 없다. 한국의 주류 사회는 ‘대한민국은 곧 삼성’이라는 명제에 공감하며, 삼성이 잘되는 길이 곧 대한민국이 잘되는 길이라는 신념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우편향된 한국 사회의 대다수 언론들은 ‘삼성 사태’에 침묵하거나,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평가절하하거나, 우리에게 삼성이 갖는 위치가 얼마나 큰지 강조하는 기사들로 지면을 도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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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파문’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 태도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10월29일 사제단의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11월5일 김 변호사가 직접 등장한 두 번째 기자회견까지다. 그 시간 동안 보수언론이 보인 모습은 ‘침묵’이었다.
사제단의 첫 기자회견으로 삼성그룹 구조본 법무팀장의 계좌에 적어도 50억원이 넘는 삼성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사태를 관망한다. 1면부터 6면까지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비중있게 소개한 와 석간이기 때문에 분위기 파악을 못한 가 두 개의 기사를 써낸 것을 제외하고, 다른 조간들은 다음날(10월30일)치에서 기자회견 내용을 2~3단짜리 단신 기사 한 꼭지로 처리하고 만다. 그나마 김 변호사의 고백을 2면에 전진 배치한 것은 정도였고, 나머지는 사회 2~3면에 2단 처리했다. 가 10월31일치 사설에서 “삼성은 (중략) 이번 사태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 변호사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변호사는 11월5일 2차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제기한 의혹들을 밝혀줄 검찰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다. 이른바 ‘떡검’(떡값 검사) 논란이다. 사태가 점차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신문들은 ‘관망’에서 ‘공세’로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선다. 이 10월29일부터 11월6일까지 전국 일간지·경제지 18곳의 ‘삼성 사태’ 기사 게재 건수를 분석한 결과, 10월31일 이후 김 변호사의 폭로 관련 기사는 16건밖에 없었지만, 2차 기자회견이 열린 11월5일에는 28건, 그 다음날인 6일에는 67건으로 폭증하게 된다.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였다. 이 신문이 꺼내든 ‘전가의 보도’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와 “동기의 순수성이 의심된다”였다. 는 11월6일치 8면의 ‘김용철 변호사, 또 삼성 공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김 변호사는) 이날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구체적인 입증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고, 이(재용) 전무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겠다는 당초의 발표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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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의도가 불순한 정신이상자?
이어진 것은 인간 김용철에 대한 흠집내기였다. 는 다음날인 11월7일치 사설에서 “김씨는 검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삼성에 들어가 1997년부터 7년 동안 102억원을 급여 등으로 받았다. (중략) 갑자기 후한 대접을 해준 기업을 공격하고 나서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은 큰집 가 “김 변호사의 개인적 약점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는 논지의 정중한 사설을 두 번(11월6, 17일)이나 실었음에도, 12월호에 실린 현장추적 기사를 통해 김 변호사의 양평 컨테이너 ‘별장’에서 그의 검사 시절 후배들, 그가 몸담았던 법무법인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그의 ‘개인사’와 ‘가정사’를 두루 헤집는다. “떳떳하지 않다는 100억원부터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1월14일치 칼럼), “정의구현의 명분을 띠어도 타락한 천사의 날갯짓에 불과할 따름”( 11월13일치 칼럼), “인간으로서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낸다”( 11월13일치 칼럼), “조직으로부터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중략)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나쁘다”( 11월12일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칼럼) 등 김 변호사에 대한 인신 공격성 발언들은 일일이 글로 옮기기 힘들다.

그러나 독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는 김 변호사를 ‘미친놈’ 취급하려는 듯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를 등장시켜 “신정아씨 사례에서 보듯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진실로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꼰다.
하지만 사태는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지 못했다. 11월13일 정동영·권영길·문국현 등 대선 후보 3인이 ‘삼성 특검’을 발의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이는 마침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신문들은 본격적으로 ‘삼성 구하기’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가장 노골적인 흐름이 관찰된 곳은 다시 였다. 는 특검이 삼성에 부담을 주는 일이 진심으로 걱정됐는지 11월21일, 24일, 28일 세 차례에 걸쳐 ‘삼성 죽이기’라는 표현을 써 “삼성 수사와 특검은 삼성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수사가 돼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경제지들이 꺼내든 것은 삼성 경영에 대한 걱정이다. 는 11월14일치 1면에서 ‘삼성 경영 발목 잡히나’라고 걱정했고, 16일치 1면에서는 “납기 지장 없나요? 품질 괜챦죠?”라는 제목을 따 외국 바이어들의 문의가 쇄도해 삼성 직원들이 해명하는 데 진땀을 쏟고 있는 광경을 소개했다. 그날치 6면에 오태헌 경희사이버대 국제지역학부 교수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이러한 폭로전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진저리가 난다”고 지적한 칼럼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현재 삼성 수뇌부의 가장 솔직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의 분수령은 김 변호사가 그동안 축적해온 의혹들을 총정리해 발표한 11월26일의 4차 기자회견이었다. ‘충격’을 넘어 ‘엽기’에 가까운 삼성 그룹의 치부가 간결한 언어를 통해, 그것도 보수언론들이 오매불망 요구해오던 일부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공개됐다.
4차 폭로 뒤에도 “비자금은 정당방위”
보수언론들은 다시 깊은 침묵에 빠져든다. (21건), (15건), (10건) 등이 김 변호사의 폭로를 자세히 소개하는 동안 (4건), (3건), (2건) 등은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쓴다. 그날 ‘당사자’ 는 1면에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사고(社告)성 기사를 실었고(기사를 쓴 주체가 ‘중앙일보’다), 는 사설 ‘삼성 비자금 폭로, 진위 확인이 우선이다’에서 “삼성 역시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사회적 지탄과 함께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퇴로를 구축했다. 그런 와중에도 는 정규재 논설위원의 입을 빌려 ‘규제 천국, 비자금은 정당방위다’라는 ‘도발적인’ 논리를 동원해 삼성을 두둔하려 애쓴다.
보수언론이 경악하던 그날의 스타는 YTN이었다. YTN은 그날 오전 11시부터 방송되는 를 통해 김 변호사의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던 중 ‘중앙일보 위장 계열분리’ 부분에서 방송을 돌연 중단했다. 방송이 끊어진 뒤 바로 이어진 것은 삼성물산의 버즈 두바이 광고였다. YTN 쪽은 “단순한 방송사고”라고 해명했고, 사람들은 씁쓸하게 웃었다.
검찰의 수사 개시로 언론들의 공방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분위기지만 삼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신문들의 진검승부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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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철 “명예훼손 고소할 것” |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주도한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11월7일치 과의 인터뷰에서 “언론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며 “신정아에 미친 듯 달려들던 언론이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언론들이 김 변호사의 폭로에 입을 닫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사생활을 들춰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11월26일 사제단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허위 사실로 저의 명예를 훼손한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문제를 삼은 대목은 11월15일 기사로 촉발된 ‘퇴폐 노래방’ 운영이다. 은 “김 변호사가 부천에서 노래방과 호프집을 운영해왔으며, 지난해 5월 노래방이 주류 판매 및 접대부 고용 등 퇴폐영업으로 적발돼 행정처분과 함께 사법처리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를 비롯해 인터넷판, 〈MBN〉 등이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를 돕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영희 변호사는 “노래방 건은 퇴폐영업은 아니고 캔맥주를 팔았다가 적발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김영희 변호사는 “조만간 자료 검토를 끝낸 뒤 소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은 12월호에서 ‘삼성에 칼 겨눈 변호사 김용철’이라는 제목의 24쪽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김 변호사의 사생활과 주변 지인들의 평가, 김 변호사의 전부인이 삼성에 협박용으로 보냈다는 편지 내용 등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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