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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명의신탁은 사실일까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건희의 지분이 홍석현 회장에게 넘어간 과정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삼성이 를 위장 계열분리했다”는 의혹을 김용철 변호사가 추가 폭로하면서 이건희 회장과 의 관계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 변호사는 “홍석현 회장의 명의로 돼 있는 주식이 사실상 이건희 회장 소유의 차명주식(명의신탁)”이라며 “1999년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김인주 전무의 지시로 ‘주주 명의자는 홍 회장으로 하되 홍 회장은 의결권이 없으며, 이건희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주식명의신탁계약서를 비밀리에 써줬다”고 말했다. 올해 9월 현재 의 대주주는 홍석현 회장으로, 보통주 95만6천 주(43.79%)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이 지분 중 이건희 회장의 차명주식이 상당수 섞여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보통주가 왜 갑자기 우선주가 됐나

가 삼성에서 계열분리된 과정부터 살펴보자. 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65년 창간했는데, 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씨가 창간 당시 부사장을 맡았다. 이건희 회장은 1967년에 홍씨의 딸인 홍라희씨와 결혼했고 홍석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처남·매부 사이다. 삼성은 1994년 12월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당시 를 계열분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삼성은 약속 이행을 미루다가 1998년 12월 주거래은행(당시 한빛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때 “와 (주)보광 계열사를 1999년 상반기 안에 계열에서 완전 분리하겠다”고 다시 선언했다. 그 뒤 불과 두 달 만인 1999년 2월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분리를 청구해 승인을 받았다.

이런 계열분리 과정에서 홍석현씨는 의 대주주 지위에 올라섰다. 홍 회장의 지분 변화를 보자. 1996년 10월 이전에 홍석현씨의 지분은 0.58%에 불과했다. 이건희 회장 지분이 26.4%로 가장 많았고, 제일제당이 2대 주주(19%)였다. 그런데 1996년 10월30일 는 30억원어치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 이때 이건희 회장과 주요 주주였던 제일제당 등은 CB 인수를 포기했고, 이 실권 CB를 홍씨가 집중 매입해 그해 11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60만 주의 보통주로 전환했다. 결국 홍 회장의 지분은 18.44%로 늘었다. 그 뒤 홍 사장은 다시 소액주주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지분을 21.5%로 더 늘렸다. 그런데 계열분리를 신청하려면 삼성 쪽이 갖고 있던 지분 35.2%(당시 이건희 회장 20.3%, 삼성전기·삼성물산·제일모직 등 14.9%)를 10% 이하로 낮춰야 했다.

시점은 이제 약 2년 뒤인 1999년 1월로 넘어간다. 이때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 20.3% 중 20%를 (주)보광에 무상으로 넘겼고, 보광은 홍진기씨를 추모하기 위해 당시 전격 설립된 유민문화재단(공익법인)에 이 지분을 출연했다. 삼성이 가진 나머지 지분, 즉 제일모직 등 삼성 계열사 3곳이 갖고 있던 14.9%는 이때 홍 회장이 직접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홍 회장은 의 최대 주주(지분 36%)로 등장했다. 과연 홍 회장은 당시 어디서 이 자금(약 330억원으로 추정)을 마련했을까? 눈여겨볼 대목은 1998년 1월21일 삼성그룹 지승림 기획홍보팀장이 계열분리와 관련해 한 발언이다. 지 팀장은 “삼성이 갖고 있는 지분 1%를 인수하는 데만 22억원이 든다. 홍 회장이 이 자금을 마련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홍 회장이 주식 매입대금을 지급한 것처럼 처리했지만, 실제로 홍 회장은 이 지분을 살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건희 회장의 주식을 홍 회장 앞으로 명의신탁했을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지분 15%도 사실상 이건희 회장의 개인 소유 지분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 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유민문화재단으로 넘어간 이건희 회장의 지분 20%(보통주 약 52만 주) 중 상당수가 우선주로 전환됐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계열분리 직전인 1999년 1월12일과 2월5일 두 차례에 걸쳐 약 52만 주 중 41만5천 주가 우선주로 바뀌었다. 보통주가 왜 갑자기 우선주(의결권은 없고, 대신 보통주에 비해 더 많은 배당을 주는 주식)로 전환됐을까? 통상적으로 볼 때, 매우 높은 배당금을 주지 않는 한 ‘의결권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보통주를 우선주로 전환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주식(주당 액면가 5천원)의 배당 추이를 보면, 1999년과 2001년에는 우선주에 대해서도 전혀 배당을 하지 않았다. 2000년 주당 300원, 2002년 100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50원씩 배당했을 뿐이다. 우선주의 배당 매력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제일제당, CB 인수 포기

그런데 의 등기부등본에는 1996년 말 당시 △보통주 보유 주주의 동의가 있는 경우 기존의 주식을 의결권 없는 우선주로 할 수 있다 △우선주에 대해 당해 사업연도의 이익에서 배당을 할 수 없는 경우 우선주에 의결권을 부여한다고 돼 있었다. 보통주를 우선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튼 것인데, 유민문화재단이 보유한 지분(옛 이건희 회장 지분)을 의결권 없는 우선주로 전환하면 홍석현씨의 (의결권 있는) 보통주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런데 2001년 3월에는 우선주 규정이 ‘보통주에 배당을 하지 않을 경우 우선주에도 배당을 아니할 수 있다’로 바뀌어 있다. 설령 이익이 발생했더라도 우선주에 배당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만든 것이다. 무배당 방식을 활용해 우선주도 의결권을 가질 수 있도록 강화한 것인데, 유사시에 우선주까지 동원해 의결권을 늘릴 어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홍 회장은 처음에는 이건희 회장과 주식명의신탁 이면계약서를 써주면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차츰 욕심이 생겨 의 실제 의결권을 행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처럼 의결권을 가질 수 있도록 우선주 규정을 바꾼 또 다른 이유와 관련해 일각에서 거론되는 이가 CJ(옛 제일제당) 이재현 회장이다. 이재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큰형인 이맹희씨의 장남으로, 범삼성 패밀리의 장손이다. 제일제당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경영 분리됐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 간에 삼성 가문의 적통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갈등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 표면적인 계열분리 이후에도 이건희 회장이 이면계약서를 통해 계속 의결권을 갖고 있을 경우, 의 법인 최대 주주인 CJ 쪽이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선주 의결권을 강화해뒀을 가능성도 있다.

가 1996년 말 30억원어치의 CB를 발행할 당시 제일제당이 인수할 수 있었던 CB 금액은 약 5억7천만원(30억원 중 제일제당의 지분 19%)이었다. 그러나 제일제당은 이건희 회장과 함께 CB 인수를 포기했다. 그 뒤 홍 회장이 매입한 CB 물량이 전부 주식으로 전환돼 발행 주식 수가 늘면서 제일제당의 지분율은 14%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99년 12월3일 삼성에버랜드도 100억원어치의 대규모 CB를 발행했고, 이때는 제일제당이 삼성에버랜드 CB 인수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주요 주주 26명을 보면, 개인으로는 이건희 회장 지분이 13.16%였고, 법인으로는 가 최대 주주(48.2%)였다. 당시 주요 주주 26명 중 유일하게 제일제당(삼성에버랜드 지분 2.94% 보유)만 인수에 참여했고, 등 나머지 주주는 자기 몫으로 배정된 CB 물량을 모두 포기했다. 이 실권 물량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인수했다. 홍 회장의 가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던 반면, 제일제당은 다른 태도를 보인 셈이다. 당시 제일제당이 인수한 삼성에버랜드 CB는 2억9천만원어치(주당 7700원)였다.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유?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법인 주주인 제일제당이 1996년 12월에 인수한 삼성에버랜드 CB 물량 전부를 이재현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곧바로 양수받아 1997년 3월 주식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한 주도 없었던 이재현 회장은 삼성의 사실상 지배기업인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3만8천 주(1.90%)를 가진 개인 주주로 등장했다. 이재용씨가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되는 상황이 닥치자 자신도 부랴부랴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사들인 것이다. 이 역시 이건희 회장 쪽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을까?

지분을 둘러싼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의 묘한 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추정할 수 있다. 제일제당이 1996년 CB 청약을 포기했음에도, CJ의 또 다른 계열사인 CJ개발은 2002년에 주식 19만 주를 추가로 취득했다. 이미 CJ는 1998년 말 현재 지분 38만2천 주(18%)를 갖고 있었는데, 이 둘을 합쳐 2003년 말 이후 현재까지 CJ 쪽이 보유 중인 주식은 57만2천 주(26.21%)에 이른다. 즉, CJ 쪽은 홍석현 회장 다음으로 여전히 의 2대 주주다. 홍 회장의 지분 중 일부가 실제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주식이라면 CJ가 2003년 말 현재 의 최대 의결권을 가진 대주주 지위에 있었을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CJ개발의 감사보고서는 “( 지분은) 지분율이 20% 이상이나 계약 등에 의하여 20%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유 등으로 매도 가능 증권으로 분류하였다”고 적고 있다. ‘계약 등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유’란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이건희 회장의 주식 명의신탁과 비슷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삼성이 를 위장 계열분리한 것으로 드러나면 공정거래법 및 증권거래법 위반(주식 소유 현황 허위 신고)에 해당되며, 금융감독위원회가 의결권 제한이나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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