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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운명은?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당장 닥친 건 검찰 소환 여부, 회장 취임 20년 만에 닥친 ‘신뢰의 위기’가 짓눌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1993년 6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포 때) 12월1일은 이 회장이 삼성 회장에 취임한 지 20돌인 날이었다.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에 휩싸여 있는 이 회장으로서는 이제 삼성그룹의 변화를 위한 모종의 또 다른 선언을 준비해야 할 상황에 온 것일까? 비자금 사건 와중이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취임 20돌 공식 행사와 기념식도 결국 취소했다.

두 번째 검찰 출두?

이 회장에게 당장 닥친 건 검찰 소환 여부다. 이 회장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한 적이 있다. 이번에 소환되면 두번째 검찰 출두가 된다. 1995년에는 정치자금 제공 사건이라서 다른 재벌기업 총수들과 함께 출두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그동안 삼성그룹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폭로된 총체적인 비리 의혹을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소환은 나중에 진행될 삼성 비리 의혹 특별검사 수사 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뒤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비록 1994년 승용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이건희의 삼성’은 2007년 브랜드 가치 169억달러로 세계 21위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삼성의 연간 매출액은 이 회장 취임 당시인 1987년과 비교할 때 17조원에서 이제 152조원으로 8배가 늘었고, 2700억원에 불과하던 세전이익은 14조2천억원으로 50배 이상 증가했다.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은 삼성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으로 평가받아왔다.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닮고 싶은 인물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휩쓸며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선지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리는 이 회장의 감춰진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된 책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지금 세간의 이목은 다시 이건희 회장에게 쏠려 있다. 삼성을 온통 뒤흔들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회장에 취임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리더십의 본질과 관련해 ‘은둔’이란 말이 함축하는 뜻도 ‘제왕의 숨겨진 카리스마’라기보다는 이젠 음습한 냄새를 풍기는 말로 바뀌고 있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뒤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안기부 X파일 사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 등 여러 위기를 겪었으나 지금처럼 심각한 불신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이 회장이 어떤 불명예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넘어 삼성그룹의 장래와 관련해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기업인으로서 이 회장이 거둔 성과가 훌륭한 경영 능력보다는 돈을 앞세운 ‘로비 능력’에 의한 것으로 국민들한테 인식될 경우 기업인 이건희의 영광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일궈온 ‘대표 기업’ 삼성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는 사태를 이 회장은 가장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책임의 산 앞에 서 있는 나는 절대 고독을 느꼈다.” 이건희 회장이 1995년 독일 일간지 에 신경영 추진과 관련해 밝혔던 소회다.

1988년 제2 창업 선언

이 회장은 1988년 삼성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도약을 외치며 ‘제2 창업’을 선언한 바 있다. 삼성은 내년에 창립 70돌을 맞아 본사를 강남으로 이전해 ‘강남 시대’를 맞게 된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중요 고비 때마다 ‘신경영’ ‘창조경영’ 등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변화를 역설해왔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선언만으로 사태를 수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 뒤 2주 만에 그룹 회장에 전격 취임한 당시 46살의 젊은 재벌총수 어깨에는 무거운 책임이 걸려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신뢰의 위기’에 봉착한 66살 삼성 재벌총수의 어깨를 또다시 최대의 시련이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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